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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랄라 유사프자이가 고향 파키스탄 밍고라를 떠나 영국으로 온지 10여 년, 외로운 나날을 보내다 <피터팬>을 읽고선 깨달았다. 아이의 마음을 간직한 사람은 언제든 꿈의 세계로 날아갈 수 있다는걸. 팅커벨의 안내로 밤하늘을 날아 도착한 고향에 아이들이 모여 있다. 학교에 가기엔 이른 시간인데? 아이들은 중절모를 쓴 남자를 둘러싼 채 깔깔댄다. 남자가 이야기를 마치자 웃음을 머금고 학교로 달려간다.

글 이명석(문화비평가) / 일러스트 장명진

어린이 인권과 교육받아야 할 권리

말랄라. 선생님의 옷차림이 낯서네요. 저처럼 환상의 힘을 빌려 날아오신 것 같군요. 아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나게 들려주고 계셨나요?

방정환. 저는 100여 년 전 한국에 살았던 방정환이라고 합니다. 제가 쓴 <칠칠단의 비밀>이라는 모험 소설을 읽어줬습니다. 고아 소년이 서커스단으로 위장한 범죄 조직에 붙잡힌 여동생을 구하는 이야기죠.

말랄라. 소파 방정환 선생님! 꼭 만나 뵙고 싶었어요.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고 그들의 교육과 인권을 위해 헌신하셨다고 들었어요.

방정환. 과찬입니다. 사실 ‘어린이’라는 말 자체는 조선 중기 <언해본>에도 나오고 최남선 선생은 ‘어린이의 꿈’이라는 시를 쓰기도 했죠. 하지만 저는 그 의미를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노인, 어른, 젊은이가 있듯이 어린이가 있다. 그 어린이를 어른보다 높게 대접해야 한다. 그래서 ‘어린이날’도 만들었죠.

말랄라. 그 어린이날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네요. 저의 아버지도 비슷한 생각을 하셨어요. 저는 1997년 파슈툰족의 아이로 태어났어요. 이곳엔 ‘아들이 태어나면 축포를 쏘고 딸이 태어나면 커튼 뒤에 숨긴다’는 말이 있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직접 학교를 운영하시며 제가 공부에 애쓰는 걸 기특하게 여기셨어요. 제 이름은 전쟁 영웅인 소녀 ‘말랄라이’에서 따왔다고 해요. 하지만 저는 전쟁은 싫고 학교가 좋았어요. 제겐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죠.

방정환. 제가 어렸을 때 당시 어른들은 아이들을 신식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 했어요. 저는 집에서 댕기머리를 하고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웠죠. 그런데 소학교에 놀러 갔다가 교장 선생님의 권유로 머리를 깎고 스스로 입학했어요. 할아버지는 노발대발하셨죠. 집이 가난해 도시락도 싸갈 수 없었지만 공부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10살 무렵에는 ‘소년입지회’라는 모임도 만들고, 친구의 집에서 궤짝에 먹칠을 한 칠판을 걸어두고 토론을 했죠. ‘물이 좋은가, 불이 좋은가?’ 이런 엉뚱한 주제로요. 하하.

말랄라. 제가 등하굣길에 만났던 가난한 아이들이 생각나네요. 그 아이들은 집 근처 공터에서 쓰레기 더미를 뒤져 먹을 걸 찾아야 했어요. 당연히 학교에 갈 형편도 아니었죠. 그런데 얼마 뒤 제가 그런 처지가 됐어요. 탈레반이 이 지역을 차지하면서 여자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걸 금지했죠. 저는 이름을 숨기고 블로그에 글을 써서 이런 실상을 외국에 알리려고 했어요.

방정환. 그러다 끔찍한 일을 당하셨죠? 2012년 학교 가는 버스에 탈레반이 올라타서 당신의 이름을 묻고선 권총 세 발을 쐈다고 들었어요. 의식을 잃고 중태에 빠졌다가 영국으로 이송됐고요. 목숨을 구하긴 했지만 청각을 잃고, 안면신경을 잘라야 했다고 들었습니다.

말랄라. 그들은 저를 죽여 본보기를 보일 셈이었죠. 하지만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곳 이슬람 성직자 수십 명이 규탄에 나섰고, 각국의 언론이 저에게 큰 관심을 보였죠. 2013년 뉴욕 UN 본부에선 반기문 사무총장의 소개로 단상에 올랐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분홍색 전통 의상에 피살당한 파키스탄 여성 총리 베나지르 부토의 숄을 두르고 이야기 했어요. “한 명의 어린이가, 한 사람의 교사가, 한 권의 책이, 한 자루의 펜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후에 노벨평화상까지 받았고요.

자유롭게 학교에 가서 즐겁게 공부하는 세상

방정환. 제가 살던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됐습니다. 어른들의 삶이 비참하니 아이들의 삶을 말할 것도 없었죠. 하지만 저는 어린이를 잘 키워야 그 어려움을 이겨낼 거라 여겼습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새로운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어린이>라는 잡지를 중심으로 동화대회, 예술강습회, 문화운동, 문학보급운동을 했습니다. 아동문학가 마해송, 동요 ‘반달’의 윤극영 등과 뜻을 모아 색동회를 만들기도 했고요. 저의 호가 소파(小波), 잔물결이라는 뜻입니다. 그 물결이 어린이들을 움직여 큰 물결을 만들 수 있다고 여겼죠.

말랄라. 제 아버지가 말씀하셨어요. 마지막 교실, 마지막 교사, 마지막 학생 하나가 남아 있다면 교육은 계속된다고. 소파 선생님이 딱 그런 선생님이셨어요.

방정환. 이제는 당신과 뜻을 같이 해 ‘나는 말랄라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그 역할을 할 거라고 여깁니다. 어느덧 해가 산 위로 돋아났네요. 제가 좋아했던 말이 있어요. “돋는 해를 바라보자.”

말라라. 그 해는 미래를 열어갈 어린이를 말하는 건가요?

방정환. 그런 뜻도 있지만 어린이들에게 아침 해를 함께 보자고 한 말이었어요. 해를 보려면 일찍 일어나야 하죠. 일찍 일어나려면 건강해야 하고요. 그러면 학교에 가는 게 즐거워지죠.

말랄라. 누구나 자유롭게 학교에 가서 즐겁게 공부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해요. 저는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 말하겠어요. 아프가니스탄에도 우크라이나에도 ‘탱크 대신에 펜을, 군대 대신 교사’를 보내달라고요.


인물정보

방정환(1899~1931)

1921년 어린이라는 단어를 공식화하며 1923년 5월 1일 어린이의 인격을 소중하게 여기고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 한국 최초의 어린이날을 만들었다. 어린이는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한국 사회에 가르친 한국 어린이들의 영원한 대부이다.

말랄라 유사프자이(1997~)

파키스탄의 인권운동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상황 속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억압에 반대하고 모든 어린이의 교육권을 위해 투쟁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최연소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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