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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여행하는 여러분 앞에 블랙홀이 불쑥 나타난다면 무척 놀라고 당황할 것이다. 하지만 그 블랙홀에서 휠체어가 나온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스티븐 호킹 박사가 만든 차원과 성간 이동용 인공 블랙홀이기 때문이다. 호킹 박사가 탄 자율주행 휠체어가 소행성 표면에 내려앉더니 기계음으로 안내한다. “지름 4,177km 소행성 68719 장영실” 상투를 튼 남자가 대장간 일을 하다 그 소리를 듣자 급히 의관을 정제하고 다가온다.

글. 이명석 문화비평가 / 일러스트. 박지연

시공간을 초월한 두 과학자의 만남

호킹 (기계음으로) 저는 20세기 지구의 영국에서 별과 시간을 탐구하던 스티븐 호킹이라고 합니다. 휠체어가 이상반응을 일으켜 불시착하게 됐군요.

장영실 안녕하세요, 호킹 박사님. 저는 15세기 조선에서 별과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를 만들던 장영실입니다. 박사님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호킹 아하! 저 역시 선생의 업적을 전해 듣고 놀란 바 있습니다. 아직 유럽의 천문학이 걸음마 단계일 때 아랍과 중국에 버금가는 독자적인 천문 관측 도구를 만드셨더군요. 그런데 지구를 떠나신 뒤에는 이렇게 작은 소행성에 머무르고 계셨네요.

장영실 이 소행성은 한국의 천문학자가 발견해 제 이름을 붙여준 곳입니다. 소설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의 별은 너무 작아 의자만 움직여도 하루 44번이나 석양을 볼 수 있죠. 저 역시 천체를 관측하기에는 이렇게 작은 소행성이 훨씬 낫다고 여겼습니다.

호킹 별에 빠진 사람답게 아이의 마음을 간직하고 계시는군요. 제 어릴 때가 생각나네요. 아버지는 국립의학연구소 기생충학과장이었고, 제가 의학을 공부하기를 바라셨죠. 하지만 저는 밤하늘의 별이 훨씬 흥미로웠답니다. 보드게임을 직접 만들며 우리가 사는 세상을 축소한 모형을 그려보기도 했고요. 그러다 디크란 타타라는 선생님이 ‘우주의 청사진’인 수학에 눈뜨게 해줬죠. ‘모든 탁월한 인물 뒤에는 탁월한 교사가 있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장영실 저는 노비 출신이라 대장간 도구를 다루며 자랐습니다. 다행히 저의 재주를 눈여겨본 관리가 있었고, 나중에는 왕실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저에게는 세종대왕이 큰 스승이자 후견인이라 할 수 있겠네요.

호킹 고대 그리스의 이솝이 생각나네요. 노예 출신이었지만 탁월한 이야기꾼의 재능을 발휘해 만인의 스승이 됐죠. 선생 역시 사회적 신분의 차이를 이겨내고 위대한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장영실 박사님이 겪은 시련에는 비할 바가 아니죠. 20대부터 근위축성측생경화증으로 전신 마비가시 작됐음에도 우주와 시간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뒤바꾸는 연구를 해내셨죠.

별을 바라보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길

호킹 저것들이 선생의 발명품인가요? 구경해도 되겠습니까?

장영실 물론입니다. 이것은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인형들이 종, 북, 징을 울리게 해놨죠. 그 옆은 낮에는 해, 밤에는 북극성의 위치로 시간을 알리는 일성정시의, 천문 관측 기기인 대간의, 소간의입니다. 옥루는 시간을 알리는 자격루와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는 혼천의를 결합한 천문기구라 할 수 있습니다.

호킹 기술적으로도 훌륭하지만 용을 새긴 모양새 의 아름다움도 탄복할 만합니다. 천문학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시간’의 비밀을 밝히는 거죠. 저의 책에 <시간의 역사>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도 그렇고요.

장영실 시간은 세상의 원리를 밝히는 기초 중의 기초라고 할 수 있죠. 제가 살던 조선은 제사를 중요시했습니다. 특히 일식이 문제였죠. 당시 일식은 하늘이 왕에게 내리는 경고로 여겨, 때에 맞춰 왕과 신하들이 소복을 입고 맞이해야 했습니다. 10분이라도 잘못 예측하면 관리들이 벌을 받았죠.

호킹 20세기 물리학과 천문학의 핵심 과제도 비슷합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계승해 시간과 공간을 하나로 설명하는 ‘모든 것의 이론’을 찾는 과정이었죠. 저의 일생을 그린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고요.

장영실 박사님은 특이점 정리, 블랙홀 증발, 양자우주론 등 혁명적 이론으로 물리학과 천문학 연구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블랙홀의 경계에 있는 ‘사건의 지평선’에서 ‘호킹 복사’라는 빛이 서서히 누출되어 블랙홀이 소멸한다는 이론도 흥미롭고요.

호킹 제가 갈릴레오, 뉴턴, 아인슈타인 같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있어서 가능했죠. 그리고 이론물리학의 한계가 있습니다. 진짜 과학적 장비로 관찰하고 측정하기 전에는 단지 이론일 뿐이죠. 그런 면에서 항상 선생 같은 공학자나 발명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가 뺨의 근육을 움직여 단어를 찾고, 음성변환시스템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던 것도 그들 덕분이죠.

장영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종대왕의 천문의기 사업에는 여러 이론가가 있었고, 그들과의 협업 속에 새로운 도구들을 만들었죠. 그런데 박사님과 함께였으면 더욱 멋진 일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우리와 같은 꿈을 꾸는 학생이나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십니까?

호킹 내 아이들에게 항상 했던 말이 있습니다. 너의 발을 내려다보지 말고 저 위의 별들을 올려다봐라.

장영실 그런데 제가 살았던 시절에 비해 지구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높은 빌딩, 혼탁한 공기, 요란한 조명 때문에 밤하늘의 별을 보는 일조차 어렵죠.

호킹 제가 인생의 막바지에 여러 번 호소했습니다. 인류는 지구를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고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별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요?


인물정보

스티븐 호킹 (1942~2018)

아인슈타인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물리학자다. 21살에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지만, 병마와 싸우며 장애를 극복하고 우주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했다. 블랙홀도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호킹 복사 등 우주를 이해하는 새로운 이론을 내놓았다.

장영실 (1390년경~미상)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로 꼽힌다.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 자격루를 최초로 만든 인물이다. 동래현의 관노, 즉 노비 출신이었으나 그 뛰어난 능력으로 세종의 총애를 받아 신분을 뛰어넘어 수많은 천문기구를 제작해 ‘과학을 위해 태어난 인물’이라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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