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교육

삶의 정수는 일상 속에 있다

미국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우리는 때때로 삶의 해답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여행이 해답을 안겨주는 일은 드물다. 오히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일상 속에서 해답을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상을 낯설게 볼 수 있는 시간을 얻었기 때문일 테다. 16년간 암실에서 사진 현상만 해왔던 이 남자, 월터 미티도 마찬가지였다.

글 이중기(프리랜서 라이터) 사진제공 유니콘텐츠

삶의 정수를 담은 사진을 찾아서

월터는 16년간 잡지 <라이프>에 몸담아왔다. 지금의 <라이프>를 있게 한 유명한 표지 사진 상당수가 그의 손을 거쳐 인화됐다. 그는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도, 원고를 기획하고 작성하는 기자도 아니지만, 지금의 <라이프>를 만든 핵심 인력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도 이제 옛말이다. 시대는 변했고 사람들은 잡지를 보지 않는다. 스마트폰은 잡지를 비롯한 수많은 인쇄 매체를 잡아먹었고, 이로 인해 <라이프>의 수입도 지속해서 감소했다. 더 이상 적자 운영을 견디지 못한 <라이프>는 인터넷 매체로 전환을 시도하는데, 이 과정을 거치면 대다수 인원이 실직하게 될 터였다. 물론 필름 현상 업무만 16년간 해온, 아날로그 그 자체의 인생을 살아온 월터 미티 또한 마찬가지였다.

직원 재임용 심사를 앞둔 어느 날. 월터는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될 <라이프>의 표지 사진 필름을 잃어버린다. 마지막 표지 사진이기도 하거니와 사진작가 숀이 ‘삶의 정수’를 담아낸 자신의 인생역작이라고 자화자찬한 작품이었기에 더욱 난처해진 월터. 이를 찾기 위해 전 세계를 휴대전화도 없이 돌아다니는 숀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생전 해외여행 한 번 못해봤던 월터. 이름도 생소한 그린란드 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월터의 모험은 환상적이다. 북극해 한복판에서 조업 중인 원양어선을 타기 위해 헬기에서 뛰어내리거나, 폭발이 임박한 화산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내려온다거나, 고산병을 이겨내고 에베레스트 산맥에 올라 눈표범을 목격하는 등 ‘영화’ 같은 일들이 쉴 새 없이 펼쳐진다.

하지만 정작 모험 속에서 월터는 아무것도 찾지 못한다. 오히려 반복되는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을 순식간에 겪으면서 잠시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정작 찾으려던 <라이프>의 표지 사진 필름은 엉뚱한 곳에서 발견한다. 퇴사가 확정되고 화가 나 쓰레기통에 버린 회사 지갑 안에 들어있던 걸 월터의 어머니가 찾아놓았던 것. 먼 길을 돌고 돌아 모든 일의 원인이 자신이란 걸 깨달은 오이디푸스처럼, 월터의 모험은 결국 월터 자신으로 귀결된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인생의 해답을 찾는 데 있어 별세계로의 여행, 타인의 조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순간 등이 중요한 ‘도구’로 역할을 할 수 있어도 그것이 해답이나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해답은 언제나 자기 자신 안에 있으며 이를 끄집어내놓을 수 있는 것도 오롯이 자신뿐이라는 사실. 영화는 오이디푸스 시절부터 내려온 케케묵은 진리를 박진감 넘치게 그려냈을 뿐이다.

우리의 삶은 판타지가 아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월터가 <라이프>의 마지막 표지 사진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사진작가 숀이 ‘삶의 정수’를 담아냈다고 자부했던 표지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월터 미티. 월터가 현미경 안경을 끼고 필름을 햇빛에 비춰보는 순간을 포착한 컷이다. 지금의 <라이프>가 있기까지 스포트라이트에서 살짝 비켜난 곳에서 최선을 다해왔던 이들에게 바치는 헌정 컷인 셈. 감격에 벅찰 법하지만 월터는 의외로 담담하다. 오히려 기념으로 하나 사두어야 하지 않냐는 여자 친구의 물음에 “지금 사는 건 멋이 없다”는 너스레까지 떤다. 마치 큰 모험을 마치고 돌아와 한 뼘 더 자란 성장 영화 주인공처럼, 월터는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삶과 영화를 구분 짓는 것은 단순히 스크린의 유무만이 아니다. 삶은 영화처럼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상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켜켜이 쌓인 하루만이 느리지만 강력한 변화를 만든다. 월터의 과장된 모험과 이로 인한 급속한 성장을 우리 일상에서 찾는 건 판타지의 영역이나 다름없다.

영화는 멋들어진 대사와 자신감에 가득 찬 월터의 모습으로 끝이 나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게 매끈하게 절단되지 않는다. 그 이후로도 삶은 이어지고, 변화는 계속되고 우리는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분투한다. 엔딩 스크롤이 올라간 이후 월터의 삶 또한 그러할 것이다. 인생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주는 묘안은 없을뿐더러 월터와 같은 극단적인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그렇다. 어찌 보면 월터는 지금까지 펼쳐왔던 모험보다 더 큰 ‘일상의 모험’을 펼쳐야 할지도 모른다.

‘멋들어진 엔딩’보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라이프>의 마지막 사진이 말하듯 ‘삶의 정수’는 ‘일상’에 있다. 이는 실제 <라이프>의 역사가 증명한다. 실제로 2007년 인쇄 잡지를 폐간하고 온라인으로 전환한 것은 영화와 동일하다. 하지만 <라이프>의 마지막 표지 사진은 다소 맥 빠지게도 J. F. 케네디의 석상 사진이다. 위대한 미국의 인물들이라는 특집 기사의 사진으로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라이프>의 마지막 호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사진이다. 어쩌면 <라이프>에게는 거창한 마지막 표지 사진이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라이프>는 인쇄매체와는 작별을 고했지만 인터넷매체로서 훌륭히 체질 개선에 성공해 온라인 시대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시대의 변화에 안녕을 고하는 멋들어진 엔딩보다 흐름에 발맞춘 변화가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교육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때때로 ‘좋은 교육’은 교실 저 너머에 있다고 생각한다. 울타리 밖의 교육, 기존의 가치에서 벗어난 교육, 남들은 시도하지 않았던 교육을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학생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변화시키는 교육은 존재할 수 있지만 일상적일 수는 없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드라마틱한 내일’보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로 나아가야 할 이유는 이토록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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