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원 이야기

끝나지 않은 항쟁, 5·18

글 주소연(성동광진교육지원청 교육협력복지과장)

아직도 나에게 5·18은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이고, 죄스러움이고, 분노이고, 자책이고, 아픔이다. 이제까지 5·18은 우리 집에서는 거의 금기어이기도 했다. 아픔을 핑계로 글도 인터뷰도 가급적 회피했고, 당당히 나서서 진실을 밝히지도 않았었다. 이런 태도가 5·18에 대한 진실을 왜곡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도 한다. 나의 안정된 삶을 지키고 싶은 부끄러운 욕심이었고, 비겁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5·18 당시 도청에서 취사반으로 활동했던 내용과 그때의 자세한 상황은 올해 언론에 인터뷰했던 내용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반공교육, 유신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평범한 고등학생이던 내가 도청에 들어간 것은, 시민을 향한 진압군의 무자비한 폭력에 정체성의 혼란과 분노로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마 광주의 모든 사람이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했을 뿐 도청에 있었던 게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다. 5·18은 광주시민 모두가 다 함께 국가권력(군대)의 폭력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으로 광주를 지켜낸 항쟁이기 때문이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도청을 빠져나와 동명교회로 피신하여 숨어 있다가 아침 7시 30분 가택수색이 시작된다는 소식에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딸을 지키지 못했다며 부모님이 서로 다투고 계셨다. 방에 혼자 있는데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울분, 억울함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기억을 더듬어 알고 있는 사건들을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북한 간첩에 의한 광주 폭동이고 시민 모두가 폭도가 되어버린 5·18이 먼 훗날 진실이 밝혀지게 될 때 이 기록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기록했다. 이때도 나는 비겁했다. 훗날 노트가 발견되어 나의 미래가 발목 잡힐까 두려워 겪었던 상세한 내용의 기록보다 포괄적으로 신문을 스크랩하여 수정하는 것으로 기록을 남겼다. 이후 15년을 폭도가 되어 존재를 숨기고 분노와 억울함과 미안함을 누르며 살아왔다. 문제는 지금도 5·18 당사자라고 내세우기 힘든 세상이라는 것이다.

1960년 4·19 혁명부터 1980년 5·18 항쟁, 민주화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희생으로 1987년 6·10 항쟁으로 민주주의의 기초가 마련됐다. 우리의 역사는, 민주주의는 지키고 발전시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후퇴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의 5·18에 대한 망언과 역사 왜곡으로 인해 다시 독재로 되돌아가는 단초가 될까 걱정된다. 지금 5·18을 부정하고 폄훼하는 목적이 독재 시절에 누렸던 무소불위 권력을 그리워하며 그 시절로 되돌리려고 하는 시도로 보이는 것은 과도한 불안일까? 5·18 항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아프다는 것을 핑계 삼아 숨는 것을 더는 하지 않으려 한다. 1980년 5월 광주를 지키다, 민주주의를 수호하다 저세상으로 가신 분들의 명예를 지키고, 치욕스러운 망언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이 부끄럽지 않도록 지금 해야 할 일은 진실을 밝히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어 더 이상의 망언과 역사 왜곡을 막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기를 내기로 했다. 아픔에 생채기가 나고 굳은살이 생기겠지만 이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치유도 될 것이라는 희망도 있다.

올해는 혼자 조용히 5·18 묘역에 가서 헌화하고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말하려고 한다. 그래야 나도 치유가 되고 자유로워질 것 같다. 진실이 규명되고, 책임자의 사과와 용서가 이루어지고, 회복과 화합의 기적이 일어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은 불편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과정임을 기억하고 더 나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위해 함께 나아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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