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과 ‘삶’이 만나는 더 넓은 배움터

용산구 작은도서관 ‘고래이야기’에서 학교와 마을, 교육주체가 하나 되는 교육공동체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날 배움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교와 더불어 생생한 삶의 현장이 있는 마을이 배움터가 됐을 때 비로소 ‘앎’과 ‘삶’이 만나게 된다. 더 넓은 배움터에서 이루어지는 삶이 꽃피는 교육 속에서 아이들은 공동체의 가치를 배우고 자기 삶의 주체로 성장할 것이다. 용산구 작은도서관 ‘고래이야기’에서 학교와 마을, 교육주체가 하나 되는 교육공동체 이야기를 나눴다.

마을은 생생한 삶의 현장이자 배움터

용은중.‘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거예요. 아이들의 행복한 성장을 위해서는 그만큼 지역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미죠. 배움의 공간은 이제 더 이상 학교에만 한정되지 않고 마을이 생생한 삶의 현장이자 배움터가 되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은 용산구 효창동과 청파동에 사는 학부모님들과 함께 마을과 교육, 그리고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려고 해요. 여러분은 아이를 양육하는 데 있어 현재 자신이 사는 마을의 환경이 어떻다고 느끼시나요?

황성미.저는 마을에 골목이 많아서 참 좋아요. 거리나 건물이 딱딱 구역화된 아파트 단지와는 달리 골목은 좁은 길을 따라서 들어가다 보면 알지 못했던 새로운 길도 나오고, 때로는 막힌 공간이 나오기도 하고, 어디서 누구를 만날지도 모르죠. 아이들은 그런 골목을 오가며 자기들만 아는 비밀 장소 같은 게 있더라고요. 아이가 골목 안에 남산 전체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 있다고 알려줘서 저도 한번 가봤는데, 사방이 뻥 뚫려서 경치가 정말 좋더라고요. 우리 마을에 그렇게 전망 좋은 곳이 있는지 몰랐어요.

노윤아.골목이 주는 다양성은 저도 공감해요. 저도 어릴 적 학교에 갈 때면 매번 다른 길로 다니려고 했어요. 이런 환경이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자립심과 독립심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효창공원처럼 주변에 아이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도 정말 좋아요.

용은중.우리 마을이 서울 한가운데에 있기는 하지만 좀 시골스러운 면이 있죠. 근데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아요. 저는 지나다니면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정답게 인사를 나누는 마을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는데요. 우리 마을은 서로 간의 벽이 높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에 신도시에 살았을 때는 그 벽이 너무 높아서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야 했었는데, 우리 마을은 그렇지 않아요. 사람들끼리 서로 소통하고 함께 나누기 좋은 환경인 것 같아요. 덕분에 아이들을 같이 바라볼 수 있는 공동체가 만들어지기도 좋고요.

정유숙.사실 우리 마을의 물리적인 환경이 썩 안전한 편은 아니에요. 그래서 마을에서 아이들끼리만 돌아다니게 해도 괜찮을까 걱정될 때도 있고요. 한편으로는 늘 아이들을 지켜봐주는 어른들이 있어서 마음이 놓여요. 둘째가 학교가 끝나고 학원에 갈 때 늘 같은 골목으로 다니는데, 한번은 다른 엄마가 저한테 전화해서 “오늘은 골목에서 아이의 모습을 못 봤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를 찾아 나선 지 얼마 안 돼서 아이를 근처 교회에서 봤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고, 지나가며 만났던 아이들도 제 아이를 어디서 봤는지 말해줬어요. 그렇게 제보를 받고 아이의 위치를 파악해서 아는 엄마에게 부탁해 아이를 데려온 적이 있었어요. 그런 게 정말 고맙더라고요. 게다가 엄마들끼리 바쁠 때는 서로 아이를 돌봐주기도 해요.

노윤아.아이가 아직 다섯 살이라 어디를 가든 항상 같이 다니고 있어서 안전문제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 못해봤지만,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버스 타는 거예요. 아이가 12개월이 막 지났을 무렵 한동안 스웨덴에서 생활했었는데요. 저도 남편도 각자 공부를 해야 하고 아이까지 키워야 하니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양육환경이 워낙 좋아서 생각보다 큰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어요. 스웨덴에서는 유모차를 끌고 나가면 홍해가 갈라지듯이 사람들이 길을 비켜주고 버스 타기도 쉬워요. 지정 좌석도 따로 마련되어 있고 사람들이 타고 내릴 때 도와주거든요. 그런 경험만 하다가 한국에 와서 처음 유모차를 끌고 나와 버스를 탔을 때 너무 힘들었어요. ‘아, 이래서 한국에서는 애가 생기면 전부 차를 사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황성미.저도 제가 사는 청파동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최고의 마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런 환경도 달리 생각해보면 장점이 될 수 있죠. 어떤 게 더 있어야 좋은 마을 환경이 될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한 집 건너 한 집이 다 아는 사이고 엄마들끼리 서로의 아이를 어디서 봤는지 알려주는 게 너무 좋아요.

정유숙.우리 마을의 그런 환경이 시스템화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마을 사람들의 눈이 CCTV 같은 역할을 하는 거죠. 아이들과 어른들이 서로 알음알음 알아가게 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작년에 마을에서 인사캠페인을 했었는데, 처음에는 인사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일까 싶었지만 실제로는 인사 하나만으로도 서로 굉장히 친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부터는 인사를 좀 더 많이 하고 다녀야겠다고 느꼈어요.

황성미. 청파동의 특징 중 하나가 어르신들이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디를 가든 항상 인사를 하게 돼요. 아파트에 살다 보면 장을 볼 때도 단지 내 상가에 있는 대형마트에 가서 필요한 걸 한곳에서 다 사고 계산해주시는 분에게 인사 한마디하고 나오는 게 전부지만, 여기서는 재래시장에 과일가게 따로 생선가게 따로 다 따로따로 있어서 계속 인사를 하게 되죠. 아이가 성향상 인사를 잘하지 않았었는데, 그런 환경에 계속 있다 보니까 “안녕하세요” 하며 말까지는 하지 않아도 고개는 저절로 숙이게 되더라고요.

정유숙. 마을에 학부모교육을 담당하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을 둘러싼 수많은 환경 중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게 부모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이들만 배우는 게 아니라 부모도 평생 함께 배워야 해요. 실제로 교회나 성당 같은 종교시설에서 그런 교육이 이루어지고, 저도 결혼하기 전에 성당에서 예비부모교육 같은 걸 받기도 했어요. 그런데 종교가 없으면 그런 학부모교육을 접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마을 안에서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어울리며 서로의 양육법이나 가정교육법을 교류할 수 있는 시설과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나며 성장하고 경험하며 배운다

용은중.예전에 신도시에 살았을 때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가 “우리 집은 아파트가 아니라서 집에서 생일파티를 못하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것 때문에 주눅 들어 있는 아이도 있고, 그걸 과시하는 아이도 있어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해요. 그런데 여기에 와서 본 아이들은 자존감이 높아 보였어요. 물질적으로는 풍족하지 못해도 개의치 않고 당당한 모습이었거든요. 아이들이라면 그게 당연한 건데 그 모습이 다른 곳과 확연하게 비교가 되니까 ‘여기 아이들은 참 건강한 아이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황성미.청파동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없고 거의 다 주택인 데다가 가정형편이나 사는 수준도 비슷비슷해서 아이들이 서로의 집 평수를 묻는 일도 없고 아이들 간의 경쟁의식도 덜해요.

정유숙.이상적인 이야기도 아이가 어리니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마을 어른들과 함께 지내거나 아이들이 허물없이 어울려 노는 것도 딱 초등학교까지더라고요. 중학교에 가면 분위기부터 달라요.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에 처음 갔을 때 ‘아, 여긴 교도소 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건물이 주는 딱딱하고 차가운 이미지 때문에 그런가 싶었는데 아니었어요. 중학교에 가면서부터 아이들이 서열을 느끼게 돼요. 배치고사에서 1등을 한 아이가 신입생 대표가 되고, 또 그 엄마가 학부모 대표가 되는 서열문화가 입학할 때부터 시작돼요. 고등학교에 가면 다들 대학입시만 바라보면서 경쟁은 더 치열해지죠.

용은중.아이들의 온전한 성장을 위해서 학부모들은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학교 혼자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죠. 이번에는 그렇다면 어떻게 마을과 함께 아이들을 키워낼 수 있을지 그 방법에 대해 이야기 나눠볼게요. 저는 아이들이 부모가 아닌 다른 어른들과 만나는 기회를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마을에 사는 예술가 선생님을 모시고 하는 교육처럼 말이죠. 다른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거예요. 몇몇 친한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걸 넘어서 다 같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구조화된 장을 만들어 아이들이 다양한 어른들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서울형혁신교육지구사업에도 이 같은 시도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가장 아쉬운 점은 그럴 만한 공간이 마을에 충분하지 않다는 거죠.

황성미.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교육이 먼저 이루어져야 해요. 앞으로 우리는 왜 공동체를 이뤄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 어른들부터 인식해야 해요. 핵가족 시대인 지금은 그런 인식이 더 필요하죠. 작은도서관처럼 마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허브 공간이 마을에 더 많이 있어야 해요. 만약 그런 허브 공간을 마련하기 어렵다면 각 가정에서 재능기부 형식으로 만남을 가질 수도 있겠죠. 예를 들면, 어느 집에 가면 뜨개질을 배울 수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물론 안정성과 보장성이 먼저 갖춰져야겠죠.

정유숙.용산구평생학습관이 있지만 너무 멀어서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고 걷기도 많이 걸어야 해요. 꼭 그런 거창한 게 아니라도 숙제방, 보드게임방, 서예방, 꽃꽂이방처럼 다양한 테마를 가진 장소가 마을마다 있었으면 좋겠어요. 소재는 진부할지 몰라도 누가 참여하느냐에 따라 그 모습은 다 다를 거예요.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어울리는 곳이 더 많아진다면 어르신들도 경로당에만 모여 계시지 않아도 되고요. 비록 내 아이는 당장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함께 나서서 이런 시도들을 계속해야 결국 마을환경도 점차 발전할 거예요.

노윤아. 다 같이 뭔가를 끌어내고 만들어가는 게 익숙하지 않은 이유는 해보지 않아서죠. 제가 외국에서 소셜비즈니스를 공부하면서 여러 사례를 접하고 한국에 왔을 때 효창동이 다시 보였어요. 역사도 있고 정체성도 가진 거리가 자기만의 특색을 잃어가는 게 안타까웠어요. 대기업에서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면 쉬울 수도 있겠지만, 지역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요. 정부에서 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결국에는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조직화에 대해 고민해야 해요. 협동조합,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등 다양한 형태가 있고 그 방식은 조금씩 달라도 방향성은 같아요. 탑다운(top-down)이 아니라 바텀업(bottom-up)이죠.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달라야 해요. 희망은 아래에서부터 위로 일으키는 변화에 있어요. 경쟁을 통해서 이윤을 창출하고 경쟁자를 쓰러트려 1위 자리를 차지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한 걸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걸 만들어야 해요.

황성미.마을 사람들끼리 만남을 갖는 또 다른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봉사예요. 휴일 아침에 아이와 함께 나가 집 주변 거리의 쓰레기를 줍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좋은 일도 하고 서로 얼굴 마주 보며 인사도 나눌 수 있으니까요.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은데 몰라서 안 하거나 알아도 실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정유숙. 아이들이 능동성을 갖게 하는 것도 중요해요.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아이들은 아무리 부모가 옆에서 닦달해도 본인이 의지가 없으면 안 해요. 삶의 의지가 없어 보이는 눈빛으로 아무 생각 없이 게임만 하는 아이에게 “너는 도대체 왜 그러고 사니” 하면서 아무리 잔소리해봤자 의지를 일깨울 수 없어요. 저희 가족은 용산구 가족봉사단 활동을 하고 있는데, 활동 내용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마을에서 할 수 있는 봉사를 스스로 찾아서 하게 되어 있어요. 어른들이 하기 좋아하는 진부한 것만 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능동성을 끌어내기 위해서죠. 기본적인 개념부터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흔히 아이들은 ‘동생과 놀아준다’고 말하는데 이런 표현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자기도 재미있으니 동생과 함께 노는 거지 놀아줘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그러는 건 아니잖아요. 아이들의 능동적인 자세를 키우는 활동이 정말 의미 있는 활동이에요.

 

마을과 학교와 구성원이 하나가 되는 공동체

용은중. 결국 마을과 학교가 독립적인 별개의 존재가 되어서는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마을교육이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러려면 서로 간의 소통이 필수죠. 그렇다면 학교와 마을은 어떻게 소통해야 하고,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정유숙. 학교와 마을은 각자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소통해야 해요. 학교 안에서만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아이들은 살아 있는 생생한 지식을 배울 수 없어요. 그런 역할이라면 마을도 충분히 대신할 수 있어요. 마을도 점점 구성원 수가 줄면서 여러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데, 마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어요. 학부모의 입장으로서 학교에 바라는 건 학교가 조금 더 학부모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줬으면 좋겠어요. 지금 학교는 너무나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황성미. 저도 학교가 학부모와 소통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느껴져요. 아이들끼리 다툼이 있을 때 중재가 되지 않으면 부모에게 알려야 하는데 아이들에게는 집에 가서 이야기하지 못하게 통제할 때가 있어요.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안에서 마무리 짓는 거죠. 다툼이 있는 게 아니라면 학부모와의 소통은 학부모상담기간처럼 정해진 기간에만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아까 허브 공간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역할을 학교가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학교가 장소만 제공해줘도 서로 소통하는 거죠. 그러려면 학교가 문을 열어야 해요. 하지만 현실은 문이 너무 굳게 닫혀 있어서 학교 안에서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아요.

정유숙. 학교가 문을 열려면 관의 도움도 필요해요. 지금은 학교에서 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을 교장선생님이 져야 하잖아요. 학교는 사실 그게 가장 두려운 거죠. 사고가 생겼을 때 책임 소재를 모두 교장선생님에게 떠넘기는 일은 없어야 해요. 학교가 문을 열면 분명 괴로운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해야죠.

노윤아. 선생님들의 인권도 중요해요. 선생님들이 왜 그렇게 마음을 닫게 됐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학부모나 지역사회, 아이들을 위한 일에 코디네이터 역할을 자발적으로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선생님들을 정책적으로 배려해야 해요. 밖에서 봤을 때는 잘 몰랐지만, 실제로는 선생님들이 굉장히 많은 일을 하시더라고요.

용은중. 저도 마을수업을 하러 학교에 간 적이 있었는데, 수업을 마치고 나니까 혼이 쏙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몇 시간 수업했을 뿐인데 마치 오늘 하루를 다 산 것처럼 기운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선생님들은 정말 힘드시겠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교사라고 하면 퇴근도 빠르고 방학도 있어서 길게 쉴 수 있으니 편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겪어보고 나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정유숙. 얼마 전에 책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 실무 책임자였던 독일 나치 친위대 간부 아돌프 아이히만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요. 그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했던 이유가 철저하게 모든 일을 분업화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과도한 분업체계 속에서는 개인의 양심이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고,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 소재가 애매한 일을 할 뿐이라는 거죠. 그 상황이 지금 우리 사회와 같다고 느껴져서 무서웠어요. 저만 해도 혁신교육지구가 뭔지, 학부모동아리가 뭔지, 오가며 마을에 작은도서관이 있는 걸 몇 년 전부터 봤으면서도 정작 그게 뭔지 모르고 궁금해하지도 않고 살았거든요. 위에서는 여러 정책을 내놓지만 밑에서 대상이 되는 사람은 그 정책이 뭔지 잘 모를 때가 많아요. 고도로 분업화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던지는 내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수많은 과정의 마지막 단추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부모야말로 아이들과 가장 가까이 있고, 마을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존재예요. 그래서 학부모가 관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미약한 존재일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너무나 중요한 열쇠를 가진 존재라고 생각해요. 어떤 정책이 펼쳐질 때 그 의도는 무엇인지, 왜 학부모에게 교육을 받으라고 하는 건지 늘 경각심을 갖고 고민하며 곰곰이 생각해봐야 해요. 마을과 학교와 공동체가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가려면 우리가 모두 늘 깨어 있어야 해요.

정리 신병철 사진 이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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