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책

우리 옆에 있는 제제를 위하여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사람에게는 스스로 성장하는 힘이 있다. 아이들도 그렇다. 그 힘은 누군가에게 온전히 사랑받는다면 아무리 어두운 굴 속을 지날 때라도 스스로를 밝히는 빛이 된다. 사랑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서 뽀루뚜가의 사랑이 제제를 스스로 어둠을 극복하며 성장하게 했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 주변의 제제를 사랑으로 감싸는 뽀루뚜가가 되어야 한다.

글 박혜경(한국심리상단연구소 현실치료 심리상담사)

아주 오래전 이 책을 지하철에서 읽으면서 옆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제제의 엉뚱한 발상과 장난에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읽으니 그 눈물과 웃음의 의미가 더 선명히 다가온다.

살다 보면 우리를 둘러싼 주변이 온통 어둠으로 가득 찬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어둠의 정체는 강한 힘에 의한 폭력일 수도 있고, 가난일 수도 있고, 지독한 외로움으로 인한 것일 수도, 억울함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원하지 않지만 삶 속에서 어둠은 다양한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제제의 가족은 오랜 시간을 어둠 속에서 지내게 된다. 아빠의 긴 실직, 가정경제를 책임진 노동으로 힘겨운 엄마, 누나와 형과 동생은 각자의 삶의 무게를 견디어내며 지쳐있다. 그런 가족의 상황은 한없는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시기인 어린 제제에게는 누구보다도 외롭고, 견디기 힘든 환경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 제제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제제가 하는 행동 이면의 마음을 보아줄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필요한 인정과 지지, 수용을 경험하지 못하고 매질과 거부 가운데서 제제는 “엄마,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요”라고 슬프게 말한다. 자신을 쓸모없는 아이라고 말하는 제제, “너무너무 마음이 나빠서 크리스마스에도 착한 아기 예수처럼 되지 못하고 못된 새끼 악마가 됐어요”라고 말하는 제제를 보면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우리는 아이들이 스스로를 가치 없다고 여길 때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부모가 그 역할을 할 수 없을 만큼 망가진 가정이라면 그 아이에게 우리 중 누군가가 꼭 필요하다. 아이의 말과 행동에 공감하고, 이해하고, 지지하고 눈물을 닦아주는 그 역할을 해야만 한다.

제제는 어떤 아이인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제제는 특별한 아이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글을 혼자 깨우쳐 신문의 어려운 단어도 다 읽을 줄 안다. 거리의 빨랫줄, 여성 스타킹 등 어떤 물건도 제제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여 장난거리로 만들고 놀잇감으로 만들어내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장착한 아이다.

제제는 악마다. 이웃과 가족은 그를 악마라 했고 스스로도 그것을 내면화한다.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왕성한 호기심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이러한 행동들은 도를 넘는 심한 장난이었고, 이로 인해 가족과 이웃은 불편해했다.

제제는 철난 아이다. 다른 이의 아픔을 깊이 이해한다. 실직한 아빠의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커다란 슬픈 눈을 볼 줄 알고, 어른들 노래의 노랫말의 의미도 잘 모르면서 아빠를 위로하기 위해 노래 부르고, 아빠에게 쇠고리가 달린 허리띠로 죽을 만큼 맞아도 크리스마스에 아빠에게 드릴 담배를 사기 위해 구두 닦는 일을 한다.

제제는 착하고 고운 황금 같은 마음씨를 가져서 선생님을 감동으로 울리는 아이다. 배고픈 제제에게 선생님이 준 돈으로 산 빵을 가난한 아이와 나눠 먹고, 선생님의 빈 꽃병을 채우는 아이다.

제제는 절절히 사랑을 구하는 아이다.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이의 마음을 돌보며, 자신도 사랑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제제는 책 속에만 있는 아이는 아니다. 바로 우리 집에, 옆집에, 시끌벅적한 교실에 운동장에 있다.

이러한 제제에게 나타난 뽀루뚜가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었다. 제제는 그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보호받자 빛나는 것들을 드러냈다. 제제는 가슴속에 태양이 빛나는 것 같다고 했다. 사랑의 결핍으로 외롭고 고통받았던 제제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뽀루뚜가와의 만남은 제제의 삶을 식구들이 눈치 챌 정도로 변화시킨다. 뽀루뚜가는 제제가 주변을 둘러싼 어둠을 빛으로 채울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가진 아이로 성장시켜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제의 행복은 길지 못했다. 불의의 사고로 뽀루뚜가는 사망한다. 죽음은 삶의 일부라고 말하지만 다섯 살 제제에게 너무 뜻밖이었고 이로 인해 제제는 온 세상을 잃은 것과 같은 충격을 받는다. 각자 바빠 제제를 외면했던 식구들도 제제를 돌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나쁜 상황에 이른다. 뽀루뚜가를 위해 착해지고 싶었던 제제는 이제 삶의 의미를 잃게 된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지도록 해주는 뽀루뚜가가 더 이상 없다. 뽀루뚜가의 사망은 어린 제제에게 상실과 절망이고 끝이었다. 그럼에도 제제가 그 절망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뽀루뚜가의 사랑, 온전히 수용됐던 그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제제는 어른들에게 벅찬 아이, 사고뭉치임에 틀림없다. 그의 행동은 이해되고 수용되기보다 늘 과하고 혹독한 처벌로 이어진다. 제제처럼 창의적이나 지나친 장난으로 욕구를 채우는 아이가 있다면 그를 때리고 혼내기보다 바람직한 행동의 모범을 보여주고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쳐주면 된다는 것을 그들에게 달려가 알려주고 싶어진다.

제제 아빠는 다시 일자리를 갖게 된 후 제제를 힘들게 했던 많은 일에 대해 사과하듯이 이렇게 말한다. “하는 일마다 잘 안 되고 끊임없이 절망스러울 때가 있어.” 어린 제제는 이미 아빠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어린아이다.

세월이 흘러 마흔여덟 살이 된 제제는 고백한다. “나의 사랑하는 뽀루뚜가, 제게 사랑을 가르쳐주신 분은 당신이었습니다. 예전에 구슬과 딱지를 나눠주었던 것처럼 지금은 제가 구슬과 딱지를 나눠주고 있습니다. 사랑 없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뽀루뚜가의 사랑이 제제를 긍정적으로 어둠을 스스로 극복하고 사랑을 나누는 어른으로 성장시켜주는 좋은 환경이 되었음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워너 교수의 회복탄력성에 대한 연구를 보면 어려운 환경에서도 제대로 성장한 아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하고 지지하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있었다.’ 뽀루뚜가가 제제에게 했던 역할을 이제 우리는 우리 옆에 있을 수 있는 제제에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해하고 지지하고 받아주는 한 명의 어른 역할을 하는 선생님을 기대한다. 가난이건, 장애건 과잉행동적인 성격이건 어떤 이유에서건 외롭고 돌봄에서 멀어져 있을 때 뽀루뚜가와 같은 역할을 하는 한 명은 바로 선생님 당신일 수 있다.

‘왜 이래야만 할까? 어째서 착한 아기 예수는
날 싫어하는 거지? 외양간의 당나귀나 소들까지도
좋아하면서 왜 나만 싫어하냐고?
만약 내게 벌을 주는 거라면 내 동생 루이스에게는
왜 선물을 주지 않는 거야? 말도 안 돼 루이스는 이렇게 천사 같은데. 하늘의 천사도
우리 루이스만큼 착하진 못해···.’
그러자 바보처럼 눈물이 흘러내렸다.
세상 모두가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하는 제제.
우리 옆의 제제를 위하여 따듯한 곁을 내어주는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J. M. 데 바스콘셀로스 저 | 박동원 역 | 동녘 펴냄

너무 일찍 삶에 숨겨진 슬픔을 발견한 5살 꼬마 제제의 이야기를 그린 전 세계의 베스트셀러다. 제제의 아름답고도 가슴 저미는 성장 이야기와 함께 제제에게 진실한 사랑과 우정을 가르쳐준 뽀루뚜가와의 장난스러운 만남과 고통스러운 이별까지 따라간다. 감성적인 삽화가 책의 감동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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