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중기획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③

세계에 숨겨진 뭉우리돌을 찾아서 2

미국에 남겨진 독립운동의 역사 2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김구는 일제 순사로부터 “지주가 전답에서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이 상례”라며 고문과 함께 자백을 강요받는다. 그 말을 외려 영광으로 여긴 김구가 “오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 말한다. ‘뭉우리돌’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 돌을 뜻하는 우리말로 <백범일지>에 저항정신을 상징하는 말로 기록돼 있다. 해외에 박혀 있는 뭉우리돌 같은 독립운동유적지를 7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주

글‧사진제공 김동우(다큐멘터리 사진가)

미처 생각지 못한 우리의 독립운동 유적지가 산재해 있는 뉴욕시 전경

맨해튼의 독립운동 유적지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인근에 우리 독립운동 유적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3·1 운동 기념식이 열렸던 타운홀 내부

현재 고급 주상복합 건물로 쓰이고 있는 구 맥알핀 호텔이 대표적이다. 이 건물은 1912년 건립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개업 당시 1,200여 개 객실을 갖춘 세계 최대 규모 호텔이었는데 지난 1917년 10월 29일 식민지 민족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열린 소약속국동맹회(The League of Small and Subject Nationalities) 개최 장소였다. 이 회의는 제1차 세계대전 후 개최될 평화회의와 각종 국제회의에서 약소민족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일차 목적이 있었다. 한인 참석자는 박용만 등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대표들이었다. 이듬해 12월 14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2차 소약속국동맹회에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서 민찬호, 정한경을, 뉴욕에서 결성된 신한회에서 김헌식을 각각 한인 대표로 파견했다. 당시 회의에서는 ‘일본의 조선 합병은 위법’이라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12개항 결의문이 채택됐다. 또 맥알핀 호텔은 조선 최초의 미국 사절단 보빙사 일행이 체스터 아더 21대 미국 대통령을 만난 장소이기도 하다.

맥알핀 호텔에서 북쪽으로 걷다 보면 얼마 못 가 나오는 타운홀도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적지다. 1921년 1월 12일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 문을 연 이 극장은 뉴욕에 살던 한인들이 ‘미국위원회(The American Committee)’의 후원을 받아 1921년 3월 2일 3·1 운동 기념행사를 개최한 곳이다. 한인과 미국인은 이날 행사에서 손을 맞잡고 만세 삼창하며 잃어버린 나라의 독립을 염원했다. 참석인원은 무려 1,300여 명이었는데 당시 뉴욕에 머물고 있던 한인의 숫자는 고작 100명 정도였다. 나머지 참석자는 모두 미국인이었다. 적은 수의 우리 조상들이 먼 타향에서 조국 독립을 알리는 데 얼마나 열성적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뉴욕 퀸스의 한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독립운동가 황기환 묘소

뉴욕한인교회에 남아 있는 흔적들

1921년 타운홀에서 자주독립을 외친 한인들은 뜻을 모아 뉴욕한인교회를 설립한다. 1927년 컬럼비아대학교 인근으로 이전한 교회 3층과 4층에서 서재필, 조병옥, 이승만 등이 숙식하며 독립운동을 구상했다. 뉴욕 인근에 살던 한인들은 독립 자금을 건네기 위해 뉴욕한인교회를 찾았고, 교회는 해방 전후 한인회, 학생회, 국민회, 동지회, 흥사단 등 각종 단체의 집회와 일시 거소로도 활용됐다. 특히 뉴욕한인교회는 안익태(1906~1965)가 애국가를 작곡할 때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진 피아노를 보관 중인데 애국가가 최초로 연주된 곳이 바로 이 교회인 셈이다. 하지만 애국가의 작사자로 알려진 윤치호와 작곡가 안익태는 안타깝게도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최초의 한글 타자기가 만들어진 곳도 뉴욕한인교회다. 타자기의 효시는 1913년 이원익이 처음으로 영어 타자기를 한글 타자기로 개조한 것이지만, 한글 타자기는 뉴욕한인교회에서 송기주, 김준성 목사 등에 의해 꾸준히 개발됐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뉴욕시는 지난 2015년 3월 낡은 뉴욕한인교회 건물을 신축하기로 결정했고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옛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소약소국동맹회의가 열렸던 뉴욕 맨해튼의 맥알핀 호텔(오른쪽 첫 번째 건물)

<미스터션샤인>의 실제 인물 황기환

뉴욕교외에서도 우리 독립운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퀸스의 한 공동묘지에 독립운동가 황기환(?~1923)의 묘가 남아 있다.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유진 초이의 실제 인물이 바로 황기환이다. 그는 10대 후반이던 1904년 미국 이민 길에 올라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에 미군으로 지원 입대한다. 동양인으로 제1차 세계대전 전장을 누비던 황기환은 1918년 11월 전쟁이 끝나자 김규식의 권유로 프랑스 파리에 남는다. 김규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총장 자격으로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했던 인물이다. 여기서 황기환은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서기장으로 활동한다. 그러던 중 1919년 러시아 북극해의 부동항 무르만스크 철도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홍재하 등 한인 수십 명이 영국군을 따라 에든버러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파리위원부는 황기환을 영국에 급파한다. 그는 백방으로 뛰며 영국인들을 설득해 일제 치하의 땅으로 송환될 뻔한 한인 30여 명을 프랑스로 데리고 나오는 데 성공한다. 당시 영국은 영·일 동맹을 맺고 있어 이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려 했다. 또 황기환은 영국에 머물며 프레더릭 아서 매켄지 영국 데일리 메일 기자 등을 상대로 일제의 잔혹함과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활동을 펼친다. 그 성과로 매켄지 기자는 1920년 <한국의 독립운동>이라는 책을 발표한다.

열정을 다해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알리고 한인들을 보살피던 황기환은 뉴욕으로 건너가 1923년 심장마비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한다. 안타깝게도 뉴욕 퀸스에 있는 그의 묘소는 유족이 없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공사 중인 뉴욕한인교회 모습

이 밖에도 뉴욕 롱아일랜드 오이스터 베이(Oyster Bay)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가장 아꼈던 대저택 ‘사가모어 힐(Sagamore hill)’이 남아 있는데, 1905년 8월 4일 이승만(1875~1965)과 윤병구(1880~1949)가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 독립 청원서 전달을 시도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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