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시처럼 살 수 있다면

<시가 내게로 왔다>

우리가 시처럼 살 수 있다면. 시처럼 살 수 있다면 내 심장 소리에 대답할 수 있고, 내 마음에 한 그루 나무 같은 집을 지을 수 있으리라. “순수한 지혜, 열린 하늘, 유성들, 고동치는 논밭, 그림자들, 밤이 휘감아 도는 우주”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내 심장의 소리에 대답할 수 있으리라.

파블로 네루다는 길을 걷다가 문득 시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고, 스무 살 무렵 김용택에게 시는 스스로 다가와 발등을 밝혀줬다. 예측 불가능한 아이들을 대할 때, 때로는 삶이 절벽처럼 여겨질 때 시인들이 그러했듯이 조용히 나를 찾아오는 시의 소리를 듣자. 시처럼 살 수 있다면 내 심장 소리에 대답할 수 있고,  내 마음에 한 그루 나무 같은 집을 지을 수 있으리라.

파블로 네루다는 「詩」에서 시가 어떻게 자신을 찾아왔는지를 고백한다.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1권 52쪽)

길을 걷다 문득 들려오는 소리에 시인은 대답을 할 수 없었고 무엇인지 알 수도 없었지만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영혼 속에서 움트고 있는 뜨거운 그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어렴풋한 첫 줄을” 썼을 때, 네루다는 보았다.

그것은 “순수한 지혜, 열린 하늘, 유성들, 고동치는 논밭, 그림자들, 밤이 휘감아 도는 우주”였으며, 그것들과 함께 바람에 풀리는 자신의 심장도 보았다. 너무나 외로워서 저문 들길에 서서 무엇인가를 기다리던 스무 살 무렵 김용택에게도 시는 “환한 목소리(1권 55쪽)”로 다가와 발등을 밝혀줬다. 네루다와 김용택에게 시는 어둠을 밝혀주는 빛이자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게 해주는 매개자이기도 했다.

시인은 인간의 존재성을 드러내주는 시를 쓰는 사람인지라, 어느 시대에는 이 사회로부터 추방을 당하고 어느 시대에는 ‘신의 눈짓을 아는 이’로 격상되기도 했다. 윤동주에게 시인은 하늘이 명령한 운명이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인 어둠 속에서도 신의 명령에 응답하기 위해 시를 써야만 하는 자신을 “슬픈 천명” 으로 표현했다. 명확한 것은 시가 우리를 찾아온다는 점이다. 우리가 시를 찾고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간절함의 끝에 찾아온 시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다.

시가 스스로 자신을 드러낸다면 어떤 모습일까. 무엇을 바라고 우리 곁으로 온 것일까. <시가 내게로 왔다> 이 책에는 시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시는 밤새워 이야기해도 다 하지 못할 한 사람의 생을 “삶이 어찌 이다지도 소용돌이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 그 소용돌이치는 여울 앞에서 나는 백 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1권 64쪽, 송찬호, 「임방울」 중에서)”라는 단 두 문장으로 명창 임방울의 생애와 휘몰아치는 그의 노래 세계를 들려준다. 구구절절 많은 말 없이도 시는 절제된 언어의 모습으로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때로는 아비의 쓸쓸한 사랑을 전하기도 한다. “구두를 새로 지어 딸에게 신겨주고 / 저만치 가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 한 생애 사무치던 일도 저리 쉽게 가겄네.(2권 88쪽, 김상옥, 「어느 날」 중에서)”라며 우리들 삶의 한 단면을 들려준다. 장성한 딸에게는 희망(새로 지어 준 구두)을 주고, 딸의 뒷모습을 보며 사무치던 일도 언젠가는 저리 쉽게 갈 것이라고 위안하기도 한다. 언제까지나 응석받이 아이로 있을 것 같던 딸이 아비의 사랑으로 어느덧 훌쩍 자라 자신의 길을 가는 것처럼 삶의 매듭도 그렇게 풀어질 것이다.

살면서 사무치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일까.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고개가 보이듯이 우리들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특히나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날마다 ‘서프라이즈’를 외치게 된다. 양육하는 부모에게나 교육하는 선생님에게 아이들은 예측 불가능한 존재다. 아이를 키우며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혹시 내 아이가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이었다. 왕따는 나이를 가리지 않으며 그림자가 없고, 어느 날 갑자기 훅 찾아오기에 더 불안했다.

언제였던가, 아이가 왕따를 당하여 힘들어하는 엄마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엄마는 커피가 식을 때까지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으로 아이가 힘들어진 게 아닌지, 혹시 자신이 잘못 생각해서 또는 말을 잘못해서 아이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내내 스스로를 책망하고 있었다. 힘없이 걸어가는 그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누군가에게는 오늘을 산다는 것 자체가 슬픔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우리는 왜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타인의 일방적인 선택으로 고통받아야 하는 걸까.

이 책에서 김용택은 자신이 경험한 슬픔을 조용히 고백한다. “누구나 죽고 싶은 젊음이 있었다. 나도 그랬다. 그냥 칵 죽고 싶었다.(2권 93쪽)” 빛이 보이지 않아서 그냥 칵 죽고 있었던 젊은 그에게 다가와 위안을 건넨 것은 “들길을 걸어 자갈 깔린 신작로 옆 작은 주막 옆에 딸린 낡은 이발소 벽에 걸린 액자 속의 유치한 그림 옆에 있던 시(2권 93쪽)”였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힘겨운 날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가 슬프다 해도
모든 것은 하염없이 사라지고
지나간 것은 훗날 그리워지리니.
(2권 92쪽, 푸시킨 「삶」 중에서)

그리고 그는 “살았다.”

카페에서 만난 엄마의 슬픔과 김용택의 슬픔은 다르다. 하지만 오늘의 슬픔은 지금도 지나가는 중인 것은 같다. 푸시킨의 시는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미래에 살고 있으므로 현재는 과거이며, 현재가 슬프다 해도 결국은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 시는 칵 죽고 싶어 하던 젊은이를 살게 해줬다. 내가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때, 지금 서 있는 곳이 절벽 끝이라고 여겨질 때 시를 읽으며 삶의 의미를 찾았던 젊은이를 생각하자. 내 아이의 상황이 절망적일 때 아이의 손을 잡고 시처럼 살아보는 건 어떨까. 나에게 찾아온 시는 나와 내 아이, 내 가족에게 또 다른 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집이 있는 사람은 뜨거운 열기와 찬 바람을 피할 수 있고, 지친 나그네에게 처마 한끝이라도 내어줄 수 있다. 내 마음의 집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누가 다녀갔는지를 들려주면 나는 시인이 된다.

나무들은
난 대로가 그냥 집 한 채.
새들이나 벌레들만이 거기
깃들인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면서
까맣게 모른다 자기들이 실은
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지를!
(1권 14쪽, 정현종, 「나무에 깃들여」)

나무가 그냥 집 한 채인 것은 많은 것이 나무에 깃들여 살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시에 깃들여 산다면 내 마음이 한 그루 나무이고 집이다. 우리가 시처럼 살 수 있다면 “순수한 지혜, 열린 하늘, 유성들, 고동치는 논밭, 그림자들, 밤이 휘감아 도는 우주”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내 심장의 소리에 대답할 수 있으리라.

우리가 시처럼 살 수 있다면. 시처럼 살 수 있다면 내 심장 소리에 대답할 수 있고, 내 마음에 한 그루 나무 같은 집을 지을 수 있으리라. “순수한 지혜, 열린 하늘, 유성들, 고동치는 논밭, 그림자들, 밤이 휘감아 도는 우주”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내 심장의 소리에 대답할 수 있으리라.

<시가 내게로 왔다>
김용택 저 | 마음산책 펴냄

저자 김용택 시인은 문학적 흐름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로 독자들을 감동시키며 대상일 뿐인 자연을 삶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여 절제된 언어로 형상화하여 김소월과 백석을 잇는 시인이라는 평가를.

우리가 시처럼 살 수 있다면. 시처럼 살 수 있다면 내 심장 소리에 대답할 수 있고, 내 마음에 한 그루 나무 같은 집을 지을 수 있으리라. “순수한 지혜, 열린 하늘, 유성들, 고동치는 논밭, 그림자들, 밤이 휘감아 도는 우주”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내 심장의 소리에 대답할 수 있으리라.

<시가 내게로 왔다>
김용택 저 | 마음산책 펴냄

저자 김용택 시인은 문학적 흐름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로 독자들을 감동시키며 대상일 뿐인 자연을 삶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여 절제된 언어로 형상화하여 김소월과 백석을 잇는 시인이라는 평가를.

김성리(인제대학교 인문의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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