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일단 한번 해봐. 해보고 얘기해”

“엄마, 일단 한번 해봐. 해보고 얘기해”. 올해 초 딸아이의 응원으로 완전한 워킹맘이 됐다. 소중한 큰아이의 말 한마디 덕분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2011년, 귀하고 고운 아이가 우리에게 왔다. 그 아이는 주말도 없이 일하는 자영업 하는 아빠를 둔 덕분에 엄마와 단둘이 함께하는 시간이 자연스러웠다. 친구들과 온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그 사실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친구들의 말을 이해하고 본인 나름의 논리를 펼치기 시작했던 2017년의 어느 날. “엄마, 아빠는 왜 토요일에 안 쉬어? 우리는 왜 남들처럼 캠핑도, 해외여행도 안 가? 나도 엄마아빠랑 같이 오래오래 놀러 갔다가 오고 싶은데···.” 그 말을 듣자마자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예상만 했지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한 나 자신이 왜인지 부끄러웠다.

“딸, 엄마아빠랑 어디 멀리 놀러 갔다 오고 싶어? 엄마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아직 동생이 어리잖아. 동생이 좀 크면 그때 그렇게 해줄게.” 2살짜리 동생 핑계를 대며 둘러댔다. 현실은 아빠의 시간도 없지만 여유 부리며 해외를 갈 만큼 심적인, 물질적인 여유도 없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질까 고민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본래 직업이 강사였던 나는 지인의 부탁으로 규모가 작은 강의를 시작했다. ‘원래 하던 강의니까’라며 과거 기억만 가지고 시작했는데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었음을 간과했다. 학생 수가 많든 적든 강의는 가르치기 이전에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내 아이들과 약속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강의하기 전에는 하고 싶다는 것은 되도록 해주기 위해서 어린 동생을 데리고서라도 다녔던 엄마인 것을 너무나 잘 알았던 딸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일을 시작하니 그것조차 힘들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조르지 않는 모습이 대견하기보다는 미안하고 안쓰럽더라.

그러던 와중에 우리 부부와 오래된 인연의 지인께서 남편이 자영업을 하느라 시간이 자유롭지 않으니 너만큼은 자유로운 일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단, 자유롭기까지는 1년 정도 집중할 시간이 필요한데, 시간을 투자해볼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그때부터 혼란스럽기 시작했다. 남편은 극구 반대했다. 예전처럼 오후 시간 외출은 못 하지만 저녁에는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은 있으니 지금 생활에 만족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이었다. 나 또한 두려웠다. 직업을 바꾸는 일도 문제였지만 1년 동안 아이들을 의도치 않게 방치할 죄책감에 사로잡힐 것이 가장 두려웠다. 그런데도 2년 전 딸아이에게 했던 약속이 자꾸 떠올라 도전하고 싶었다. 조용한 줄다리기였지만 9살인 딸아이는 엄마아빠가 매일 저녁 이 문제로 이야기하는 것을 거의 다 듣고 알고 있었다.

그날 저녁도 이 문제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딸아이가 불쑥 오더니 “엄마, 해보고 이야기해. 1년이 지나면 내가 3학년이 되잖아. 엄마가 일하느라 없는 게 힘들면 그때 내가 이야기할게. 해봐야 알지 얘기만 하면 아무것도 아니잖아” 이렇게 이야기하고는 방으로 쑥 들어가 버린다. 우리 부부가 9살 아이 눈에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을까? 우리 부부는 서로 얼굴을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본인에게 닥칠 시련은 생각지도 못한 채 저렇게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의젓해 보이기까지 했다. 언제 저렇게 컸나 싶기도 하고 내심 당당한 여성으로 잘 크고 있구나 싶기까지 했다.

결국 올해 초 딸아이의 응원으로 완전한 워킹맘이 됐다.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것은 집 근처에서 자영업을 하는 신랑, 할머니만큼 좋은 돌봄 선생님과의 만남, 학교 방과 후 프로그램, 급하다고 할 때면 열 일 제치고 와주시는 시부모님, 방학 때는 애들 봐주시겠다고 데려가주는 친정 부모님까지 계시기에 가능한 일이긴 하다. 그래도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소중한 큰아이의 말 한마디 덕분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박남희(서울면남초등학교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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