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의 엄마에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교육자로

나는 발달장애인을 키우는 50대 엄마다. 아이가 유치원 입학할 무렵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후 세상과 싸움이 시작됐다. 시선과 편견으로부터 사투가 시작된 것이다.

처음은 통합교실 유치원에 보내기 위한 노력으로 시작됐다. 몇 개 안 되는 유치원에 어렵게 등원하게 됐지만, 아이는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다. 겨우 유치원에 적응하나 싶은 사이 또다시 발달장애인을 받아주는 초등학교를 찾아다녀야 했다. 다행히 중부교육청 관내에는 받아주는 학교가 많았다. 하지만 학교에 가도 착석이 잘 안 돼서 교실에 있지 못해 툭하면 엄마를 찾아 교실을 뛰쳐나오는 바람에 ‘아이가 혹시 나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으로 교문 앞을 지켜야 했다. 방과 후에는 언어치료, 생활체육으로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아이의 발달에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교육이 있다면 열심히 찾아다녔다.

중학교부터는 관내 특수학교에 보내게 됐다. 특수학교에 다녔지만 개별교육도 계속해야만 했다. 일정 기간은 복지관에서 저렴하게 교육받았지만, 지원 기간이 지나면 개인 부담으로 배울 수밖에 없었다. 개인학습은 경제적으로, 생활적으로 많이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 그 부담과 노력만큼 아이의 변화가 없어서, 성인이 된 아이를 생각하면 심리적 불안감에 너무나 힘들었다. 아이의 몸은 점점 자라 성인이 되어가지만, 정신연령은 3~4살 수준에 멈춰 있으니 힘으로도 감당하기 점점 힘들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것도 걱정이었다. 평생 발달교육지원이 필요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발달장애인들은 우리나라 교육체계에서는 더는 교육의 대상이 아니다. 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의 체육시설을 이용해서 운동했지만, 졸업하면서 운동시설을 이용하기 힘들었다. 점점 지역사회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져 오롯이 가족이 아이를 돌봐야 했다. 항상 가족 중 한 사람은 아이와 같이 있어야 하니, 가족 전체의 삶이 힘들어지고,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가족 전체가 자꾸 폐쇄적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일반학교에 다니며 비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이었던 초등학교 6년 동안은 자연스럽게 동네 친구들이 아는 척을 해주고, 그 친구들의 이름을 아이가 기억했다. 힘들었지만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시간으로 기억된다.

삶이 항상 긴장의 연속이라 생각도 몸도 마음도 지쳐가고 있을 때, 미래를 위해 스스로 아이를 교육할 수 있는 전문적인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온라인으로 학습할 수 있는 사이버대학교에 입학하여 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했다. 컴퓨터를 좋아하는 아이 때문에 집에서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사회복지사 공부를 마치고 특수심리 공부도 시작했다. 이왕 시작한 공부, 나와 같은 상황의 장애 아동 가족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며 방법을 찾던 중 중구청 사회적경제과에서 진행하는 마을기업 창업아카데미에 참여하게 됐다.

올해 가장 큰 성과는 작지만 지역의 발달장애인을 위한 일상활동과 교육 지원을 사업목적으로 하는 협동조합을 설립한 것이다. 중구 지역에서 발달장애인을 키우며 같은 고민을 하는 10명의 부모님이 모여 협동조합을 만들고, 서울시에서 예비마을기업으로 지정도 받아 초기 사업비도 지원받게 됐다. 발달장애인을 키우는 엄마들이 아이들 마음을 잘 알고 성향도 잘 아니, 열심히 노력해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프로그램도 만들고, 지역 안에서 삶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면서 교육받고 살아갈 수 있는 교육시설을 운영하는 것이 목적이다.

나는 이제 그냥 한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도 우리에게는 아직도 아이로 남아 있는 발달장애인들이 평생교육을 받으며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돕기 위한 한 사람의 교육자로 살아가고자 한다.

이금순(협동조합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사장)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등록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