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회 소식

격차는 발전의 원동력

글 여명(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질투가 많았다. 열등감이 컸던 것 같다. 열등의식의 출발은 격차였다. 내가 최초로 격차를 느꼈던 대상은 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6학년 때까지 단짝이자 라이벌이었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타고난 천재 같은 과였다. 보통의 또래들이 공부나 피아노, 미술 등의 교양 개발을 부모님께서 ‘시켜서’ 했다면 그 친구는 그것들을 ‘즐겨서’ 스스로 하는 부류였다. 그래서 언제나 나보다 그림을 잘 그렸고, 톡톡 튀는 발상으로 시를 썼으며, 내가 특히나 어려워했던 과목인 수학을 잘했다. 나는 늘 그 아이의 뒤를 쫓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함께 다녔던 피아노 학원에서 그 친구가 금상을 받으면 나는 은상을 받았고, 통일 시 쓰기 대회에서 그 친구가 최우수상을 받을 때 나는 우수상에 머물렀다. 마지막 6학년이 되던 해 그 친구와 같은 반이 됐다.

졸업식 날, 우리가 첫 제자였던 담임선생님은 급우들 모두에게 작은 선물과 편지를 나눠줬었다. 선생님의 편지 중엔 이런 문구가 있었다. “ㅇㅇ이와 명이 중 누구에게 상을 줘야 할지 고민했던 날들이 많았다.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야.” 그 친구와 다니며 실력의 격차로 인해 열등감을 느끼고 그 아이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 초등학교 6년 동안 나를 성장시킨 힘이었던 것이다. 또한, 생각해보니 내가 절대 따라갈 수 없던 수학 실력, 피아노 실력 말고 내가 그 친구에 비해 비교우위가 있던 부분들이 있었다. 그 친구는 선천적으로 글재주가 좋았으나 글쓰기는 그 아이의 관심 분야가 아니었다. 그에 비해 나는 자라면서 역사책, 철학책 등을 즐겨 읽었고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하며 논평을 쓸 일이 많았기에, 글쓰기 실력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신문사 사설을 필사하곤 했다. 지금은 당연히 그 친구보다 내가 글을 잘 쓸 것이다.

격차에 대한 개념을 형성해주는 곳은 학교이다. 시장경제는 나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경제교과서, 경쟁은 덮어놓고 악한 것이라는 사회·도덕교과서가 문제다. 자기소개서에 국제 올림피아드나 학교 외부 상을 못 쓰게 하는 정책도 의문이다(왜인지는 모르겠으나 학생이 속한 관할의 교육감상은 예외다). 이유는 교외상은 교내상 수상자들에게 격차에 따른 불공평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란다. 청소년들이 인생에서 실력과 노력으로 경쟁하게 되는 첫 관문에 ‘격차는 나쁘다’는 이념 논리가 들어가버린 것이다. 그런데 취업을 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회는 각종 스펙과 수상실적, 남들과 내가 어떤 격차를 가지고 있는지에 관심을 둔다.

격차는 선악의 가치가 들어간 용어가 아니며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남과 내가 다른 상태인 격차가 서로를 경쟁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인류가 진보해왔고 문명이 발전해왔다. 격차는 인류 번영의 선결조건인 것이다. (서울시의원이 내 인생의 목표였던 적은 없었으나) 어쩌다 보니 최연소 서울시의원이 된 나를 발전시킨 힘의 3할은 열등감이었다. 저 언니처럼 예뻐지고 싶은 마음이 주린 배를 부여잡고 다이어트를 한 이유였을 것이고, 저 선배만큼은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술 취한 밤에도 책을 읽게 했던 원동력이었다. 격차 그 자체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나 스스로 노력하는 과정에서 내가, 우리가 발전한다. 못 미더워도 한번 믿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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