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따라 가는 길

<아주 사적인, 긴 만남>

기억을 공유하면서 마종기 시인과 루시드폴은 과거의 아픔을 하나씩 치유해나간다. 그들은 기획자 송정희의 예감처럼, 공학도인 루시드폴은 대서양 건너 전해온 시를 읽으며 노래를 만들고, 의사인 마종기는 루시드폴의 노래를 들으며, 노래로 시로 서로의 마음을,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며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느끼는 ‘아름다운 소통’의 시간을 만들어간다.

아주 오래전에 나온 영화 중에 <마음의 행로>가 있다. 전쟁 중에 입은 부상으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와 가난한 무희가 만나 행복했지만, 우연의 사고로 예전의 기억을 되찾은 남자는 무희와의 기억만 잊은 채 명문가의 후계자로 돌아간다. 영화 속에서 남자 주인공은 물질적으로 더없이 풍족하고, 여자 주인공은 예전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 주인공과 새로운 사랑을 하지만 둘 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결말이 행복한 이유는 하나다. 지금의 물질적 풍족함이 채워주지 못하는 마음의 공허함을 메우기 위하여 두 사람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길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 길 끝에는 두 사람만이 기억하는 공통의 지점이 있었고, 비로소 그들은 완전체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제목이 <마음의 행로>로 정해지지 않았을까.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서간집인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을 읽으며 영화 <마음의 행로>가 계속 떠올랐다. 시인 마종기와 가수 루시드폴이 2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이 책은 생면부지의 두 사람이 만나 마음을 열고 서로 다른 과거의 기억을 공유하며 삶을 성찰하는 일종의 성장 치유 에세이집이다. 편지를 주고받기 전까지 마종기 시인은 가수 루시드폴을 알지 못했다. 루시드폴은 팬이 준 마종기 시인의 시집 <이슬의 눈>을 스톡홀름의 첫날밤에 두려움을 이기기 위하여 처음 펼치면서 낯선 이국땅을 밝히는 마음속의 등불로 간직했다.

이 책이 가지는 가치는 기획자 송정희가 밝히고 있듯이 ‘의사이며 시인인 마종기와 공학도이며 음악을 사랑하는 루시드폴, 이 두 사람이 세대를 넘어 싹트는 진실과 우정과 신뢰, 예술적 영감으로 충만한 아름다운 소통의 모습’에 있다. 각자의 삶에서 두 개의 영역을 키워온 두 사람이 만나 그들만의 영역을 공진화시켜 탄생시킨 것은 ‘나의 모습으로 너의 모습을 비추고, 너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는 새로운 우주’였다.

노년의 시인이 생전 알지 못하던 젊은 음악도의 편지에 답하면서 이들의 편지는 2년 동안 대서양을 넘어 왕래했다. 타국에서의 외로움과 막막함을 전하는 루시드폴에게 마종기 시인은 진심 어린 위로와 자신이 젊은 날에 경험했던 외국에서의 생활을 들려줬다. 편지의 내용은 시간이 지나면서 일상으로부터 느끼는 감정과 소소한 일들을 전하면서 그야말로 아주 사적인 만남으로 확장됐다. 루시드폴은 자신의 음악을 가장 먼저 마종기 시인에게 소개했고, 노시인은 새로이 창작되는 시를 가장 먼저 대서양 너머에 있는 젊은 음악도에게 보내며 읽어보기를 청했다.

그리고 그들만의 우주가 만들어졌다. 그 우주에서 그들은 서로의 어린 시절 기억, 부모 형제와의 추억, 기쁘고 슬펐던 일들, 정치, 사회적인 이슈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고 미래를 꿈꿨다. 마종기 시인은 루시드폴의 노래를 찾아 듣고 영감을 받으며 시를 썼고, 루시드폴은 예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마종기 시인의 시를 읽으며 떠오르는 곡과 가사를 완성했다. 그들의 언어는 달랐으나 열린 마음은 서로의 감정을 전달하고, 풍부해진 감정은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그로부터 오는 영감을 그들만의 언어로 표현했다. 나아가 그 힘으로 루시드폴은 이국의 길가에 서 있는 가로수에서 고국의 푸른 하늘을 노래하며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됐다.

벅찬 만족감뿐 아니라 슬픔까지 공유할 수 있을 때 시와 음악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빗줄기처럼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선생님께서 동생분을 추억하시면서 쓰셨던 시구절을 떠올리면서 가사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너를 알아보지 못하고 바람만 만나게 되면
흔들리는 그거라도 옷자락에 묻혀와야지
그 바람 털어낼 때마다 네 말이 들리겠지
내 시를 그렇게 좋아해 준, 너는 그러겠지
형, 나도 잘 알아듣게, 쉽고 좋은 시 많이 써
이제 너는 죽고···(중략) 동생을 위한 조시 중에서

아아, 저는 이 시를 얼마나 많이도 읽었던가요. (중략) 시인의 가슴에서 독자의 가슴으로 ‘쉽게’ 가는, 그런 시가 ‘쉽고 좋은 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결심하게 되었지요. 나는 쉽고 좋은 노래를 써야겠구나···.”

기억을 공유하면서 마종기 시인과 루시드폴은 과거의 아픔을 하나씩 치유해나간다. 마종기 시인은 가난하여 비행기 표를 살 수 없어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산소에 가기까지 걸렸던 5년의 시간을 들려주며 현재의 행복을 감사해한다. 자라온 환경과 시대가 달라도, 가고자 하는 길이 달라도 서로의 기억을 감싸 안으면 마음이 길을 열어준다. 공학도인 루시드폴은 실험이 힘들어지면 시를 읽으며 노래를 만들었고, 의사인 마종기는 루시드폴의 노래를 들으며 자신이 치료했던 많은 환자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생각하고, 사람을 치유하는 새로운 시를 창작했다. 노래로 시로 서로의 마음을, 존재를 온전히 느끼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느낀다는 것은 그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알고 함께 가는 것이다. 마음을 안다는 것, 그것은 마주 서서 직접 말하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온몸으로 전달된다. 엄마가 외계어 같은 아기의 옹알이를 알아듣고 대꾸해주는 것과 같고, 아기가 엄마의 눈을 보며 까르르 웃는 것과 같다. 설명하지 않아도,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아도 아는 것, 그것이 마음이다. 엄마 아빠의 웃음에서 아이는 행복을 배우고, 손바닥으로 전해오는 부모의 온기로부터 아이는 세상을 알아간다. 이처럼 마음은 온몸으로 전해진다. 가수에게는 노래가, 시인에게는 시가 그들의 온몸이듯이 우리에게는 현재가, 지금의 이 마음이 온몸이다. 그래서 온전히 전해오는 너의 마음은 나의 미래가 되고, 나의 마음이 너의 미래가 될 수 있다.

루시드폴이 처음 접했던 마종기 시인의 시 ‘이슬의 눈’에는

다음 날엔 새벽이 오기도 전에
이슬 대신 낙엽 한 장이 어깨에 떨어져
부질없다, 부질없다 소리치는 통에
나까지 어깨 무거워 주저앉았습니다.
이슬이 아침이 되어서야 맑은 눈을 뜨고
간밤의 낙엽을 아껴주었습니다.

라는 구절이 있다. 이 시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루시드폴은 농사를 짓는 음악인이 됐다. 그가 가꾸는 나무들에게 시 같은 노래를 들려주며 자연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다시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생태학자가 됐다.

<아주 사적인, 긴 만남>

마종기, 루시드폴 저 |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두 사람이 메일로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는 시간을 담아냈다. 마종기와 루시드폴이 2년간 예술과 과학, 그리움과 고독, 일상의 기쁨에 대하여 나눈 뭉클한 교감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또한 오랜 시간을 ‘글’로 대화해오던 그들이 한국에서 만나는 순간을 대화와 사진으로 담아냈다.

글 김성리(인제대학교 인문의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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