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자존감을 높이는
교육환경 만들기

‘갑’과 ‘을’로 나누지 않는 교육

날이 갈수록 추락하는 교권, 학부모들의 지나친 간섭과 비민주적인 학교 운영, 교육 활동에 전념하지 못하게 하는 과도한 행정업무. 오늘날 교사는 ‘을’과 다름없는 위치에 놓여 있다. 이에 <지금 서울교육> 이문수 편집장과 초·중·고 교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교육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나누고 추락한 교권을 바로 세우기 위한 방안을 함께 살펴봤다.

교사에게 주어진 권리와 의무

<진행> 최근 학부모들의 무분별한 요구와 도를 넘는 간섭, 비민주적 인 학교 운영 등으로 교사들이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교육 현장의 선생님들과 ‘교사는 을이다’라는 주제로 함께 의 견을 나누고, 이를 개선하고 교사로서 자부심을 갖고 교단에 설 수 있 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5월이니, 우선 스승의 날 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김한옥 교사들에게 스승의 날은 곤혹스러운 날이에요. 저희 학교에 서도 스승의 날을 맞아 가정통신문을 보내는 문제로 갑론을박이 있었 어요. 사실 가정통신문을 보내는 것도 우스운 일인데, 안 보내면 선물 을 받지 않겠다는 걸 확실하게 표현하지 않았다며 학교가 미온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여기죠. 실제로 스승의 날에 어떻게 할지 상세하게 알려달라는 전화를 학부모로부터 여러 차례 받았어요. 무언가를 받는 것도 조건이 너무 많아요. 편지 정도는 괜찮지 않냐고 하는데, 비싼 고급 편지지는 또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스승의 날 자체에 대한 사고 의 전환이 필요한 현실이에요.

강지은 스승의 날이 제정된 취지와는 달리 선물을 주고받는 거에만 초점이 맞춰져서 아쉬워요. 교사에게 물질적으로 보상을 해줘야 하고, 주는 사람이든 받는 사람이든 부담스러운 날이라는 인식이 생겼어요. 최근 모 교육지원청에서 스승의 날을 앞두고 온라인을 통해 ‘청탁금지법 퀴즈대회’가 열렸었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김영란법’이 빠르게 정착됐고 잘 지켜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퀴즈대회까지 열리는 걸 보면서 자존심이 상했어요.

문재영 저희 학교는 작년에 똑같은 편지지를 나눠주고 편지를 쓰게 했어요. 근데 어떤 선생님은 많이 받고 어떤 선생님은 적게 받으면 교사들끼리 비교가 되니까 아예 선생님을 정해서 배당을 했죠. 편지를 받는 교사에게도 쓰는 학생에게도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올해에는 아예 운동회를 하는 것으로 바꾸고 학생회장이 대표로 꽃 한송이만 선생님들에게 전달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부담스러워서 하지 않기로 했어요. 스승의 날에 열렸지만 스승의 날의 의미는 찾을 수 없는 운동회가 된 거죠.

곽선아 스승의 날이 분란만 생기고, 그 의미도 많이 퇴색해서 없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다른 선생님이 학생과 이야기 나누는 걸 우연히 들은 적이 있었는데요. 선생님이 “내가 너의 스승이다”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니까 그걸 듣고는 학생이 실소를 터트리는 걸 봤어요. 스승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으려면 관계가 먼저 형성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거죠.

문재영 이제는 스승이라는 말이 교사에게 부담스러운 말이 된 것 같아요. 스승의 날이 교육의 날로 바뀌는 건 상관없는데, 그럼 교육의 날은 과연 무슨 날인가 의문이 들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날이 존재할 필요가 있는지 생각이 드네요.

정혜영 스승의 날을 없애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쉬운 마음이 컸어요. 스승이라는 건 서양에는 없는, ‘티처(teacher)’와는 다른 개념이죠. 우리는 스승이 뭔지 관념적으로 알고 있어요. 교사와 제자의 관계가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된다면 교사들도 훨씬 더 보람을 느끼며 교직에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기도 하고요.

<진행> 작년에 경기도교육청에서 20~30대 교사 5,000명에게 설문조사를 했었는데, 응답자의 47%가 “정년까지 교직에 있을 생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1위가 학부모, 2위가 학생, 3위가 교장·교감 등 관리자였습니다. 이 설문조사 결과처럼 실제로 현장의 교사들은 학부모와의 관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강지은 공교육의 교육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교사들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도 갈수록 제한하기만 해요. 학생에게 가정적인 문제가 있어서 교사가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먼저 학부모의 동의나 허락을 얻어야 하고요. 인터넷에 보면 “교사가 도대체 하는 게 뭐냐, 하는 게 없다”고들 하는데, 실제로는 교사들에게 권한이 주어지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할 뿐이죠. 교사가 문제를 가진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분명 있을 텐데 현실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게 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김한옥 권리와 의무가 같이 가야 하는데, 권리는 계속 제한하고 의무는 끝없이 늘어나고 있어요. 한 예로, 어떤 학교에서 교사가 신혼여행을 간 동안 안전사고가 발생했는데,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에 적절한 사전지도를 하지 않았다며 그 교사에게 책임을 물었다고 해요.

문재영 얼마 전에 학교에 거의 나오지 않는 학생의 부모님이 학교로 찾아와서 “그래도 선생님이시니까 애가 학교에 잘 나오도록 조금만 더 챙겨주고 신경 써달라”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황당했어요. 정작 부모들은 가정에서 아무것도 안 하면서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부모의 역할까지 요구하는 거잖아요. ‘군사부일체’라고 해서 스승과 부모를 동일하게 여겼던 예전에는 교사에게 권위가 있었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서 부모의 역할까지도 할 수 있었겠죠. 그런데 지금은 교사에게 요구하는 건 그대로지만, 실제로 교사가 할 수 있는 건 다 제한하고 있어요. 교육이 예전과 다르게 점점 서비스화되어가고 있고, 시대의 변화에 교사들도 맞춰나가야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부모의 역할까지 요구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봐요.

강지은 저희 학교에 아동학대 문제를 겪는 학생이 있는데, 부모들은 법률적으로 제한받는 게 없어요. 그냥 “앞으로는 잘하겠다” 하면 끝나는 거죠. 그런데 교사에게는 너무나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요. 개인정보보호 때문에 학생의 가정사에 대해서 알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문제가 생겼을 때 몰랐다고 하면 또 교사에게 책임을 물어요. 근데 교사의 휴대전화 번호는 학부모들에게 공개되고, 몇 시가 됐건 시도 때도 없이 학부모의 전화를 받는 게 일상이죠.

정혜영학부모가 본인의 학창시절 가졌던 학교에 대한 불신을 지금에 와서 교사들에게 분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제도적인 뒷받침이 없어 교사들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죠. 전화번호 공개를 제한하는 원칙을 세우고, 업무용 휴대전화를 지급하는 것도 좋지만 상담 절차도 교육청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마련해줬으면 해요.

강지은 똑같은 행동을 해도 교사가 했을 때와 부모가 했을 때 반응이 너무 다르죠. 예를 들어, 엄마가 편식하는 애를 혼냈다고 하면 “애를 혼낼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그럴 때 혼내는 건 잘못된 게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면서, 교사가 학생이 싫어하는 채소지만 건강을 생각해서 억지로 먹게 했다고 하면 “그건 아동학대나 다름없다”고 해요. 부모가 애를 때리고 혼내는 건 마땅히 할 수 있는 사랑의 행위고, 교사는 그 반의반만큼도 안 해도 학생을 미워해서 한 학대행위라고 여기죠. 전반적인 우리 사회 정서가 그래요. 그러다 보니 교사의 행동은 하나하나가 민원의 대상이 되는 거죠.

김한옥 흔히 핀란드를 교육선진국이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학생들의 수학 흥미도를 보면 핀란드나 우리나라나 별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언론에서는 우리나라의 가장 안 좋은 사례와 핀란드의 가장 우수한 사례를 비교하면서 마치 우리나라 교육의 질이 굉장히 낮은 것처럼 말하죠. 학부모들은 그런 기사들을 보고서는 “우리나라 학교, 교사들은 뭐 하냐”고 묻고요. 사실 학생들이 수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건 가정이 아닐까요? 하기 싫다고 해도 억지로 학원에 보내잖아요. 또, 다수의 학부모가 교사는 성직자처럼 아주 높은 도덕적 수준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서로 간의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어요.

 

추락한 교권 바로 세우기

<진행>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엎드려 자도 교사들은 학생이 반발할까 봐 깨우기를 주저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학생들의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기도 하고요. 실제로 중·고등학교에서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잘 때 교사들은 어떻게 하고,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문재영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 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실제로 관계를 잘 형성하고 있는 선생님이 학생을 깨웠을 때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거든요. 자는 학생을 깨웠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경우 대부분은 강사분들이 수업을 진행할 때예요. 그분들은 학교에 하루 이틀 정도만 나오고 본인 수업만 하고 가니까 학생들이 많이 볼 기회가 없거든요. 물론 관계 형성이 잘 안 됐다고 해서 그러는 게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죠. 교사의 권위가 이렇게까지 떨어진 마당에 교사와 학생 사이를 붙들 수 있는 건 친밀감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김한옥학생이 이상행동을 보일 때 교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그 학생을 걱정해주는 거예요. 꾸중부터 하면 관계가 깨져버리죠. 저희 학교에 무기력증에 빠져서 수업시간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자는 학생이 있어서 제가 “무슨 일 있니? 어디 아프니?” 하고 물었더니 “그냥 피곤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쿠션까지 사다 주면서 같은 반 학생들에게 “저 친구가 몸이 약하고 지금 수업에 집중하기 힘든 시간이니까 조금만 잘 수 있도록 배려해주자” 하며 동의를 구했어요. 그랬더니 5분도 안 돼서 이제는 안 졸린다며 일어나더라고요.

곽선아 저는 자는 학생들을 깨울 때 자신이 없어요. 학생마다 개인적인 상황이 다른데 “내 수업시간이니까 너는 일어나서 들어야 해”라며 강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거죠. 수업시간에 자지 않고 깨어 있는 것만이 중요한지 의문이 들기도 해요. 잠은 자지 않지만, 내내 떠들기만 한다면 어떨까요. 저와 같이 공부하는 게 그 학생에게 정녕 유의미한 일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 학생들이 그 안에서 배워가는 게 있다는 확신이 부족한 편이라서 학생들을 강제하기가 어려워요.

<진행> 현장의 교사로서 교권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교권을 바로 세우고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요?

강지은교권은 교육적 목표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학생이 문제 행동을 일으켰다면, 그 행동은 학생으로서도 잘못했고,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도 잘못된 행동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으니 그 전에 교사가 방관자가 아니라 학생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 그 힘이 교권이라고 생각해요.

김한옥 ‘스승’으로서 올바른 태도와 마음가짐을 갖고 학생들에게 접근해야 해요. 물론 그러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교사의 말 한마디에 학생이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는 만큼 교사로서 무엇을 갖춰야 하는지 자각하고 정진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사회적인 인식도 바뀌어야 해요. 흔히 어린 학생이 어른인 교사에게 얼마나 대단한 짓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데, 아이들이라도 악의를 가지면 교사에게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회적으로 인식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인식 아래에서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야 해요.

문재영스승이라는 의미가 살아 있으면 더 좋고, 교사 개개인도 당연히 노력해야죠. 그런데 교사가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태도가 고쳐지지 않는 학생들도 분명 있기 마련인데, 그런 학생들을 달래는 것도 처벌하는 것도 모두 주체가 같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두 주체가 분리돼야 해요. 자기를 처벌하는 사람이 자기를 달래준다? 학생들한테도 와 닿지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교사들은 가해 학생도 피해 학생도 모두 자기 학생이니까 무조건 어느 한쪽 편만 들 수도 없고 처벌을 내릴 때 망설이게 되죠. 교사와는 별개로 처벌을 담당하는 기관이나 시스템이 갖춰져야 해요. 처벌에 대해 교사에게 따질 수 없도록 ‘제3의 눈’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그에 맞는 적절한 처벌을 내리고, 교사는 학생을 감싸주는 역할을 해야 교권이 바로 설 수 있을 거예요.

정혜영 관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많다고 생각해요. 민원이 발생했을 때 학교의 관리자로서 무게중심을 잡고 중재할 수 있어야 해요. 물론 맡은 행정업무가 많겠지만, 학생, 학부모, 교사를 중재하는 역할은 관리자가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한옥 사실 교사는 아무리 학생이 부도덕한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처벌의 대상이 아닌 교육의 대상으로 볼 수밖에 없어요. 다만, 교사의 손을 떠나 병리학적인 문제가 있는 학생의 경우에는 단순한 상담이 아니라 전문적인 진단과 그에 맞는 특별한 케어를 받을 수 있는 공적인 제도가 갖춰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지은작년에 ADHD를 가진 학생 때문에 여러 문제가 발생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있을까 싶어 교육청에 전화했었는데요. 돌고 돌아 다섯 부서를 거쳐서 결국 들은 대답이 학부모의 인정과 동의가 먼저 필요하다는 거였어요. 그런 걸 겪으면서 교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아무 곳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사가 학생의 문제에 대해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게 아니라 전문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창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교사와 학생 모두가 성장하는 교육환경

<진행> 그동안 서울시교육청에서는 교사가 본연의 업무인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여러 정책을 추진해오고 있습니다. 개선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현장의 교사들은 피부로 크게 와 닿지 않는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러 행정업무를 처리하느라 정작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아직도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김한옥 저는 업무지원팀에서 오랫동안 업무를 맡고 있는데요. 담임교사들이 교육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업무지원팀이 업무를 대신하는 것에 대한 반감은 없지만, 선택권 없이 강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업무지원팀에 가는 걸 다 싫어하잖아요. 그래서 업무지원팀에 가는 사람은 정해져 있어요. 가는 사람만 가는 거죠. 담임교사에게는 업무를 하나도 주면 안 된다는 일종의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학교마다 상황이 천차만별인 만큼 상황이나 체제에 따라서 유연하게 업무를 나누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몇몇의 희생을 강요해서 교육이 정상화되는 건 진정한 정상화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혜영 궁극적으로 교사는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행정업무의 총량이 줄어야 해요. 교사들의 고충 중 하나가 주어진 행정업무가 교사의 업무인지, 행정실무사의 업무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거예요. 교육청 차원에서 학교의 행정업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줬으면 좋겠어요. 어디까지가 교사의 업무고, 어느 부서의 관할 업무인지 구체적으로 정리한다면 현장의 혼란도 덜할 거예요.

김한옥 장기적으로 봤을 때 행정업무를 맡기기만 한다면 좋은 교육기획자는 될 수 없을 거예요. 교육행정이나 시스템을 교사가 알고 있어야 기획도 할 수 있고 더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죠. 많이 알아서 나쁠 건 없다고 봐요. 다만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거죠. 어떤 시스템과 체계로 일이 진행되는지, 그리고 그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교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주체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겠어요.

문재영 다행히 저희 학교는 행정실무사님이 많은 일을 하고 있어서 저는 그동안 기안 한번 해본 적 없을 정도예요. 양식에 맞춰 내용을 채워 넣기만 하면 알아서 정리해주시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저는 공강시간에 수업 준비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다른 학교의 동료 교사들을 보면 그렇지 못하더라고요. 학교가 끝나면 지쳐서 수업 준비는 생각도 못하고 주말이 돼야 한다고 해요. 근무시간을 벗어나 개인 시간을 희생해야 좋은 교사가 되는 상황인 거죠. 물론 행정업무도 중요하고 교사도 그 업무가 어떤 업무인지 알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업만큼 중요한지는 의문이 들어요. 학생상담이나 행정업무에 밀려 수업 준비는 뒤로 미뤄지게 되는데 그러면 학생들도 좋은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는 거죠. 결국 희생자는 아이들이에요.

곽선아 시스템이 없는 것과 자율성이 있는 건 다르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시스템이 부재한 거죠. 그동안 학교에 제대로 된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권한과 책임에 대한 명확한 경계도 없고요. 행정실 직원과 교사 사이, 그리고 교사들 사이에서도 적절한 업무 분배가 필요해요. 그런데 자기는 딱 이만큼만 할 거라고 적정업무량을 정해놓고 상대방의 업무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는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요. 이런 환경에서 책무성을 기대한다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요.

<진행> 오늘 ‘교사는 을이다’라는 주제로 대담을 진행하면서 교사를 을이라고 규정했지만, 교사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외부적인 요인과 환경을 주로 다뤘는데, 오늘 대담회의 마지막 순서로 교사가 을이 되지 않기 위해서 교사 내부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들어보겠습니다.

김한옥 결국 힘들 때 기대고 서로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건 우리 교사들이에요. 어떤 형태로든 힘을 합쳐야죠. 힘을 합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어야 해요. 비록 다른 일과 다른 역할을 하고 있더라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정혜영 학부모에게도 행정업무에서도 학생들에게도 을의 위치에 있다 보니까 교사들이 너무 위축되어 있어요. 우리끼리라도 서로 마음을 열고 인간적으로 교류했으면 좋겠어요. 딱딱한 직무연수가 아니라 가볍게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교사가 아니라 교육청이 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게 옳은 방향이니 이대로 해!”라고 하기보다는 “무엇이 어려우십니까?” 하며 묻는 자세를 갖는다면 교사와 학생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질 거예요.

문재영 저희 학교는 교사동아리가 활성화되어 있는데요. 서로 다 아는 사이니까 편하게 자기 수업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면서 고민을 나눴던 게 교사로서 자존감이 높아지는 기회가 됐어요. 수업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내 수업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다고 느꼈을 때 교사로서 더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교육에 관한 모임이 아니더라도 서로 만나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더 많이 마련한다면 교사의 만족감과 자존감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교육의 질도 높아질 거예요.

곽선아 학교에서 제대로 교육을 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죠.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올바른 시민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당장 저부터도 그런 교육을 받은 기억이 없어요. 사실을 전달하는 것만이 교육은 아니에요. 자신의 철학이 수업에서 내용과 행동으로 드러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존중해달라고만 말할 수는 없어요. ‘스승’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도 부끄럽지 않도록 높은 도덕성과 책무성을 갖춰야 해요.

강지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분법적으로 갑과 을을 나누는 문화가 있어요. 근데 대부분은 끝까지 억지 부리고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갑이 되죠.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낼 수 있고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되도록 우리부터 실천해야 해요.

인터뷰 이문수 <지금 서울교육> 편집장 사진 김동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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