특별연중기획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②

세계에 숨겨진 뭉우리돌을 찾아서 1

우리 공군이 태동한 캘리포니아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김구는 일제 순사로부터 “지주가 전답에서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이 상례”라며 고문과 함께 자백을 강요받는다. 그 말을 외려 영광으로 여긴 김구가 “오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 말한다. ‘뭉우리돌’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 돌을 뜻하는 우리말로 <백범일지>에 저항정신을 상징하는 말로 기록돼 있다. 해외에 박혀 있는 뭉우리돌 같은 독립운동유적지를 7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주

글‧사진제공 김동우(다큐멘터리 사진가)


캘리포니아 리들리 한인 역사기념각 전경

하와이에서 퍼져나간 독립운동의 씨앗

한인의 아메리카 이민은 1902년 12월 시작된 하와이 노동 이민이 그 시초다. 정부 대 정부 차원에서 1905년까지 이뤄진 하와이 이민 규모는 7,500여 명 남짓이었다. 물론 적은 수의 유학생들도 있었지만 사실상 하와이 이민자들이 미국 내 한인 사회 구심점으로 성장한다. 그랬던 이민의 역사는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독립운동의 역사로 확장된다.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 등지에서 안창호, 박용만 등의 독립투사들이 활발히 활동했고, 캘리포니아에서는 사업에 성공한 김형순, 김종림 등이 독립운동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어디 그뿐인가. 뉴욕의 한 공동묘지에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이병헌이 연기했던 실제 인물인 황기환이 잠들어 있다. 우선 캘리포니아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따라가 보자.

캘리포니아 영웅들

미국 서부는 한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바탕으로 독립자금이 조달된 장소로 의미가 크다. 특히 서부에 있던 한인들 중 백만장자가 탄생하는데 감동적이게도 이들은 벌어들인 수입 대부분을 나라를 되찾는 데 썼다. 대표 인물 몇 명을 소개한다.

통역관으로 하와이에 온 김형순(1886~1977)은 1916년 미국 캘리포니아 중가주 지역 리들리에 정착했다. 그런 뒤 미국인들이 복숭아 잔털에 알레르기가 심하다는 점에 착안, 조선의 천도복숭아를 모델로 복숭아와 자두를 육종해 대중화에 성공했다. 이후 김형순은 ‘김형제상회(Kim Brothers, Inc.,)’를 통해 미 대륙 전역에 ‘털 없는 복숭아’로 불리는 ‘넥타린(Nectarine)’을 유통해 백만장자가 됐다. 그는 1920년대 중반 이후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캘리포니아 지역 독립운동 지도자로 발돋움해 수익금 대부분을 독립 자금과 기관 운영비로 내놨다. 현재 그의 묘지는 미국 캘리포니아 리들리 시에 있다.

‘백미왕’이라 불리던 김종림(1884~1973)도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1907년 23세에 하와이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간 그는 철도 노동자로 일하다 중가주로 이주(1914년)해 벼농사에 뛰어들었다. 당시만 해도 중가주 지역에서는 쌀농사를 잘 짓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쌀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때아닌 호황을 누린다. 당시 연간 수익이 8만 달러 정도였는데 이는 현재 가치로 100만 달러 정도라고 한다. 김종림은 쌀농사로 축적한 부를 1920년 2월 새크라멘토 북쪽 윌로스에 문을 연 ‘한인비행학교’ 설립을 위해 내놨다.

새크라멘토 윌로스 비행장 터에 남아 있는 교육관 건물

캘리포니아 리들리 공동묘지에는 독립운동가 김형순이 잠들어 있다.

“일본의 심장, 도쿄에 폭탄을 투하하라”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3~4시간 차를 몰아가면 윌로스가 나온다. 예부터 농사를 짓던 땅인데 여기에 바로 한인비행학교 터가 남아 있다. 이 비행학교는 노백린(1875~1926)이 운영을 맡고 김종림이 자금을 댔다. 비행기 구입과 시설비 등으로 김종림이 2만 달러를 기부했고 매달 운영자금 3,000달러를 후원했다. 당시 훈련기 한 대 가격이 2,000달러 정도였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비용을 이 학교에 쏟아부은 셈이다. 개교 기념식에서 노백린은 “독립전쟁이 일어날 때 우리 공군이 일본에 날아가 도쿄를 쑥대밭이 되도록 폭격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이 비행학교는 사실상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군 양성’ 비밀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얼마 뒤 비행학교에 불행이 닥친다. 그해 10월부터 중가주 지역을 강타한 비바람이 추수를 앞둔 벼를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계속된 비로 수확을 앞둔 벼 70%가 물에 잠겨버렸다고 한다. 더군다나 쌀값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김종림은 파산했고 우리 공군의 뿌리인 윌로스 비행학교도 개교 1년 반 만에 문을 닫게 된다.

장인환 전명운 의거가 일어난 샌프란시스코 페리부두 앞

미국 로스앤젤레스 대한인국민회 총회관

첫 항일 무장투쟁 현장, 샌프란시스코

윌로스 비행학교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실망하지 말자. 독립운동사를 통틀어 첫 번째 무장투쟁이 서부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장인환(1876~1930)·전명운(1884~1947) 의거’로 기록된 사건이 샌프란시스코 페리 부두에서 일어난다. 1909년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 등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사건이다.

의거는 1908년 3월 23일 오전에 일어났다. 샌프란시스코 페리 선착장 앞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리는데 친일파 미국인 더램 화이트 스티븐스가 처단된다. 그는 대한제국 외교고문으로 활동하며 이토 히로부미를 위해 일한 미국인이었다. 이 사건에서 흥미로운 건 의거 직전까지 장인환, 전명운은 서로를 몰랐다는 점이다. 스티븐스의 악행에 얼마나 많은 한인이 분통을 터트렸을지 쉬이 짐작이 간다. 뭉클하게도 이 사건 직후 한인들은 장인환, 전명운의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가? 캘리포니아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사를 조금 살펴보니 평소 알고 있던 미국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가. 더불어 치열했던 우리 독립운동사에 조금 더 긍지가 느껴지지 않는가. 다음에는 뉴욕에 있는 독립운동 유적지에 대해 알아보자.

(좌)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안창호 선생님의 막내아들 랄프 안
(우)캘리포니아 다뉴바 3·1절 1주년 행사기념비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