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 이름이 될 때, ‘혁신’이 생활이 될 때

서울형혁신학교 밖에서 본 교육혁신

교육과정 및 수업 혁신을 기치로 내걸고 2011년 도입한 서울형혁신학교는 그동안 서울교육에 구체적이고 유의미한 성과와 과제를 모두 남겼다. 혁신의 꽃이 피기까지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현재도 위기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 위기를 통한 질적 도약을 위해 기존과는 다른 해결방식이 필요하다.

위기 속에서도 꿋꿋이 피어난 혁신의 꽃

곽노현 교육감 당선과 함께 서울형혁신학교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될 때, 교육감 업무추진비를 풀어서 교사들의 자발적인 소모임을 지원하고 독려할 때, 뭔지 모르지만 과거와 다른 기대와 열기가 있었다. 학교의 변화를 꿈꾸는 교사들이 서울 곳곳에서 새로운 학교를 꿈꾸며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토론하며 각자 현장에서 그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있을 때, 그는 구속됐다. 첫째 위기는 그렇게 왔다. 그러나 씨앗은 뿌려졌고 싹은 돋아났다. 잎도 나고 꽃도 피웠다. 외적 위기는 내적 강화의 조건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몇 개 안 되던 서울의 혁신학교는 교육청의 간섭과 같은 지원을 받아내며 자생하는 길을 걸었다. 우리끼리 힘들지만 재미있게, ‘혁신’이라는 화두를 잡고 새로운 학교 문화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했고, 성과를 거뒀고 학생과 학부모도 이에 화답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혁신학교만의 고군분투 정신은 이때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2014년 조희연 교육감이 당선됐다. 당선 가능성을 보고 도전했던 것은 아니었기에 더 믿음이 생겼고 서울교육에는 새로운 장이 열렸다. 당선 이후 열렸던 학교혁신특별위원회 모임에 평소보다 다섯 배는 많은 사람이 몰린 것을 보면서 잡스러운 마음이 교차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혁신미래교육’이라는 깃발 아래 교육혁신과가 신설되어 정책적인 측면의 지원은 혁신학교에 안정기를 선사했다. 이제 제대로 다시 해보자는 현장의 분위기 이면에는 기존 관행에 안주하려는 흐름과 함께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의 정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물론 상반된 두 흐름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문제는 언제나 그 다음이다.

혁신학교의 성과를 학교혁신으로 이어가기 위해 ‘토론이 있는 교직원 회의,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수업-평가, 교원 업무 정상화, 교원 학습공동체’ 등을 정책적으로 지원한다고 했지만, 작동 방식은 과거와 다를 바가 없었다. 토론이 있는 교직원 회의를 한 학기에 몇 회를 했는지, 논의 주제는 무엇이었는지, 9시 등교와 놀이시간을 운영하고 있는지 보고하라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자리 잡은 곳에 안주하려는 성과 보고용으로 포장됐다. 실제 학교를 주도하고 있는 교장, 교감, 교무부장, 행정실장들에게 이런 공문은 그저 지난 십수 년간 해왔던 대로, 형식적으로 보고만 하면 되는 수만 개의 공문 중 하나에 불과했다. 거기에 지역청 장학사들이 ‘나 좀 살려줘라, 좀 해주면 안 되냐’ 전화라도 하면 정말 과거와 하나도 다를 것 없는 행정관행이 된다.

혁신학교 구성원들의 지지와 성원으로 당선된 교육감은 혁신학교를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지켜야 했다. 이 또한 성과 보고용으로 포장됐고 혁신학교 숫자 늘리기에 안간힘을 썼다. 관료사회란 그런 곳이라고, 정책은 성과로 말한다고 하지만, 그 성과는 단기적일 뿐이다. 그즈음 ‘무늬만 혁신학교’라는 말과 ‘무늬만 혁신학교도 혁신학교다’라는 말이 나왔다. 교장의 강권으로 어쩔 수 없이 필자가 근무하던 혁신학교로 방문을 온 여러 학교 교사들에게 “그런 식이면 혁신학교는 하지 않는 것이 답”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2017년 교육청의 혁신학교 정책에 딴지를 걸던 교육부마저 혁신학교 확대를 지원하는 외적 환경이 만들어졌다. 외적 위기가 사라지자 내적 위기가 발생했다. 기존의 흐름을 주도하던 세력들은 알게 모르게 저항했다.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보려고 했던 세력은 소수였고, 갑론을박 말이 많았다. 그러나 그런 논쟁은 새로움의 이면이며, 모호함 속에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표상이니 그 자체로 필요한 일이었다. 진짜 내적 위기는 그런 갑론을박과 모호함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안온함에서 온다. 속으로 끓으면서 겉으로는 말하지 못하는, 감추어진 모순은 위기를 촉발하기도 한다.

위기는 내일을 만드는 역사이자 도약의 계기

위례별초등학교의 페미니즘 교육 논란과 해누리초·중학교의 혁신학교 지정 철회 요구 논란은 역사적 사건이 되어 진행 중이다. 소수의 교사가 실천하던 페미니즘 교육이 교사들의 주요 논의사항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혁신학교였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신설학교의 경우 교육감이 혁신학교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학부모와 시민들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을 인지하고 해석하는 방식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적어도 이 두 사건이 수구 세력들의 주요 목표물이 됐다는 것은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교사의 교육 내용에, 하나는 교육청의 교육정책에 관련된 것이지만, 어쩌면 과잉해석된 교육내용이 교육정책에 대한 무조건적 딴지걸기로 연결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이다. 이런 대립적 구도가 앞으로도 지속된다고 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제도나 정책은 유기적이다. 유기적이라는 것은 역사성을 갖는다는 말이다. 서울형혁신학교 역시 그렇다. 도입기, 외적 위기, 안정기, 성장기, 정체기라는 내적 위기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위기를 통한 질적 도약이 필요한 시기다. 기존 방식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문제해결방식을 취해야 한다. 마치 손가락셈만 하던 아이들이 손가락셈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위기에서 십진법을 숙달하며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구조의 변화다.

첫째, 혁신학교의 양적 확대는 더 이상 답이 되지 않는다. ‘창의적인 민주시민을 기르는 혁신미래교육’의 모델이 될 수 있는 몇 개의 혁신학교를 제외하고 일몰제로 가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혁신은 교사와 학생이 인식하고 있는 현실 학교교육의 문제를 다양하게 논의하고 이를 해결할 방법, 해결이 안 되는 이유를 공유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모두의 일상 속에 있는 혁신이어야 한다. ‘혁신’이라는 말뜻이 그렇듯 쉽게 되는 것도 아니며, 혁신학교만의 혁신이 되어서도 안 된다.

둘째, 교육혁신과를 폐지해야 한다. 실제 권한을 갖고 교육혁신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사업을 떠맡는 운명이라면 이름이라도 바꾸길 바란다. 학교 문화를 좌지우지하는 인사권, 학교교육 내용의 핵심인 교육과정, 수업, 평가 관련 집행력을 모두 초등교육과, 중등교육과가 갖고 있는 상황은 모순이다.

셋째, 혁신과 비혁신을 가르는 이원적 접근을 내려놓아야 한다. 무엇이 혁신인지 절대적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오늘의 혁신은 어제의 비혁신을 토대로 이뤄졌다는 층위적 접근만이 가능할 뿐이다. 어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학교 구성원들의 노력이 오늘의 혁신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내일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변증법적 접근은 언제나 유효하다. 답이 정해진 순간 혁신은 혁신이 아니다.

2017년 서울형혁신학교를 떠나 3년째 일반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서울교육의 변화를 몸으로 체감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변화가 필요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느낀다. 동시에 혁신학교를 경험한 나와 경험하지 않은 나는 질적으로 달라져서 무엇을 제안하고 바꿔가는 데 망설임이나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 힘으로 동학년 선생님들과 자발적인 학습공동체를 운영하며 교육과정의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주체는 환경에 대한 수동태가 아니라 능동태이기 때문이다.

서울형혁신학교가 서울교육에 가져온 변화는 분명하다. 공교육의 새로운 표준으로 정립해야 할 구체적인 과제와 성과를 보여줬다. 그 다음은 모든 학교에서 그 과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성과를 이어갈 수 있도록 새로운 프레임을 짜야 한다. 위기는 부정적 국면이 아니라 질적 변화를 통한 도약의 계기가 된다. 오늘의 위기는 내일을 위한 역사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늘 확인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혁신’이 이름이 될 때, ‘혁신’이 생활이 될 때. 서울형혁신학교 밖에서 본 교육혁신. 교육과정 및 수업 혁신을 기치로 내걸고 2011년 도입한 서울형혁신학교는 그동안 서울교육에 구체적이고 유의미한 성과와 과제를 모두 남겼다.

한희정(서울정릉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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