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이름이여, 그대의 이름은 교육법

교육 본질을 구현하는 새로운 교육법

교육개혁이 지속가능성을 가지려면 더는 교원의 열정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교육법에 공교육 전반의 목표와구조를 체계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실제로 기존 교육법에서 몇몇 글자만 바꾸어도 교육 현장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교육개혁 제안들이 단순한 미봉책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구체적인 교육법 개정을 제안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뜻이 아니라 공공이 합의한 법률에 의해 이루어진다. 교육개혁 역시 마찬가지다. 교육을 개혁한다는 것은 교육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법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명 없이 단위학교 교원들의 열정에 의존하는 교육개혁, 교육혁신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또 이른바 교육적폐라 불리는 것들 역시 몇몇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학교의 비민주성은 일부 교장의 인품 탓이 아니며, 요즘 심각하게 대두되는 교권침해 역시 일부 학부모의 갑질 때문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특별한 선인과 악인을 상정하지 않는다. 일단 모든 사람이 악의가 있다고 가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권리가 지켜지고, 공공의 선도 구현되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그 방법은 만드는 과정에서는 충분히 합의하고, 일단 만들어지면 강제력을 가지는 법 외에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교육법은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급변하는 교육환경에 걸맞은 그런 교육을 보장하고 있을까? 안타깝지만 그렇지 않다. 더구나 우리나라 교육법은 그 체계 자체가 매우 난잡하고 모호하여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며, 현장의 갈등만 유발하고 있다. 몇 가지 예만 들어 보겠다.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

대한민국 헌법 제 31조 4항에 따르면,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나라 교사들은 정부나 다른 권력의 침해를 받지 않고,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오직 교육 전문성에만 근거하여 자주적인 교육을 할 수 있을까?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제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우향우, 좌향좌로 급격히 바뀐다.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보장하는데, 그 법률이 실질적인 보장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헌법의 이 조항에 해당되는 법률은 ‘교육기본법’의 5조, 6조다. 그런데 이 조항들을 보면, 여전히 구체적인 내용이 없이 헌법을 동어반복하고 있다. 심지어 정치 중립의 경우는 보장받는 권리였던 것이 도리어 금지되는 의무로 둔갑하고 있다.


제5조(교육의 자주성 등)
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보장하여야 하며, 지역 실정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시책을 수립·실시하여야 한다.

제6조(교육의 중립성)
①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이렇게 법률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정하지 않으면, 실질적인 내용은 시행령으로 넘어간다. 즉 행정부에서 사실상 입법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교육은 대통령과 그 측근의 생각에 따라 마음대로 바뀔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 위에 있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어떤 정권도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존중하지 않았으며, 교사들을 단지 조작과 계도의 대상으로 다뤘다. 이는 우리나라의 교육법들이 대통령 명령(이하 시행령)에 너무 많은 사항을 위임했기 때문이다.

말뿐인 교원 존중, 법적 지위가 미천한 교육과정

또 다른 예가 있다. 법률에서는 좋은 말을 써놓았지만, 실질적인 내용을 정할 방법과 절차가 명시되지 않아 법이 선언에 그치는 경우다. 교육기본법 14조에 따르면, 교원(敎員)의 전문성은 존중되며, 교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는 우대되고 그 신분은 보장되어야 한다. 물론 그 경제적, 사회적 지위 우대의 구체적인 방법을 법률에서 세세히 정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조항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정할 위임 규정이 없다. 가령 ‘··· 신분은 보장되어야 한다’ 다음에 ‘그 구체적인 내용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한 줄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교원 전문성 존중과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우대를 규정한 이 법률 조항은 실현할 방법이 없는 선언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더 심한 경우도 있다. 공교육의 기준이자 사실상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국가수준 교육과정’의 법적 지위가 매우 낮다. 학교에서 교육과정이란 사실상 헌법이나 다름없다. 교사들은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모든 학교가 통일성 있게 운영되는 까닭은 바로 국가수준 교육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이 바뀌면 당장 수업내용과 방법이 바뀌며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간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국가수준 교육과정은 법률로 그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국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치지 않는다. 그럼 시행령이나 교육부의 규칙으로 제정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다. 그럼 뭘까? 딱히 정해진 바가 없다. 딱히 정해진 바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교육부 장관 훈령으로 마음대로 제, 개정할 수 있다.

교육과정에 대해 규정한 법률은 초·중등교육법 23조다. 여기에 따르면, 학교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야 하며(1항), 그 교육과정의 기준과 내용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교육부 장관이, 지역 실정에 맞는 기준과 내용은 교육감이 정하고(2항), 교과는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아무리 뒤져봐도 교육부 장관이 국가수준 교육과정을 제, 개정하는 절차와 권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규정되어있지 않다. 교과를 정하도록 위임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43조에도 특정 교과들을 설치한 뒤, 그 말미에 ‘교육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교과’도 설치할 수 있도록 덧붙여 놓았다. 결국 교과, 그 교과의 내용 선정과 편성에 대한 모든 권한이 교육부 장관의 자의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장관이 고집을 세우자 아무도 막을 수 없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를 떠올려보라.

어떻게 할까?

그럼 교육법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제 교육전문가들 역시 여기 관심을 가지고, 단지 방향 제시가 아니라 구체적인 법조문을 짜보고 수정하여 제안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교육법전을 펼쳐놓고 한 줄 한 줄 읽어보고 문제점이 무엇인지, 빈틈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대체 입법안을 고안해보자. 사실 교육이 정말 백년지대계라면 백 년을 내다보는 큰 그림 속에서 처음부터 제대로 설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참으로 요원한 일이니, 우선 당장 고쳐 쓸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부터 고쳐가며 다듬어가야 하는 것이다. 짧은 지면에서 구체적인 예를 많이 제공하긴 어려우니, 몇 가지만 제시해보도록 하겠다.

학생인권 문제는 늘 교육 현장에서 논란거리가 되어왔다. 이는 인권이라는 핵심적인 요소를 지방조례에 맡겨버린 법률의 책무 유기에서 비롯된 불필요한 갈등이다. 이러한 갈등은 기존 초·중등교육법에 제18조의 4라는 조항 하나만 신설하면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미 대한민국 국회가 비준한 ‘UN 아동청소년 권리협약의 내용을 준용한다’라는 한 줄이면 될 일이다. 조례는 인권이 아니라 그 보장 방법과 절차만을 규정하면 된다.


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안
(본조 신설) 제18조의 4(학생의 인권 보장)
① 학생들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 유엔의 아동청소년 권리 협약에 명시된 인권을 차별 없이 보장받을 권리를 가진다.
② 각 시·도 교육청에 학생 인권 보호를 위한 기관과 이를 담당할 인권옹호관을 둔다.
③ 학생 인권 보호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과 인권보호기관의 구성, 인권옹호관의 자격, 역할, 임용절차 등은 교육자치조례로 정한다.
④ 국가교육위원회는 3항과 관련한 자치조례가 1항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이에 대한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또한 말로만 존재하고 교육법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이현령비현령이 되어왔던 학습권 역시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학습권이라는 막연한 용어에 교육학·교육철학적 기반이 있는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여 ‘~할 학습권’으로 적시하는 것이다.


제◯조(학습권)
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 4에 근거하여 특히, 다음 각호와 같은 권리를 학교에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❶ 학교에서 자신의 소질·적성·흥미 및 학습 속도에 맞는 교육을 받을 권리
 ❷ 충분한 휴식과 놀이, 그리고 취미생활을 위한 여가의 권리
 ❸ 교과 이외에도 폭넓은 인문교양교육과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
 ❹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간, 장소 그리고 수단을 제공받을 권리
② 학생의 권리 보장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는 교육자치조례로 정한다.
③ 시·도 교육청은 각 시·도 학생의 권리 보장에 대한 상황을 국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 헌법 제32조 4항에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를 실질적으로 집행하는 법률은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다. 특히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보장하고 존중하는 법률적 장치는 전무하다. 물론 ‘교원 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이 있으나, 지위의 기준과 얼마나 향상시키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고, 특히 전문성의 존중에 대한 내용이 없다. 따라서 이를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법률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그중 하나만 예로 들어본다. 특정직 공무원은 일반직 공무원과 달리 직급이 없다. 따라서 특정직 공무원의 직급을 일반직 공무원과 비교하는 법령상의 기준이 있다(공무원임용시험령의 ‘임용예정직급표’). 그러나 이것이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아서 교사는 경력이 아무리 많아도 7급, 장학사 6급, 교감 5급, 교장 4급 식의 아무런 근거 없는 관행적 대우가 횡행해왔다. 이를 구체적으로 별표를 만들어 적시해야 한다. 법에 ‘우대한다’라고 해놓았으면 실제로 어떻게 우대할지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교원 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
제2조(교원에 대한 예우)
③ 국가, 지방자치단체, 그 밖의 공공단체는 별표 <>의 기준에 근거하여 교원을 우대하여야 하며, 교원이 교육활동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여야 한다.(본조 신설)


그러나 교사를 가장 맥 빠지게 하는 것은 교원의 지위가 아니라 교육의 지위다. 즉 학교가 교육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이 되고, 교사가 교육자가 아닌 행정직원이 되는 상황이다. 이는 ‘교사는 교육을 담당한다’라고 되어 있는 초·중등교육법에도 불구하고 ‘교육’이 무엇인지 규정되어 있지 않아, ‘교육 관련 업무’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각종 행정업무가 교사에게 전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애매하게 업무를 규정하면 사실상 학교의 모든 업무는 교육 관련 업무가 된다. 교사의 업무가 교육이라면 무엇이 교육이고 무엇이 교육이 아닌지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교원과 직원 간 쓸모없는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다.


초·중등교육법
제19조(교직원의 구분)
① 학교에는 교육을 담당하는 교원과 행정 및 기타 사무를 담당하는 직원을 둔다.(신설)

제20조(교직원의 업무: 전부개정)
① 교직원의 업무는 다음 각 호와 같이 구분한다.(신설)
 ❶ 수업과 평가, 학생지도 활동 및 이를 위한 기획·연구·연수 활동을 통칭하여 교육이라 한다.
 ❷ 교육 이외에 학교 운영에 필요한 제반 사무, 교육을 지원하고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제반 사무를 통칭하여 행정이라고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교육법에서 가장 무시되어온 존재가 학부모다. 우리나라 교육법 체계에서는 학부모의 권리도, 책무도 규정되어 있지 않다. 그 결과는 학부모의 지나친 교육 간섭으로 인한 이른바 치맛바람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학부모들을 학교에 대해 약자로 만드는 각종 폐단이라는 양극단의 사례다. 따라서 학부모의 권리와 의무를 명확하게 규정함으로써 논란의 소지를 제거하고, 학교가 학부모를 교육의 책임 있는 파트너로 받아들일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런 법 조항을 만들어 교육기본법 등에 포함시킬 수 있다.


제◯조(학부모의 권리)
① 학부모는 교사와 함께 학생의 교육에 대한 공동의 권리를 가진다.
② 학부모는 학교의 중요한 결정에 의결권을 행사하고,학교의 각종 업무에 자율적으로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③ 학부모는 자주적인 학부모회를 구성할 권리를 가지며, 한 학교 내에 여러 학부모회가 있을 경우 학부모회들의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다.
④ 학교는 학부모가 3항의 활동에 필요한 시설, 장소, 연수 등을 지원하여야 한다.
⑤ 학부모는 자녀의 학업 및 발달사항에 대한 정기적인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조(학부모의 책무)
① 학부모는 교사와 학생의 교육에 대한 공동의 책임을 가진다.
② 학부모는 교사의 전문성과 자주성을 존중하여야 한다.
③ 학부모는 학생의 교육과 지도에 필요하다고 판단하여학교가 소환했을 경우 이에 응해야 하며, 이에 응하고자 하는 학부모를 방해하는 자는 형법상의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하여 처벌한다.
④ 학부모는 학교의 여러 교육행사에 적극적으로참여하여야 한다.
⑤ 학부모는 공동의 책임을 지닌 교육자로서 교육에 대한식견을 높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⑥ 국가·지방자치단체·학교는 학부모에게 5항에 필요한지원과 협조를 제공하여야 한다.


교육전문가의 관심이 필요하다

지면 관계상 이 정도만 소개한 것이 아쉽다. 명심하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현재 우리나라 교육법은 체계 없는 여러 법률의 무질서한 집합이다. 그리고 그 빈틈을 노리고 교육 외부에서 수많은 특별법과 시행령이 마구 침범하고 있다. 그 결과 교육은 백년지대계는커녕 그때 그때 이슈에 따른 땜방이 되고 있다. 아무리 교사가 열정과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교육법이 누더기라면 결국 교육도 누더기가 된다. 교육 주체, 특히 교육전문가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교육법을 샅샅이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교육법은 바람직한 교육의 상에 대한 합의이자 그것을 구체화하는 설계도라야 한다. 게다가 교육법은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대적인 수술과 재구성이 필요하다. 각 세대에는 거기 맞는 교육이, 거기 맞는 교육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정치권이 깨닫기까지 기다릴 수 없다. 교육법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제안은 교육전문가들의 사회적인 책무 중 하나다.

학교마다 혹은 지역마다 전문학습 공동체의 일환으로 교육법 연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연구회는 단지 현행법의 이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의 입법 등을 통해 교육법의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교육 주체라면 교육법의 주체이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권재원(성원중학교 교사, 실천교육 교사모임 고문, <학교가 꿈꾸는 교육 교육이 숨쉬는 교육>, <반전이 있는 베트남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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