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의 ‘토냐 하딩들’에 대해

미국 영화 <아이, 토냐>

토냐 하딩은 착잡한 마음으로 법원 문을 나왔다. 법원 앞에는 소식을 듣고 온 기자들로 장사진이었다. 법원의 결정은 집행유예. 처벌은 받지 않겠지만 죄는 인정된다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범법자가 되어버린 토냐 하딩의 인생은 말 그대로 ‘끝장’났다. 화려한 피겨스케이팅 기술로 미국 최고 인기인 중 하나였던 그였다. 그는 왜 이렇게까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 것일까?

피겨스케이팅계의 이단아, 토냐 하딩

토냐 하딩은 어린 시절부터 피겨스케이팅에 두각을 보였다. 매우 가난한 집안이었지만, 그의 실력을 알아본 개인스폰서가 어렸을 적부터 붙었고, 몇몇 대회에 입상한 이후부터는 기업스폰서도 붙어 피겨스케이팅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그가 걸어온 길은 피겨스케이팅 외길이라 하기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온갖 말썽을 일으키고 다녔으며, 사사건건 크고 작은 언행 문제와 불필요한 시비 문제 그리고 당대 사회의 금기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도발 행위도 멈추지 않았다. 빙판 위에서만큼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토냐 하딩이 딛고 있는 빙판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이나 마찬가지였다.

토냐 하딩은 여러모로 기이했다. 여성다움과 우아함을 강조하는 피겨스케이팅계의 이단아라 불릴 만 했다. 실력은 뛰어났다. 미국 선수 최초로 트리플 악셀에 성공한 사람이 바로 토냐 하딩이다. 경이로운 운동신경으로 아크로바틱한 무대를 선보이는 선수에게 찬사가 쏟아지는 건 당연. 그러나 그 외에는 ‘기이한 면’이 많은 선수였다. 전문 디자이너가 아닌 본인이 직접 디자인해 형형색색의 촌스러운 경기복을 입고 출전하는 일은 예사고, 경기 결과에 거칠게 항의하거나, 경기 중간에 이의를 제기하며 경기를 이어가지 않는 등의 일도 제법 벌였다. 그중 그가 일으켰던 가장 큰 문제는 미국 피겨스케이팅계를 나락으로 몰아넣었던 이른바 ‘토냐 하딩 사건’이다.

당시 토냐 하딩은 ‘넘버 원’은 아니었다. 그에겐 라이벌이 있었는데, 낸시 캐리건은 가정사가 불우한 토냐 하딩과 달리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오면서 최고 정점에 오른 토냐 하딩의 안티테제와 같은 존재였다. 그 둘의 신경전은 치열했는데,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앞두고 절정으로 치달았다. 선수선발전을 통해 1위와 2위가 출전하기에 사람들은 낸시 캐리건과 토냐 하딩이 1, 2위를 차지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선수선발전을 앞둔 어느 날 낸시 캐리건이 괴한에게 습격당해 이로 인한 부상으로 선수선발전을 포기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문제는 경찰 조사 끝에 잡힌 괴한이 토냐 하딩의 전 경호원이었던 것. 수사를 통해 이 일을 사주한 사람이 토냐 하딩의 전 남편인 제프 길루리로 밝혀졌고, 토냐 하딩 또한 용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기 이른다.

조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올림픽은 시작됐고,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에 참가하게 된 낸시 캐리건은 은메달을 목에 건다. 낸시 캐리건만큼이나 뛰어난 경기를 선보였던 토냐 하딩은 이와 반대로 처참한 점수표를 받아들었다. 뭐라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경기 외적인 문제가 그의 무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가장 대중적인 지지를 받는 해석이다. 이 사건 이후로 미국의 피겨스케이팅 인기는 확 사그라들었고, 토냐 하딩 또한 연맹의 중징계와 부상 그리고 법원의 집행유예 결정 등이 겹치며 은퇴를 선택하게 된다.

만약 토냐 하딩이 스케이트를 타지 못했다면?

만약 토냐 하딩이 낸시 캐리건과 같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호사가들은 피겨스케이팅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고 답한다. 재능은 타고난 것이지만 이를 발현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환경의 몫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아이, 토냐>가 지적하는 부분은 안타까운 선수의 아까운 재능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우리는 왜 토냐 하딩을 ‘그런 눈으로 바라봤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토냐 하딩은 눈에 띄는 선수였다. 우아한 클래식 곡에 맞춰 연기를 펼치는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미국 중남부에서 유행하는 고상하지 못한 가사의 하드록 음악을 배경으로 깔고 연기하기도 했다. 기술은 뛰어났지만 우아하지 못했다. 여성다움은 적었고, 때때로 우악스럽기까지 했다. 당시 미국 사회는 토냐 하딩에게 열광하는 한편, 경멸의 시선도 함께 보냈다. 이런 고상하지 못한 선수가 미국을 대표한다는 사실이 내심 못마땅하다는 생각도 적지 않았다. 만약 토냐 하딩이 낸시 캐리건처럼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고 평범하게 선수 생활을 했었다면, ‘토냐 하딩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될 일이 있었을까? 아니 애초에 사건에 그의 이름이 붙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토냐 하딩의 이야기는 사실 특이할 것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 또한 수많은 토냐 하딩이 살아가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몇몇 실수와 사람들의 고정관념으로 사회에서 이탈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학교 현장도 마찬가지다. 적지 않은 수의 학생이 몇몇 실수와 고정관념 등으로 제도권 교육에서 이탈한다. 과연 우리 궤도는 그들을 다 품어내기 어려울 만큼 협소한 여유를 가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으레 그래왔기 때문에,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사고하지 않고 결정하는 것일까? 저마다 개성이 다른 학생들을 모두 품어내기에 우리 교육의 품은 그렇게도 좁은 것일까?

돌이켜보면 토냐 하딩은 운이 좋은 케이스에 속한다. 그에겐 뛰어난 재능과 엉망인 환경이 공존했다. 그에게 재능이 없었다면 그의 삶을 이렇게 면밀히 들여다보고 공감하고 이해하는 일조차 없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모난 돌’은 특출난 재능 없이 어려운 환경만을 지닌 이들이 많다.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보다 무겁고 어려운 선택과 이에 대한 책임을 종용받는다. 환경은 사람마다 선택과 책임의 무게를 다르게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모든 사람이 공정한 출발선에 설 수 없다면, 모든 이가 비슷한 출발선에 서더라도 동일하게 출발할 수 있는 능력과 환경을 지니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은 함께 나눌수록 옅어지는 법. 우리 주변의 토냐 하딩, 아니 ‘스케이트를 타지 못하는 토냐 하딩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다.

이중기(프리랜서 라이터)  사진제공 누리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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