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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을 탐험하며 지도를 만들었던 이들 덕분에 지구의 비밀은 하나둘 드러났고 이제는 위성 지도가 모든 곳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마리나 해구의 깊은 골짜기 아래에는 인류에게 알려지지 않은 바닷속 세상이 있다. 지금 그 곳으로 ‘엔데버호’가 비밀리에 들어왔다. 오래된 영국 해군복을 입은 장교가 내리더니 ‘고산자 지도 연구소’로 들어간다.

글. 이명석(문화비평가) / 일러스트. 장명진

새로운 세계를 연 동서양의 두 인물

김정호. 어서 오십시오. 제임스 쿡 선장님. 제가 선장님을 초청한 조선의 김정호입니다.

쿡. 거센 풍랑 때문에 늦었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이 편지로 보낸 지도 덕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김정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선장님을 두고 말하더군요. ‘세계의 대양을 3번 항해하며 이전 250년 동안의 항해가들보다 더 많은 발견을 했다. 괴혈병을 이겨냈고 정확한 항해술을 남겼으며 비밀에 쌓여있던 태평양을 지금 우리가 아는 태평양으로 만들었다.’

쿡. 허허 유럽인들의 과장된 말입니다. 동양에도 아랍의 이븐 바투타, 신라의 혜초 등 위대한 여행가들이 있었죠. 저는 그저 낯선 바다가 궁금해 배를 탔던 사람입니다. 선생님의 호가 ‘산의 뿌리를 찾는 사람’, 고산자(古山子)라 들었습니다. 조선 곳곳을 돌아다니며 ‘청구도’, ‘대동여지도’ 같은 놀라운 지도들을 만드셨더군요.

김정호. 큰 오해부터 풀어야겠습니다. 제가 평생 지도를 만들며 살았지만 과장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흥선대원군이 제 지도와 목판을 불태우고 저를 옥에서 죽게 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최남선이라는 문인이 지어낸 것들입니다. 그걸 일제가 <조선어독본>에 옮겼죠. ‘조선이 이렇게나 인재를 몰라보는 무능한 나라였다’는 의미였습니다.

쿡. 저도 이상하다 여겼습니다. 뛰어난 지도란 결코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제가 1768년부터 세 번의 대항해를 한 것도 영국 왕실의 특별한 지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샌드위치라는 음식을 만든 걸로 유명한 샌드위치 백작이 큰 후원자였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하와이 주변의 섬을 발견해 그의 이름을 붙여 샌드위치 제도라고 했죠.

미지의 세계를 축약하는 ‘지도’

김정호. 조선은 천문관측 도구와 시계의 기술만큼 지도의 정확성도 상당했습니다. 저는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런 지도 속 세상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절친했던 실학자 최한기의 도움으로 닥치는 대로 지도들을 끌어모아 연구하고 서로 다르거나 부족한 부분을 고치며 더 크고 훌륭한 지도를 만드는 일에 열중했죠. 선장님이 탐험가라면 저는 ‘지도 덕후’라고 불릴 만합니다.

쿡. 저 역시 비슷합니다. 항구의 잡화점에서 일하다 석탄 운반선의 견습 선원으로 들어갔죠. 항해술, 천문학도 배웠지만 지형을 측량하고 지도를 그리는 게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나중에 해군에 들어가 북아메리카에서 전쟁을 치를 때 제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있었고, 이례적으로 승진해 국가적 대항해의 선장을 맡게 되었죠.

김정호. 제가 <지도유설>에 이렇게 썼습니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이 지도로 쳐들어오는 적을 막아 거칠고 사나운 무리를 제거하고, 시절이 평화로우면 이 지도를 나라를 경영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 사용한다.’ 지도의 정확성은 전쟁과 평화 양쪽으로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죠.

쿡. 엔데버호를 이끌고 1차 탐험에 나설 때 표면적인 목적은 남태평양에서 금성의 궤도를 관측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스페인, 포르투갈이 지배하던 바다를 지나면서 ‘지도를 만들러 간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진짜 목적은 남반구에 있을지도 모를 거대한 대륙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김정호. 북반구의 고위도인 북유럽이 난류 덕분에 여러 문명국가를 만들었듯이 남반구에도 비슷한 대륙과 문명이 있어야 균형이 맞을 거라는 생각이었겠죠?

쿡. 맞습니다. 사실 항해 초기에 그 대륙이 없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절대 믿지 못할 사람들이 딴 소리를 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남쪽 바다를 탐험했죠. 저는 이렇게 일기에 썼습니다. ‘이번에는 남방대륙이 존재할 거라는 망상에 종지부를 찍으리라. 꿈을 꾼다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망상은 안 된다.’

김정호. 땅과 물과 산이 거짓말하지 않도록 하라. 그것이 지도 제작자의 소망이죠. 조선이라는 땅을 가능한 정확하게 그리는 게 제 평생의 숙원이었습니다. ‘대동여지도’는 한반도 전체를 22개 구역으로 나누고 각 구역을 1~18면으로 그렸습니다. 각 부분을 따로 볼 수도 있지만 이으면 건물 3층 크기의 큰 지도를 만들 수 있죠.

쿡. 선생님의 지도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이분은 뛰어난 지리학자이지만 21세기로 치면 뛰어난 인포메이션 그래픽 디자이너다. 마을과 지형을 간결하게 표현하면서도 거리와 방향을 잘 알게 했습니다. 관아, 창고, 역참, 산성 등도 저마다의 기호로 구분하게 했고요. 또한 이걸 목판으로 새겨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게 했죠.

김정호. 지금의 젊은 친구들도 새로운 지도를 계속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땅이라도 건물과 문화적 풍경이 계속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죠.

쿡. 그뿐입니까? 우주의 지도, 뇌의 지도, 유전자의 지도···. 미지의 세계를 축약하는 일의 매력은 앞으로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인물정보

제임스 쿡 (1728~1779)

영국의 탐험가이자 항해가. 3회에 걸친 탐험 및 항해로 태평양의 많은 섬들의 위치와 명칭이 결정되고 현재와 거의 같은 태평양 지도가 만들어졌다. 이밖에도 여러 곳의 원주민에 대한 인류학·민족학적 조사와 동식물의 분포도 밝혀져 과학적 탐험의 열매를 거두었다.

김정호 (1804~1866 추정)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로 꼽힌다.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 자격루를 최초로 만든 인물이다. 동래현의 관노, 즉 노비 출신이었으나 그 뛰어난 능력으로 세종의 총애를 받아 신분을 뛰어넘어 수많은 천문기구를 제작해 ‘과학을 위해 태어난 인물’이라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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