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 월간 소식지 '지금서울교육' 웹진

교사 이야기

그림책 창작으로 잠재력을 건드려주는 교사

글 이현아(서울홍릉초등학교 교사)

아이는 누구나 가슴속에 자기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어른의 말로 빼곡하게 채워진 책장에서 한 칸의 공간을 비워내고 아이들의 말을 오롯이 담아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독자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 작가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마음으로 교실에서 아이들이 무심코 내뱉은 말과 노트 귀퉁이에 끄적거린 글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차곡차곡 모으는 문장수집가가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2015년부터 5년째 ‘교실 속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꾸준히 동아리 활동을 지속한 결과 어느덧 200권이 훌쩍 넘는 그림책을 아이들과 함께 쓰고 출판 등록했다. 아이의 작은 생각에 귀를 기울여주면 그것은 멈춰 있지 않고 커졌다. 그냥 툭 흘러나왔을 때는 낙서였고 엉뚱한 생각의 한 조각이었는데, 그것을 키워내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버티면서 들어주고 완성하도록 끌어주면, 하나의 작품이 됐다. 그걸 엮어서 인쇄하고 고유의 출판등록번호도 부여하여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로 끝맺어줬더니, 여기저기 반짝이며 떠돌아다니던 생각 조각이 어엿한 한 권의 책으로 소중히 여김을 받았다. 계속해서 빛을 낼 동력을 얻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직접 창작한 그림책이 50권, 100권, 200권 차곡차곡 쌓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귀한 자료가 됐다. 이 그림책을 살펴보면 요즘 아이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무엇에 마음이 머무는지 알 수 있었다. 나아가 주로 어떤 소재를 사용하여 글을 쓰는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지 그 경향성까지도 자연스럽게 파악해볼 수 있었다.

완성한 그림책은 도서관에 두고 전교생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읽었다. 학교 근처 지역 도서관에서는 아예 ‘홍릉초 어린이 작가 도서 코너’까지 만들어 주민들과 함께 지속해서 아이들의 그림책을 감상할 수 있게 도와줬다. 또 다른 도서관으로부터 어린이 작가들의 그림으로 ‘원화 전시회’를 열자는 제안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학교 간 교류로 다른 학교의 도서관과 그림책을 나누고 애독엽서를 주고받기도 했다. 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교류들이 마치 파도 위에 올라선 것처럼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2015년에 <여우의 꿈>을 창작한 어린이 작가 정근우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이야기가 강물처럼 멀리멀리 흘러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 강물을 타고 그림책을 영어로 번역하여 인도네시아 우붓의 한 고아원으로 흘려보내기도 하고, 베트남 나트랑의 아이들과 그림책을 나누기도 했다. 나아가 그림책을 eBOOK으로 제작하여 온라인에 공유하니 더 많은 독자와 소통할 수 있었다. 굽이굽이 아이들의 꿈이 흘러가는 가슴 뛰는 여정이었다.

2017년에는 ‘아이들 곁에서 교사도 함께 창작하는 삶을 살자’는 모토를 가지고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의 가장 큰 특징은 교사, 그림책 작가, 은행원 등 학교 안팎의 다양한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책으로 소통한다는 점이다. 3년째 모임을 운영하면서 매달 한 번씩 오픈 워크숍을 열고 있는데, 참여자가 30명 남짓에서 80명이 훌쩍 넘는 규모로 확장됐다. 이들과 책과 삶을 나누는 일을 꾸준히 이어가고 싶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자기 삶의 온전한 주인공으로서 질문과 사유의 꽃을 피워 한 권의 책이 되는 교실, 그리고 누구나 한 권의 가치로 눈부시게 빛을 발할 수 있는 교육을 꿈꾼다. 교실 속의 살아 있는 이야기를 책으로 담아내는 이 꾸준한 여정이 어린이 작가들의 꿈이 흘러가는 통로 역할을 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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