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민사회 이야기

“한 가지 악기라도 익혀 행복한 삶을”

글 임예빈(친구랑센터)

어렸을 적 나는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모범생이었다. 그런 내가 부모님을 속상하게 해드린 적이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부모님은 나를 피아노 학원에 보내주셨다. 처음 몇 달은 잘 다녔는데, 차츰 학원에 가는 게 너무 싫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원해서 시작한 게 아니어서였다. 배워야 할 곡들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선생님 댁에는 매일 갔지만, 초인종을 안 누르고 대문 앞에서 그냥 앉아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왔다. 선생님께서 내가 계속 학원에 안 온 사실을 엄마에게 말씀하셔서 일탈은 들통이 났다. 엄마가 야단도 안 치고 “그렇게 가기 싫으면 말하지 그랬니. 이제 안 가도 된다”고 하셔서 홀가분하고 좋았다.

멋진 연주자들을 보며 ‘꾹 참고 배웠더라면 나도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후회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다른 악기라도 취미로 즐겁게 배워봐야지’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전통 찻집에서 친구를 만나고 있었다. 잔잔한 국악이 수채화처럼 조용히 속삭이는 듯한 찻집 게시판에 ‘가야금 개인레슨’이라는 공지가 보였다. 운명처럼 바로 레슨 선생님과 통화하고, 댁으로 찾아갔다.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중간’ 정도의 가야금을 사서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 음감도 없고 평소 ‘똥손’이라 구박받던 나는 가야금도 진도가 잘 안 나갔다. 그래도 취미로 배우는 거라 참 재미있었다.

결혼하면서 신혼집으로 가야금을 가지고 왔다. 아르바이트해서 산 첫 악기이고 나중에 잘 치면 꼭 연주해주겠다고 가족들에게 약속했기 때문에 ‘시간 되면 꼭 다시 가야금을 배워야지’ 했다. 아이가 조금만 더 자라면, 시간이 있을 때 배워야지 하면서 결국 못 배웠다. 가야금은 25년 동안 이사를 3번 같이 다녔다. 올 3월에 4번째 이사를 하면서, 성인이 된 아들이 이제 필요 없으니 20년 전에 산 자기 피아노를 버리고 이사를 가자고 하여 섭섭함이 밀려왔다.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야 한다니 아들이 작은 손으로 피아노 치던 추억도 버려지는 것 같아 아쉬웠다. 결국 피아노는 중고 피아노 가게에서 몇만 원 주고 가져갔다. 남편이 가야금도 폐기물 스티커 붙여서 내놓으라는 걸 절대 안 된다고 우겨서 겨우 함께 이사 왔지만, 마땅한 자리도 없고 곧 버릴 거라며 현관 옆에 세워져 있었다.

우연히 ‘악기 나눔’ 광고를 보게 됐다. “악기가 너무 오래됐고 줄도 다 풀어졌는데 받아주시나요?”라고 글을 보냈는데, 기증해주셔서 고맙다는 칭찬까지 받아 참 기뻤다. 30여 년을 버텨준 가야금이 쓰레기로 버려질까봐, 태워지거나 조각조각 부서져버릴까봐 마음 아팠는데,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제대로 연주되거나 의미 있게 활용된다고 생각하니 잘 버텨왔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저녁에 서울숲으로 산책을 하러 갔는데, 젊은 부부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어렸을 때 배운 기억으로 피아노를 치며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우리 피아노도 기증했으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며 저렇게 잘 쓰였을 텐데, 아쉽네요. 우리 아들도 나중에 장가 가서 아내와 함께 피아노도 치고 음악처럼 아름답고 재미있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남편과 이야기 나누면서, 젊은 부부의 연주를 한참 듣다 왔다.

처음에는 재미있었지만, 나중에는 엄마가 억지로 시켜서 힘들었다는 이제 다 큰 우리 아들과 이제 재미있게 악기를 배우는 어린 친구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음악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한 가지 악기라도 배우고 익히면서 아름답고 행복하게 지내길 바랍니다. 그런데 악기를 배우다 보면 처음에 재미있다가도 힘들 때가 있답니다. 조금만 참고 좌절하지 말고 꾸준히 도전해보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