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서새로운 교육백년지대계로

새로운 100년의 초석 될 지난 100년의 정신

이문수 편집장과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한완상 위원장의 특별대담에서 그 방향을 찾아보자.

2019년 대한민국은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큰 전환기를 맞이했다. 지난 100년의 정신을 계승하여 우리 교육, 나아가 우리 사회는 앞으로 새로운 100년을 향해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지금 서울교육> 이문수 편집장과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한완상 위원장의 특별대담에서 그 방향을 찾아보자.

한완상 | 서울대학교 문리대 교수, 한국사회학회 회장, 제18대 통일원 장관 겸 부총리, 방송통신대학교 총장, 제1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겸 부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가장 소중한 가치, 평화

이문수 제가 처음 교장으로 부임한 학교가 효창공원 옆에 자리한 서울금양초등학교였습니다. 그래서 종종 김구 선생님의 묘소를 찾 곤 했는데, 그때마다 늘 우리 학교 학생들과 국민을 품어주시는 느 낌을 받았습니다. 100년 전인 1919년에는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 시정부 수립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3·1 운동은 국내 만세운 동 정도로만 알려졌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8년 남한 단독정 부 주장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습니다.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 부 수립이 갖는 진정한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한완상 3·1 운동은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비폭력 평화운동입니다. 당시 인류는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상 최악의 유혈참극을 경험하면서 폭력에 대해 새로운 안목으로 비판하며 평화를 갈망했습니다. 바로 이때 3·1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무단정치를 앞세워 우리 민족을 말살하려 했던 일본의 제국주의, 패권주의의 폭력 탄압에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맞섰던 것에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선진 서방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민주공화정을 내세운 프랑스혁명도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죠. 이와는 대조적으로 3·1 운동은 비록 우리는 피를 흘리면서도 철저하게 비폭력 평화운동을 전개했고, 이를 소수가 아닌 국민의 1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실천했다는 사실에 더 큰 감동을 줬습니다.

1919년, 그때 우리는 의식과 그 실천에 있어 이미 선진국이었습니다. 일본 헌병의 총칼 앞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비폭력, 평화라는 가장 선진적인 가치를 실천했습니다. 세계적인 공감을 얻은 가장 공공적인 운동, 가장 감동적인 운동,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변혁적인 운동이 바로 3·1 운동입니다.

3·1 운동이 일어나고 한 달 열흘이 지나 상하이에 모인 독립지사들이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국체를 민주공화제로 정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합니다. 이는 그동안 이어져 내려온 봉건왕조 시대를 종식시키는 준 평화혁명입니다.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시작되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서 알 수 있듯이 100년 전 수립된 임시정부가 대한민국과 이 땅의 민주주의의 기본 틀을 세웠습니다. 따라서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절이라는 일부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로도 틀렸고, 3·1 운동 정신에 비춰본다면 더욱 틀린 것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있어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또 다른 한 가지는, 당시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분들이 강조했던 평화의 가치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하며 “한 영토에 두 국가가 들어서고 한 민족이 두 국가로 나뉘게 되면 필연적으로 민족상잔이 일어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예언처럼 맞아들어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수백만 명이 희생당하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열전 3년과 냉전 70여 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남긴 유산과 유언이 곧 평화의 가치를 존중하고 평화교육을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의미를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이문수 지금껏 학교에서는 그렇게 배우거나 가르쳐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 근 원에는 일제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심어놓은 식민교육 의 망령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탓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완상 분단이 이어지면서 우리 민족의 아픔과 상처는 적대적 공생관계 속에서 지금도 온전히 치유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서로를 ‘악마화’하고 저주하는 냉전이 지속되어야만 정치적 이득을 보는 이들이 지배세력이 됐다는 것이 우리의 불행입니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을 총칼로 다스렸던 제국주의 문화가 식민지교육을 통해 우리의 인격과 사회제도 속에 스며들었고, 그 결과 3·1 운동의 감동적인 울림과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일제강점기 3·1 운동을 탄압했던 세력은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친일세력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이를 방관하기만 했습니다. 다행히 일제의 유산인 식민통치를 재생산하려고 했던 권력 주체가 국정 역사교과서를 통해 식민잔재교육을 연장하려다가 촛불혁명에 막혔습니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의미를 이야기할 때 이런 사실을 반드시 짚어줘야 합니다.

이문수 말씀하신 것처럼 남녀노소는 물론 계층 구별 없이 전국적인 참여로 전개된 3·1 운동의 정신이 최근 촛불혁명으로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그 정신이 어떻게 계승됐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한완상 분단 이후 이어진 권위주의적 정치체제 아래에서 지배세력은 마치 식민지 시대에 일본 군경이 독립운동을 탄압하듯이 민주화운동을 탄압했습니다. 4·19 혁명부터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등을 거쳐 많은 지식인과 성직자, 학생들이 고통을 겪으며 3·1 운동의 정신을 이어갔죠. 이 정신은 2016년 11월 촛불혁명으로까지 이어지는데, 수많은 촛불을 보며 3·1 운동의 부활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는 집회 도중 몇몇 남성이 차벽에 뛰어 올라가서 당장이라도 청와대로 진군할 것처럼 하니까 그 아래에 있던 어린 소녀들이 “내려와! 내려와!”라고 제창하더군요. 정확한 나이대는 알 수 없었지만, 유관순 열사 또래의 소녀들로 보였어요. 그래도 안 내려오니까 “비폭력! 비폭력!” 하면서 더 많은 목소리가 합쳐졌어요. 그제야 차벽에 올라가 있던 남성들이 스르르 내려오더라고요. 비폭력이라는 존엄한 평화의 가치에 공감한 거죠. 그 모습을 보면서 저 목소리가 유관순 열사의 목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저게 바로 3·1 운동에 참여했던 민족과 민중의 목소리구나, 유관순 열사가 부활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렇게 촛불혁명이 이어졌던 5~6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성별, 계급, 지역을 떠나 수십만 명 때로는 백만 명 가까이 모여도 폭력사고 하나 일어나지 않았죠. 3·1 운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비폭력 운동이 주는 감동이 아니겠습니까.

얼마 전 열린 세미나에서 세계적인 석학인 브루스 커밍스가 “3·1 운동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는 민중이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서 놀라운 결과와 감동을 만들어냈는데, 왜 정작 한국의 지식인들은 적극적으로 평가하지 못하는가?” 하며 반문하는데,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해외 언론에서도 촛불혁명을 놀라워하며 “서방세계가 한국에 민주주의를 가르쳤는데 이제는 너무 앞서가서 오히려 우리가 배워야 한다”고 평가합니다. 바로 그 싹이 3·1 운동의 정신입니다.

 

‘노하우’가 아닌 ‘노와이’로

이문수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큰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육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많습니다. 위원장님의 어릴 적 꿈이 역사적, 사회적 부조리와 정치적 부패, 사회억압을 증상으로 하는 사회질병을 치료하는 사회의사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셨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사회의사로서 향후 10년 또는 100년을 바라봤을 때 우리 교육에 어떤 치료가 이루어져야 할까요?

한완상 지난 2001년 교육부총리 재임 시절 남과 북이 서로를 증오하는 주적교육에서 같은 민족, 형제로 바라보는 평화교육을 강조했습니다. 평화를 교육의 중심 가치로 여긴다면, 과연 평화가 무엇인지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보통교육 수준에서 가르쳐야 합니다. 단순히 두 집단 간 무력행사가 종식되는 것만이 평화가 아닙니다. 성별, 계급, 지역, 세대에 따라 분열되어 갈등이 일어나는 곳에 평화는 없습니다.

정의가 없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닙니다. 함께 정의를 나누는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져야만 국가 간 무력 갈등뿐만 아니라 한 국가 안에서도 서로 갈등을 겪지 않게 됩니다. 그런 평화를 우리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차이를 빌미로 차별하지 않고, 차이를 계기로 삼아 서로 배우고 포용하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제가 쓴 책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의 제목처럼 사자가 소의 여물을 먹는 것이 진정한 평화입니다. 차이를 계기로 서로를 포용하고 사랑하고 배우려면 소통해야 합니다. 소통의 기본은 역지사지(易地思之)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거죠. 각자의 차이가 있는 만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라며 가장 먼저 역지사지의 가치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 다음은 역지감지(易地感之)입니다. 생각이 가슴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아무리 머리로는 역지사지한다고 해도 상대방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면 소통할 수 없습니다. 머리와 가슴의 물리적 거리는 고작 20~30cm밖에 안 되지만, 생각이 가슴으로 내려오기까지는 천리길 만리길처럼 멀게만 느껴지죠. 가장 마지막은 역지식지(易地食之)입니다. 교육이 개인의 수양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 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육식하는 강자가 초식하는 약자의 음식을 나눠 먹고 강자가 체질을 바꿔야 비로소 구조가 바뀝니다.

강자와 약자,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은 먹고 먹히는 관계입니다. 강자가 먼저 약자의 편에 서서 생각하고, 약자의 주식을 나눠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육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강자가 더 강한 존재가 되게끔 합니다. 오로지 일류 명문대학교를 목표로 유치원에서부터 지식을 달달 외워서 옆 친구를 제치고 고등학교까지 줄곧 1등을 차지해야 합니다. 남을 꺾고 이기는 건 아무렇지 않게 여기게 되는 거죠. 이런 아이들이 자라서 판검사가 된다 한들 무슨 소용이며, 또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요.

이문수 위원장님께서는 “남의 입장에서 역지사지, 역지감지, 역지식지하기를 거부하면서 어떻게 선생을 하겠느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육 현장의 교사들에게 전하는 당부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완상 오늘날과 같은 21세기에 선생님들에게 페스탈로치가 되라고 하는 건 지나친 요구겠지요. 다만, 우리의 특수한 역사적 현실이 있는 만큼, 지난 100년간 우리 민족과 민중이 겪었던 억울한 아픔을 비록 대학교 과정에서는 배우지 못하더라도 교사가 되고 나서라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역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지난 100년간의 민족과 민중의 억울한 아픔에 공감하는 감수성을 갖는 거죠.

3·1 운동의 정신이 최근 촛불혁명으로 다시 살아나긴 했지만, 아직도 많은 이가 그 촛불을 끄려고 하는 아픈 현실 속에서 그저 ‘1+1=2’를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육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은 가치를 전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가르쳐야 합니다. 가치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울림으로 전해집니다. 유관순 열사가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118세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누나라고 불리죠. 유관순 열사는 늙지 않습니다. 자기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은 가치를 가진 소녀로 영원히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노하우(Know How)가 아닌 노와이(Know Why). 어떻게 살아야 하고,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역지식지하는 반듯한 사람을 기르는 일뿐만 아니라 잘못된 역사와 사회 구조도 반듯하게 고쳐놓는 교육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인터뷰 · 이문수 <지금 서울교육> 편집장 ─ 정리 · 신병철 ─ 사진 · 이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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