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사회통합을 향한 포용 교육

세계시민교육으로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 만들기

교육의 변화, 세계시민교육에서 해답을 찾다

현재 전 세계 교육계는 모두가 양질의 교육을 공평하게 받게 한다는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그러나 양적인 목표 달성보다 중요한 것은 양질의 교육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시대에 맞는 양질의 교육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를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가? 한국 교육의 난제를 풀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세계시민교육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본다.

모든 학생의 개성이 보장되는 교육

얼마 전 “대입제도 개선에 앞서 필요한 일”이라는 글이 모 신문에 실렸다. 오늘날 우리의 학교 교육이 성적 우수 소수 학생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나머지는 들러리가 된다는 진단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한 처방으로 세 가지 제안을 내놓았다.

첫째, 교육청과 학교의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 자율권을 확대함으로써 지역 특성이나 학생의 수준에 맞춰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게 한다. 둘째, 성적 위주 교육에서 배움 위주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만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모든 학생의 개성이 보장되는 교육을 해야 한다. 특히 학습 동기가 낮고 무기력에 빠진 학생에게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교사가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확보되어야 한다.

세 제안이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이 글에서는 특히 두 번째 제안에 주목하면서 세계시민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교육 2030 목표

“모든 교육과정과 평가에서 평화, 인권, 양성평등,
문화다양성과 더불어 세계시민의식과 지속가능발전에
관련된 주제가 중심이 될 것이다.”

현재 전 세계 교육계는 2030년까지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양질의 교육을 공평하게 받게 한다는 소위 ‘교육 2030’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 목표는 그 누구도 교육의 기회에서 소외되지 않게 하자는 ‘교육의 포용성’ 정신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교육이 실질적인 학습 성취로 이어지도록 그 질적 수준에도 주의를 기울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아울러 교육내용에 관해서도 2030년까지 모든 교육과정과 평가에서 평화, 인권, 양성평등, 문화다양성과 더불어 세계시민의식과 지속가능발전에 관련된 주제가 중심이 될 것을 요구한다.

유네스코의 2018년 세계 교육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는 아동과 청소년이 2억 600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들이 2030년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교육기회를 골고루 누리게 되려면 갈 길이 꽤 멀어 보인다. 물론 한국의 초등학교 취학률과 중고등학교 진학률은 매우 높아서, 2030년까지 적어도 양적으로는 누구도 교육기회에서 소외되지 않게 한다는 목표 달성이 불가능할 것만 같지는 않다. 하지만 최근 초중고생의 학업중단 비율이 높아지고 있고, 중도입국 자녀 수도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이와 함께 북한이탈주민 자녀라든지, 아직은 많지는 않지만 얼마 전 사회적 논란이 되었던 난민 자녀같이, 특별한 관심이 필요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들과 같은 잠재적 교육 소외계층이 교육기회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만족할 일은 아니다.

양질의 교육 보장이 중요하다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들을 포함한 모든 학습자가 오늘날처럼 급변하는 사회에서 능동적이고 책임 있는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지식, 기능, 역량을 제대로 갖추도록 해주는 양질의 교육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있다. 위에서 언급한 성적 위주 교육에서 배움 위주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이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우리 교육이 그동안 치중해왔던 지식 전달 중심, 경쟁 중심 방식은 지덕체가 조화된 인간을 가르치고 키우는 전인교육의 이상과 거리가 있어 계속 비판받아왔지만, 특히 최근에는 시대의 흐름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더 거센 개혁 요구를 받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인간의 노동을 빠르게 대체해나가면서 그로 인한 사회적 파장과 충격이 날로 심각하게 커지고 있는 오늘날, 표준화된 지식을 반복 학습을 통해 암기하고 숙달하게 하는 교육 방식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요컨대 소위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한국 교육은 육성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무엇이 좋은 수업인가?

“정해진 답이 없는 현실 속 문제 해결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사고력과 창의력,
문제해결 능력이 커지는 수업”

오늘날 시대에 맞는 양질의 교육과 그 핵심인 좋은 수업이 무엇인지는 논란 속에 있다. 암기식 교육을 비판하는 쪽에서는 대개 창의성과 문제해결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을 대안으로 내세운다. 지식과 정보는 인터넷에 넘치고 있으니 암기 교육 대신 창의성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 이 시대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젝트 기반 학습이나 사례 기반 학습 같은 교수학습 방법이 각광을 받는다. 정답 맞히기 식의 주입식 수업이 아니라, 미리 정해진 답이 없는 현실 속 문제 해결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사고력과 창의력, 문제해결 능력이 커진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창의성 교육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기초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창의성 교육을 아무리 해봐야 창의성이 길러지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인터넷에서 무엇을 검색해야 할지 알 수 있고, 따라서 그런 기본 지식을 기억 속에 저장하기 위한 암기식 교육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력이 백지상태에서 생길 리는 없으므로, 어느 정도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 기초기본 학습량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적절한가이다. 이 학습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학습자는 사고력이나 창의력을 키울 겨를 없이 단순 암기와 실수를 최소화하는 문제 풀이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학교와 교육청의 자율권을 확대해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제안을 떠올리게 된다. 학생의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되려면 교사가 학생을 면밀하게 관찰하여 적정한 성취 학습량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결과는 학부모와 공유해야 하고, 교사는 학부모의 동의하에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러한 요구는 커다란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남들은 모두 이렇게 저렇게 하고 있는데 우리만 안 하면 뒤처지는 게 아니냐고 반발할 학부모가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시민교육의 역할

“세상에 좋은 삶이란 참으로 다양하고, 그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서로 존중하며 배우고, 더불어 함께 사는 길을 추구하는 것이 세계시민의 자세이자 책임이다.”

이와 같은 한국 교육의 난제를 풀어나가는 데에 세계시민교육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세계시민교육이 지향하는 핵심 가치는 인류공동체 소속감, 다양성 존중, 연대와 협력으로 요약된다. 인종과 민족, 언어와 관습, 사고방식과 가치관 등은 달라도, 다 같은 인류의 일원으로서 지구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과 정체성을 자각한다면,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다른 이들을 더 잘 포용하고, 이들과 더 깊은 연대감을 느끼며 협력할 수 있게 된다.

세계시민교육이라고 해서 꼭 지구 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나 여러 나라의 특이한 문화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는 활동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여러 지방의 문화에 대한 조사와 학습도 훌륭한 세계시민교육이 될 수 있고, 내가 사는 지역의 문화나 역사 또는 여러 현상을 전 지구적 차원과 연관 속에서 탐구하는 것도 좋은 세계시민교육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수업을 통해 인류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키우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며 지역의 여러 현상과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키우는 일이다.

이런 세계시민교육의 정신과 원칙을 학교 수업에 구현해보면 어떨까. 현재 우리 청소년의 특징을 말하라면 아마도 ‘다양성’을 첫손에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각자 관심이나 생각이 제각각이어서 한마디로 무어라 규정하기 어려운 것 자체가 특징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업성적이라는 단일한 기준으로 줄 세우기를 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우리 학교가 학생들에게 인류공동체 소속감을 일깨워주고, 다양성 존중의식을 심어주면서, 이 세상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길은 수없이 다양하고 많으며 그것은 모두 소중하고 귀한 일이라는 지혜를 얻게 해주면 좋지 않을까.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에 다니고 괜찮은 보수를 받는 것만이 성공한 삶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 세상에 좋은 삶이란 참으로 다양하고, 그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서로 존중하며 배우고, 더불어 함께 사는 길을 추구하는 것이 세계시민의 자세이자 책임이라는 것을 학생들이 인식하게 된다면 우리 교육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중심이 되고 다른 학생은 들러리가 되는 교육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자신의 개성에 맞춰 공부를 하고 다양한 관심과 능력을 키워나가는 교육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과 관심이 다양한 것은 청소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는 교사도 마찬가지다. 요즘 학교에서 교사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로 모으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그만큼 교사의 생각이 다양하다는 뜻이겠지만, 그런 다양한 생각을 포용할 수 있는 교육의 방향에 관한 합의가 좀처럼 형성되지 않고 있다는 말로도 들린다. 물론 이는 우리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관심의 초점을 분산시키는 원심력이 과도하게 작용하면 통합과 결속을 저해할 수도 있고, 공동의 과제 해결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교사의 생각과 관심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하면서, 어렵더라도 연대와 협력을 촉진하는 큰 틀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더불어 함께 사는 학교

“세계시민 교육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이를 실천함으로써 더불어 살기 정신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작년에 교육감께서 서울의 한 혁신학교로 1주일 동안 출근하면서 교사 체험을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수업 준비도 열심히 하셨지만, 정작 수업시간에 많은 학생은 잠을 잤다는 경험이 소개되어 있었다. 혁신학교가 이 정도니 다른 학교는 어떨까 하는 걱정이 들게 하는 이야기였다. 물론 일부 사례이기는 하지만,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학생을 교사가 깨우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세계시민교육이 이런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사실 그런 만병통치약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 교육의 난제에는 여러 측면과 여러 주체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세계시민교육을 학교에서 실천한다면, 우선 먼저 학교 차원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다 같은 인류공동체의 일원임을 상기하며 ‘더불어 함께 살기’ 정신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보통 세계시민교육을 이야기할 때, 국내에 계속 늘어나는 이주민 자녀나 북한이탈주민 자녀 또는 난민 자녀를 거론하면서 이들과 공존에 필요한 교육이라거나, 글로벌 시대에 시급한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이라는 주장을 내놓는 경향이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런 논리에서 벗어나 한국 교육의 어려운 도전과제를 해결하는 데에 세계시민교육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찾아보려 했다. 독자 여러분의 따가운 비판과 꾸짖음을 기대한다.

글 임현묵(유네스코 아태교육원장)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교육본부장. 성균관대학교대학원 초빙교수.
<유네스코는 왜 문화 다양성과 생물다양성을 중요하다고 할까?>, <세계질서의 변동과 유네스코> 등 저술.

도움 받은 글

김현경, “암기는 낡은 공부법일까?” 한겨레신문, 2017. 8. 2.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지속가능발전목표 4>, 2018.
“학습권을 보장한다는 것.” 맘대로 해보자 블로그, 2019년 5월 26일 접속,
https://arcious2.blog.me/221199917279
UNESCO, <Global Citizenship Education: Taking it local>,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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