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고지 엿보기

학습자중심 교육의 실현과 페미고지

페미고지 엿보기. 학습자중심 교육의 실현과 페미고지. 학습자중심 교육에서는 누가 학습자인지를 고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는 ‘여성’ 학습자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학습자중심 교육에서는 누가 학습자인지를 고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는 ‘여성’ 학습자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래서 페미니스트 페다고지는 학습자중심 교육 실현의 해답이 되는 사례가 된다. ‘페다고지’는 특정 성별을 우위에 놓기 위한 것이 아니다. 기존의 교육주의적 관행을 깨고 대안적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학이다.

‘학교, 교육의 의무를 넘어 학습권 실현으로’ 특별연중기획
교육혁신의 성과가 교육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학습자의 학습과정에 대한 올바른 관점과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 이에 앞으로 10회에 걸쳐 학습자가 주체가 되는 학습에 대한 관점의 정립을 통해 학습자가 중심이 되는 교육혁신 방향을 모색해본다.

학습자중심 교육이란 무엇인가?

요즘에는 어디에서나 학습자중심 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문화센터에서 노인대학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학습자중심 교육이 어떤 교육인지 질문을 던져보면, 답이 쉽게 나오는 건 아니다. 학습자중심 교육은 학습자를 잘 고려해서 재미난 교육을 하는 것인가?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러면 학습자가 교육과정 편성에 참여하도록 권한을 확대하는 교육인가?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학습자중심 교육에는 교육자가 별로 필요하지 않은 것 아닐까? 교육자가 없으면 교육이라 부를 수 없을 것 같으니, 이것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떤 교육을 학습자중심 교육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

앞의 질문에 모두 ‘아니다’라는 답이 나온 이유는, 우리가 교수자중심 교육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 그 반대면 학습자중심이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교육의 양상이 분명하니, 학습자중심 교육을 교수자중심 교육의 반대편에 위치짓고, 기존의 교육과 다르기만 하면 학습자중심 교육의 특징이라 여기곤 해왔던 거다. 하지만 잘 만들어진 교육상품이라고 해서, 교육자의 역할을 축소한 교육이라고 해서 학습자중심 교육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학습자가 자기가 원하는 교육을 받기 위해 기획단계에 들어간다고 해서 보장되는 그런 교육도 아니다. A=~A, 즉 학습자 중심 교육은 교수자중심 교육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맞지만, 그 반대편의 특징이 곧바로 학습자중심 교육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면 A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능동적인 답은 ‘학습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학습주의는 학습자중심 교육이 ‘학습자의 주체성’을 높이는 교육이라고 분명하게 규정한다. 학습자가 사회적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교육. 이것이 학습자중심의 핵심이다. 아무리 학습자들의 입맛에 맞는 달콤한 수업이 이루어지더라도, 학습자 자신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지 않는다면 학습자중심 교육이라고 볼 수 없다는 말이다. 학습자들이 교수자 없이 수업을 진행하더라도, 사회에 대한 자기 나름의 렌즈가 생겨나지 않는다면 학습자중심 교육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학습주의는 학습자중심 교육의 이런 비판적-주체적 특성을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직무교육이나 자격증취득과정은 그래서 학습자중심 교육이 될 수 없다.

‘페미고지’에 담긴 학습자중심 교육의 힌트

학습주의는 그 반대편의 교육주의에 따른 교육이 지배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고 본다.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학교교육은 현재의 지배체제나 관행이 온존하게 하는 훌륭한 도구라는 것이다.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가르쳐야 할’ 내용이 누구나 알아야 할 ‘진리’의 외양을 취하면, 그것은 거의 예외 없이 현상 유지의 교육이다. 학습자가 중심이 된다는 것은, 이런 ‘가르침’의 목소리를 비판하는 시작지점이다. ‘학습자인 내가 보기엔 다르다’라는 입장을 펴는 교육, 그런 입장을 제시할 수 있도록 평등한 판을 만들어주는 교육이 학습자중심적인 교육이다.

문제는 이미 교육주의적 관행이 자리 잡은 상황에서, 어떻게 학습자중심 교육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인가다. 지식이 이미 특정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학위나 자격도 학교라는 틀 속에서 주어지는데, ‘대안적’인 학습이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질문이다. 그 하나의 답이 페미니스트 페다고지, 즉 페미고지(Femigogy)다. 여성은 가장 오래된 억압의 장소, ‘가정’의 안쪽에서 ‘사회’로 목소리를 키워온 대표적인 집단이기 때문이다. 페미고지의 경험은 다른 여러 소외집단이 경청할 만한 것이다.

여성들이 지식의 주인이 되기 위해 선택했던 방법은 대략 세 가지 정도였던 것 같다. 첫 번째는 여성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배제되어왔는지를 밝히는 일이다. 학교에서 가르쳐지는 ‘공식적 지식’에는 아주 오랜 기간, 여성이 배제되어왔다. 물리학에서 경제학, 철학에서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학문이나 지식의 주체는 남성이었다. 여성은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 존재로서, 여성학에 이르러서야 그 존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다음 그림을 보자.

페미고지 엿보기. 학습자중심 교육의 실현과 페미고지. 학습자중심 교육에서는 누가 학습자인지를 고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는 ‘여성’ 학습자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교과서에도 실렸던 위 그림의 제목은 ‘인류의 발달’이다. ‘남성의 탄생’이 아니다. 남성=인류의 등식 사이에 ‘여성’을 끼워 넣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투쟁적 실천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의학적 지식만 보더라도 19세기까지 어떻게 임신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었고, 자궁은 모든 히스테리의 원인으로 주목되어 이유 없이 적출되었다. 엄청난 희생과 투쟁 위에서야 비로소, 여성은 ‘목소리’를 획득할 수 있었다. 페미고지가 말해주는 바, 소외된 학습자들의 권리는 기존 지식의 전제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을 가하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나’에게서 시작되는 ‘공통의 경험’을 찾아내는 일이다. 무엇인가를 ‘배운다’라는 것은 외부의 지적 권위에 복종하는 일이다. 그것이 강고하고 이미 짜여져 있는 설명틀을 가지고 있다면, 그 과정을 거부하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다. 하지만 일단 시각을 ‘나’로 돌리면, 생각보다 지식의 생산은 어렵지 않다. 페미고지는 ‘내가 겪은 경험’에서 출발한다. 여성들이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못했던 소소한 이야기들, 가정과 성에 관련된 경험들, 그에 담긴 감정들을 드러내는 과정을 통해 학습자들은 공동의 지식을 구성해나간다. 이것이야말로 소외된 집단이 자기 목소리를 만들어가는 길이며, 새로운 배움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나는 모른다’가 아니라 ‘나는 안다’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수업의 장면이 충분히 감성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페미고지의 경험은 여성들이 수업에서 ‘힘을 얻기(empowering)’ 위해서는 수업의 분위기가 충분히 수용적이고, 안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어떤 말을 해도 비난받지 않으며, 개인의 입장이 존중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토론이 아니라, 자기를 개방하고 감성적인 대화를 통해서만, 여성들은 지식의 생산자로 거듭나게 된다. 사실은 그래서 어렵다. 일반적인 교육의 장면에서 여성들은 습관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억제하며, 가르침에 순응한다. 그 결과는 ‘더 배워야만 하는 학습자’의 탄생이다. 권위주의적이고 전달암기식의 교육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학습자들이 자신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수용적인 공간이 만들어져야 한다. 수업은 지식이 아니라 감정이 오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습자중심 교육이 되려면 우리는 교수자중심에서 벗어나기 위한 과거의 실천을 주목해보아야 한다. 페미니스트 페다고지는 그 소중한 사례로, 대안적 방향이 ‘마음중심의 교육학’으로 모아질 수 있음을 역설한다. 그것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공감과 보살핌이 중심이 되는 교육이며, 상처받기 쉬움을 수용하고, 교사와 학습자의 유사성에 기초한 연결의 순간을 찾아내는 일이 강조되는 교육학이다. 남성의 우위를 여성의 우위로 바꾸기 위한 교수법이 아니라, 관행화된 남-여성의 위계를 평등으로 바꿔내기 위한 교육학이다.

학습자중심 교육의 첫 번째 질문은 ‘누가 학습자로서 이 수업이 들어오는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랫동안 ‘여성’인 학습자에 주목하지 않았던 것 같다. 페미니스트 페다고지는 여성 학습자들이 젠더화된 문화 속에서 겪는 어려움을 드러내며, 그 극복의 전략을 제안한다. 그것은 다른 소외집단에도 공히 적용 가능한 전략들이다. 지금부터라도, 교실에서 계속 생겨나고 부딪히며 재형성되는 문화의 역동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페미고지 엿보기. 학습자중심 교육의 실현과 페미고지. 학습자중심 교육에서는 누가 학습자인지를 고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는 ‘여성’ 학습자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글 정민승(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정민승(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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