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교육지구 통신

함께 꿈꾸는 다른 세상에서의 가능성, 아름다운 동행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이야기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방구들 영화’였습니다. 그저 영화를 보고 싶어서 갔을 뿐이었는데, 세상과 아이들과 자신을 다시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게 모두 강남서초교육지원청 탓입니다. 교육청은 내게 일어난 작금의 사태에 책임을 통감하고 어서 빨리 다른 학부모님들도 모셔야 합니다. 그러다가 혹시 내게 다시 참여할지 묻는다면, 물론 염치 불구하고 냉큼 또 손을 들겠지요.
* 마을과 함께 아이들을 키워간다는 모토하에 서울시와 25개 자치구, 서울시교육청이 함께 펼쳐가고 있는 혁신교육지구 사업을 소개, 안내하는 지면이다. 이번 호는 강남서초교육지원청과 자치구가 함께 진행한 학부모 강좌 참여기를 학부모의 목소리로 들어본다.

글·사진제공 이준희(학부모)

교육청이 보내온 가정통신문

작년 가을. 아이들의 가정통신문에서 ‘방구들 영화 재미진 인문학’이라는 프로그램 안내를 봤습니다. 매주 영화를 보고 강의를 듣는 일정이었습니다. 평소 영화를 좋아하는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했습니다. 매주 아침마다 좋은 영화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강의를 듣거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영화 <풀레전트빌>을 여기서 봤습니다. 보기 좋은 것만 있던 흑백의 TV 세상에 들어간 주인공들은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플레전트(pleasant)’한 마을은 ‘언플레전트(unpleasant)’한 것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좋은 것, 나쁜 것 모두 있는 것이 세상이다. 나의 삶은 어떤지, 의문을 갖게 됐습니다.

영화 <미라클 벨리에>를 보고 아이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스스로의 삶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함께 읽었던 책 <기억 전달자>는 정해진 운명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대가로 주어지는 안락한 삶에 대해 아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영화 <파수꾼>은 충격이었습니다. 영화는 아이들이 하루를 꼬박 보내고 있는 학교의 진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아이들의 생활 터전과 삶의 모습을 알고 나서는 아이들에게 함부로 이래라저래라하기가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아이들은 매일의 삶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일을 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나’의 불안을 넘어 ‘우리’의 연대로

그렇게 1기 모임이 끝나고 그저 영화나 볼까 가볍게 모였던 이들은 이제 모임의 이름을 직접 정하고, 연간 활동 일정을 계획하고, 심지어 읽을 책과 저자들에 대한 강의 섭외까지 맡아 주도적인 기획 역량을 갖춰가기 시작했습니다.

2기 모임은 심화 과정으로, 한 권의 책을 몇 주에 걸쳐 읽으며 다양한 주제에 대해 깊은 토의를 하고 있습니다. 책 <수상한 질문, 위험한 생각들>에서는 기존에 당연시해왔던 많은 통념이,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는 더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기존의 학벌이니, 잘나가는 직업이니 하는 것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불안합니다. 이왕이면 우리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가면 좋겠기에, 누구네는 어디서 뭘 시킨다기에 한없이 불안해집니다.

이곳 강남·서초는 그 불안을 자양분 삼아 먹고사는 이들이 가장 많은 곳입니다.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 모임은 문제를 에두르지 않고 직시합니다. 즉 불안의 끝인 ‘입시’에 대한 적극적인 접근으로써 입시 전문가의 강연도 듣고 있습니다. 전 입시컨설팅 전문가이자 현 교육운동가인 박재원 선생은 3월 강연에서 학부모의 불안에 공감했습니다. 그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업자들’의 말이 아니라, ‘내 아이들’의 말을 들어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마음을 먹어도 혼자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그는 학부모, 더 나아가서는 마을공동체의 ‘연대’를 제안합니다. 모두가 불안하지만 함께일 때 결국 행복할 수 있다는 말로 이해했습니다.

6월에는 입시제도(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설명을, 제도의 설계자인 진동섭 선생(전 서울대 입시사정관)으로부터 직접 듣습니다. 입시제도 개선 계획이 어떠한 지향을 갖고 있는지, 현재는 어디쯤 와 있는지, 그래서 아이들과 학부모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정부와 교육 당국의 의지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5월에는 제도 밖의 사람들을 만나는 강연이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들었던 강연의 주인공 윤승철 씨는 탐험가였습니다. 아이들은 강연 내내 눈을 빛냈고, 강연 후 윤승철 씨와 사진도 찍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모르는 어떤 가능성을 봤겠지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강연을 들으며 결국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걸까요 아니면 남 보기에 번듯하기를 바라는 걸까요. 아이들을 앞세웠지만 결국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요구는 아니었을까요. 현실 핑계를 대면서 우리 아이들은 뭐라 말하고 있는지, 나는 뭘 원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귀를 막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장렬한 실패가 필요한 까닭

영화들을 보고, 감상문을 적고, 강연을 들으며 관점을 넓히고, 책을 읽고 토의하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결국 아이들을 이해하려면 나부터 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저자는 ‘바로 이 대목에서 장렬히 실패하기 위해서(264쪽)’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질문, 그 정답 없는 질문들의 세상을 헤쳐나가야 할 아이들에게 지금의 정답을 강요해온 우리 역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지, 그것이 ‘학부모 인문학 연수’라는 프로그램의 존재 의의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답은 바로 나오지 않을 겁니다. 가장 중요한 질문에는 원래 답이 없게 마련이니까요. (265쪽)

모임을 통해 우리는 예전의 마을공동체까지는 아니지만 비슷한 꿈을 공유하는 학부모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더는 혼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아직 발걸음은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함께이기에 무모하거나 어리석어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잘해나가고 있습니다.

눈을 돌려 나 자신도 슬쩍 바라봅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아주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됩니다. (176쪽)’ 그 힘으로 나는 아이들에게 튀어나갈 잔소리를 붙잡아 매고 남들에 휩쓸리려는 불안 속에서 ‘나’를 지탱하려 합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도 더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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