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에 관한 3가지 질문

인권교육은 민주시민교육의 핵심

인권교육을 왜 해야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충분히 고민하지 못한 채, 조례에 의해 떠밀리듯 들어온 인권교육은 바쁘고 빠듯한 학교의 교육과정 속에서 종종 뒷전에 밀쳐지곤 한다. 이 글에서는 ‘왜’, ‘무엇을’, ‘어떻게’라는 질문을 통해 인권교육을 좀 더 가깝게 느껴보고자 한다.

8년 전, 학생인권조례의 제정과 함께 인권교육이 학교에 들어왔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학교에서 인권교육은 낯설고 불편하다. 인권교육을 왜 해야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충분히 고민하지 못한 채, 조례에 의해 떠밀리듯 들어온 인권교육은 바쁘고 빠듯한 학교의 교육과정 속에서 종종 뒷전에 밀쳐지곤 한다. 이 글에서는 ‘왜’, ‘무엇을’, ‘어떻게’라는 질문을 통해 인권교육을 좀 더 가깝게 느껴보고자 한다.

인권교육, 왜 해야 할까?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기본법 제2조의 내용이다. 이 조항을 통해 우리나라는 교육의 목적을 ‘민주시민의 자질을 기르고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시민의 자질이 무엇일까? 자유와 평등, 박애, 인간존엄성, 존중과 관용 같은 가치들을 내면화하고 삶에서 일구어낼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가치를 관통하는 핵심에는 인권이 있다. 민주시민의 자질은 결국 인권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과 맞닿아 있다.

시야를 좀 더 넓혀서 국제 규약을 살펴보도록 하자.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제29조 1항 나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사국은 아동교육이 다음의 목표를 지향하여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 인권과 기본적 자유 및 국제연합헌장에 규정된 원칙에 대한 존중의 진전.”

우리나라는 1991년에 이 협약에 가입, 비준했고, 이에 따라 이 조항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우리나라의 교육기본법, 그리고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 아동권리협약의 내용에 따르면, 교육의 목적은 명료하다. 교육은 인권의 증진과 향유를 목적으로 해야 하며, 인권을 알고 향유하는 시민을 길러내는 것은 학교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지이다. 우리나라가 표면적으로 천명하고 있는 교육목적은 ‘홍익인간’이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의미이다. 홍익인간의 정신은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귀하게 대하고자 하는 인권의 가치와 잘 부합한다.

그런데 이 인권은 ‘가르치지 않고서는’ 향유할 수도 없고, 달성할 수도 없다. 따라서 교육의 장에서 인권교육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인권교육은 인권이라는 특별한 이슈를 다루는 협소한 교육이 아니라, 교육의 가장 핵심에 놓여야 하는 중심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교육을 한다고 할 때마다 맞닥뜨리게 되는 오해들이 있다. 크게 두 종류의 오해다. 첫째는 인권교육이 권리만 주장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키우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오해이다. 다른 하나는 인권교육은 남을 배려하는 ‘착한’ 아이를 기르는 교육이라는 오해다.

사람들은 흔히 인권과 이기주의를 혼동하곤 한다. 그래서 인권교육을 하게 되면 학생들이 자신의 권리만 알고 이기적으로 굴게 될 것이며 마땅히 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는 소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인권교육을 향한 첫 번째 오해다. 권리와 책임의 불균형에 대한 불안감은 때로, 인권교육 자체를 부정하게 만든다. 학생들을 이기적이고 무책임하게 만드는 ‘위험한’ 인권교육은 가급적 지양하고, 책임과 의무를 우선적으로 가르치고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사람들은 종종 인권교육을 하면 학생들이 ‘착한’ 아이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한다. 이 기대의 연장선에는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도와주는 ‘선행’이 자리하고 있다. 남을 배려하는 ‘착한’ 아이를 기르는 이미지는 인권교육을 향한 대표적인 두 번째 오해이다. 이런 관점에서 인권교육을 바라보면 인권교육이라는 명칭이 오롯이 독립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항상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인권교육’, ‘평화롭고 우정이 있는 교실을 위한 인권교육’과 같이 다른 낱말이 더 부각되고 인권은 그것을 위한 도구인 양, 덧붙여지곤 한다. 더 흔하게는 ‘장애인권교육’, ‘다문화인권교육’과 같이 어떤 특정 소수자집단과 관련해서 사용된다. 이렇게 이뤄지는 인권교육은 장애인이나 다문화 친구를 배려하고 도와주자는 결론으로 이어지기 쉽다.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인권교육이나 장애인권교육 같은 명칭을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인권교육이 이런 형태로만 존재하고 이것이 인권교육의 지향점이 되는 것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인권교육은 인성교육이나 도덕교육의 아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해들을 불식하고 인권교육이 인권교육답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다음의 3가지 목표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인권교육은 학생 본인이 인권과 자신의 권리를 깨닫고 이를 향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교사와 사회가 기대하는 학생으로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본인이 선택하고 결정한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교사와 어른은 자신의 틀에 학생을 가두지 않도록 해야 하며, 학생의 선택과 삶의 실현 과정에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 인권교육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타인, 그리고 모든 사람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권교육이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은 인권교육이 ‘건방지고 이기적인’ 학생을 길러낼 것이라는 오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마지막으로 인권교육은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쳐 친인권적인 가치가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하여 학생은 사회문화에서 반인권적인 장면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이에 대항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인권교육은 학생에게 인권친화적인 사회와 구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인권교육, 무엇을 해야 할까?

인권교육을 시도해보고자 하는 교사와 학교가 맞닥뜨리게 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마땅히 따라 할 만한 모델이 없다는 점이다. 개별 학교와 교사가 인권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지식, 감수성을 바탕으로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계획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아무것도 없상태에서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일이기 때문이다. 인권교육과 관련하여 가장 잘 알려지고 참고할 만한 모델은 리스터가 제안한 인권교육의 3요소다.

리스터는 크게 3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인권교육을 설명한다. 첫째, ‘인권에 관한(about) 교육’, 둘째, ‘인권을 위한(for) 교육’, 셋째, ‘인권을 통한(through) 교육’이다. 리스터가 제안한 인권교육의 3요소는 UN이 2011년에 선언한 <인권교육훈련선언>에도 차용되어 인권교육의 내용요소를 이루고 있다.

인권에 관한 교육은 주로 ‘지식’적 측면과 관련이 있다. 인권의 개념과 원칙, 인권의 역사, 세계인권선언 등 인권 관련 문서에 대한 이해 등을 다룬다. 인권을 위한 교육은 주로 ‘가치·정서·태도’적 측면에 대한 부분으로, 학습자가 궁극적으로 인권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태도를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마지막으로 인권을 통한 교육은 ‘환경’적인 측면을 다룬다. 흔히 말하는 잠재적 교육과정과 연결하여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학생을 둘러싼 학습환경 자체가 인권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학교, 교실에서의 인권교육은 이상의 3요소를 고려해서 이뤄질 수 있다. 인권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인권의 개념과 원칙, 그리고 개인의 권리에 대해 배우고 이해할 뿐만 아니라, 모두의 인권을 옹호하고 지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실천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실제적인 인권교육 모델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인권교육을 왜 해야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충분히 고민하지 못한 채, 조례에 의해 떠밀리듯 들어온 인권교육은 바쁘고 빠듯한 학교의 교육과정 속에서 종종 뒷전에 밀쳐지곤 한다. 이 글에서는 ‘왜’, ‘무엇을’, ‘어떻게’라는 질문을 통해 인권교육을 좀 더 가깝게 느껴보고자 한다.

수업의 형태로 구현되는 인권교육은 인권의 개념과 원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개인과 공동체의 권리를 탐색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의 인권교육은 학생들이 인권의 언어와 권리의 낱말에 익숙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교실에서는 ‘권리카드’를 활용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볼 수 있다.

한 학생의 이야기를 소개해본다. 아침마다 머리카락을 묶고 푸는 문제로 엄마와 갈등을 빚던 한 학생이 있었다. 엄마는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침마다 잔소리를 했고, 딸은 엄마가 머리카락까지 간섭한다면서 화를 냈다. 이 학생은 자신의 현재 상황과 관련하여 ‘개성을 실현할 권리’라고 적힌 카드를 골랐다. 엄마의 행동이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침해한다는 의미였다. 학생의 감정과 상황을 공감한 뒤, 과연 개성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개성을 실현하는 것인지에 관해 토론해봤다. 이 과정을 통해 해당 학생뿐만 아니라 학급 전체가 개성을 실현할 권리, 신체의 자유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 있었으며, 엄마와 딸 사이에서 어떤 가치와 권리가 충돌하는지에 대해서도 탐색해볼 수 있었다.

자신의 삶과 경험을 인권의 언어로 재해석해보는 경험을 통해 학생들은 인권이 허공에 붕 뜬 추상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실제이자 삶의 기본적인 방향으로 인식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속에서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드러내고 주장해야 하는지, 충돌하는 권리들 사이에서 어떻게 서로 조율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익힐 수 있다.

인권교육은 이렇게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권리와 인권에 대한 이해가 추상적이고 단편적인 수준에 머물지 않고, 풍성한 맥락을 갖고 살아 숨 쉴 수 있다. 인권에 대한 감각이 풍성한 맥락을 갖게 될 때야 비로소 인권감수성도 높아질 것이며, 단순히 선행을 베푸는 행위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연대의 행동, 인권옹호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봤듯이 인권교육은 기본적으로 개인과 공동체의 권리에 대한 인식 및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태도와 실천을 가장 기본적인 내용요소로 한다. 그러나 인권교육은 단순히 ‘권리교육’에 갇혀있어서는 안 된다. 인권의 본질이 곧 ‘사람이 사람답게, 존엄하게 살 수 있기 위해 필요한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권리이니만큼, 인권교육을 통해 다룰 수 있는 내용은 사람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영역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노동, 전쟁, 생태환경, 기후, 젠더, 권력, 인종, 문화다양성 등의 영역을 인권의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인권의 원칙에 터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 역시, 인권교육에서 다룰 수 있는 내용요소다.

예를 들어보자.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은 기후변화 문제다. 흔히 기후변화는 자연환경 문제로 여겨, 생태교육이나 환경교육의 일환으로 다루어졌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선진국’보다는 ‘후진국’에게,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보다는 사회적 약자 계층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으로 볼 때, 기후변화는 기존의 불평등을 확대하고 악화시킨다는 점을 볼 때, 기후변화는 인권의 문제가 된다. 세계인권선언 제3조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지킬 권리와 안전을 지킬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헌법 제35조에서는 이를 좀 더 구체화하여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한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정부는 시민들이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인권교육에서 기후변화를 다룰 때에는 단순히 일회용품을 적게 사용하자거나 에너지를 아끼자는 차원을 넘어선다. 학생들이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살 권리에 대해 이해하고, 자신의 행동이 지구의 전 인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활방식을 성찰하며, 더 나아가 정부와 기업을 향해 책임을 촉구하는 실천행동을 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인권교육, 어떻게 해야 할까?

교육에 있어서 ‘어떻게’는 종종 교수학습 방법이나 수업기술에 대한 질문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인권교육의 장면에서 ‘어떻게’라는 질문은 인권교육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인권친화적 문화’의 문제로 연결된다. 이는 곧 앞서 살펴본 ‘인권을 통한 교육’과 관련이 있다.

“어린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존중과 평등, 정의라는 인권의 기본 가치를 배우고 체험해야 한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학교의 모든 교과서, 교육과정, 교육정책, 교수법, 전반적인 교육 환경에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

전 UN인권고등판무관인 제이드 라드 알 후세인의 말이다. 인권은 지식으로 가르칠 수 없다. 인권은 인권의 가치와 내용을 경험하고 향유하는 과정을 통해 내면화된다. 따라서 인권교육은 지식의 전달과 기술의 습득만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아무리 인권의 개념과 내용을 잘 전달한다고 하더라도, 인권교육이 이뤄지는 순간에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 및 분위기가 억압적이고 인권친화적이지 못하다면, 인권교육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즉, 인권교육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학교와 교실의 문화가 얼마나 인권친화적인가와 관련이 있다.

인권친화적인 학교와 교실 문화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먼저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동등한 인격체로 여기는 수평적인 관계로 만나는 것이다. 이는 교사의 역할을 부정하거나 학생이 제멋대로 행동해도 괜찮다는 의미가 아니다. 서로를 동등한 관계로 여긴다면 교사는 학생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동시에 학생 역시 교사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만, 나이와 지위의 차이로 인해 교사에게 결정권과 힘이 집중되는 현상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동시에 교사와 학생 사이가 수평적인 관계가 된다는 것은 학생 개개인의 고유성과 개별성을 존중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교실에는 모습과 생각, 경험이 제각기 다른 학생들이 존재한다. 그들을 ‘학생’이라는 고정된 틀 안에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색깔과 매력이 고유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인권친화적인 문화의 특징은 ‘참여와 존중’의 원리에 바탕한다는 것이다. 교사가 도입하여 운영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이나 활동, 학교와 교실의 규칙, 학교와 교실의 모든 공간 구성 등, 학교와 교실의 전반에 참여와 존중이 중요한 기준으로 작동할 때, 비로소 인권친화적인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의 다섯 가지 질문은 우리의 학교와 교실 문화가 인권친화적인지를 점검해볼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① 누군가가 소외되거나 배제되고 있지는 않은가?
② 결정 과정에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는가?
③ 이기고 지는 경쟁구도를 부추기지는 않는가?
④ 다양함이 인정되고 있는가?
⑤ 권력과 힘이 소수에게 집중되지 않고 고르게 나누어져 있는가?

이 길잡이 질문들은 교실살이의 구체적인 순간마다 스스로 묻고 답하면서 보다 인권친화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체크리스트로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체육행사를 계획할 때, 이 길잡이 질문을 활용할 수 있다. 체육행사 종목이나 내용이 소수자 학생, 예를 들어 장애학생을 배제하거나 소외시키는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대체할 수 있는 종목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방식이다.

물론 이런 과정은 때로 꽤나 귀찮고 번거롭다. 가끔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학교가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이 되고, 모두가 자신의 잠재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 위해서는 다소 귀찮고 번거롭더라도 노력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인권은 소수자와 약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려할 때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은 인권

최근 학교 현장의 중요한 키워드는 ‘민주시민교육’이다. 관련하여 민주적 학급운영이라는 표현도 많이 들린다. 그렇다면 과연 민주적 학급운영은 어떤 것일까? 또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은 무엇일까? 학급회의가 활발하게,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것? 그 회의를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학급 규칙을 정하고, 학급의 일을 결정하는 것? 학생들이 학급운영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주인의식을 갖는 것? 다 맞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민주시민교육, 민주적 학급운영의 본질이라기보다는 그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민주적 학급운영은 ‘민주주의’라는 말 그대로, 학생들이 교실과 학교의 주인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힘과 권력을 온전히 향유하는 것이다. 민주시민교육 역시,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 민주시민으로서 학교 안팎에서 생활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교사들은 힘으로 학생들을 통제하고 싶다는 욕망을 포기해야 하며, 학생들 역시 통제와 지시에 따르는 것이 편하다는 인식을 벗어나야 한다. 어느 누구도 제왕적 권력을 갖고 군림하거나 소수자나 약자가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으며, 서로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예민하게 살피고 주장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적 관계의 특징이다. 그 중심에는 모두가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을 갖고 있다’ 는 인권의 가치가 자리해 있다. 인권교육은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지금보다 더 많은 인권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인권교육을 왜 해야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충분히 고민하지 못한 채, 조례에 의해 떠밀리듯 들어온 인권교육은 바쁘고 빠듯한 학교의 교육과정 속에서 종종 뒷전에 밀쳐지곤 한다. 이 글에서는 ‘왜’, ‘무엇을’, ‘어떻게’라는 질문을 통해 인권교육을 좀 더 가깝게 느껴보고자 한다.

이은진(서울발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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