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 어울리는 삶의 무늬

새 학기가 시작되면 부모님은 내 필통에 새 연필과 지우개를 채워주곤 하셨다.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과 교실 청소를 하다 보면 주인을 잃어버린 학용품이 한가득 나온다. 연필과 지우개부터 자, 각도기, 사인펜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 새것과 다름없다. 주인을 잃어버렸을 뿐, 아니 주인의 관심이 사라졌을 뿐 분명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물건들이다. 여전히 다시 사용될 수 있으며 존재 자체만으로 아이들의 꿈과 미래를 품고 있겠지만 요즘 교실에선 좀처럼 그 의미를 찾기 힘든 것이 바로 학용품 아닐까.

다음 날, 학용품들의 주인을 찾아주려 노력해보지만 좀처럼 주인을 찾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학용품을 잘 챙기지 못했다는 민망함인지 아니면 연필과 지우개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가벼운 마음인지. 그렇게 교실의 분실함에 자꾸만 쌓여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마음이 조금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릴 적, 새 학기가 시작되면 부모님은 내 필통에 새 연필과 지우개를 채워주곤 하셨다. 내 이름 세 글자가 예쁘게 적혀 있는 이름표도 꼼꼼히 붙여주셨다. 그런 날은 마음이 조금 간질해져 잠을 잘 못 자곤 했다. 내일부터는 새 학용품으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귀여운 다짐도 했었다. 필
통 속 초록색 새 연필 한 자루가 사라져 한참 울고 있던 나를 따듯하게 위로해주던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도 기억이 난다. 소중했던 것이다. 고작 연필 한 자루였을지도 모르지만 어릴 적 나에겐 그만큼 큰 의미가 있었다.

학용품이란 것이 그렇다. 아이들 손에 쥐어져 있을 때 그것들에 작지만 가슴 벅찬 감동이 있다. 아이들의 꿈을 이루기 위한 소중한 동반자가 되었고, 그것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었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에 꼭 쥐어진 채 자신의 많은 것을 내주었지만, 그것의 주인을 위해 기꺼이 그렇게 했으며, 그것이 자신의 존재의 이유인 것처럼 최선을 다했다. 그랬으므로 분명 그만큼의 대우를 받아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반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그것을 알려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며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다음 날. 마침 사회수업시간에 ‘인권’에 관한 수업이 있었다. 아이들의 인권. 아이들은 당연히 보호받아야 하고 당연히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 그 당연한 것들이 지금 우리의 교실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당연해서 그것의 무게와 소중함이 조금은 평가 절하된 듯했다. 아이들에게 우리가 이렇게 학교에서, 교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이 행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노력을 했는지, 여전히 세상에는 이런 행복을 누리지 못한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교과서를 덮고 아이들에게 내가 여행에서 만난 어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5달러짜리 엽서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씩 걸인들이 구걸을 해오기도 하고, 어린아이들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물건을 팔기도 한다. 물론 그리 큰돈이 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심스러운 것은 그들의 삶의 방법을 행여나 내가 깨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이다. 스스로 수고하지 않고, 노력에 비해 큰돈을 쉽게 벌 수 있다면 그들은 더 이상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행지에서 난 여행자이고 주변인일 뿐, 결코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난 조연일 뿐 그들의 삶이라는 영화에 주연일 수 없기 때문이다.

터키의 작은 마을에 자리한 파묵칼레의 ‘하얀 천국’을 내려다보고 있는 나에게 꼬마 두 녀석이 다가온다. 그러고는 1달러면 충분히 살 수 있는 엽서 세트를 보여주며 5달러를 부른다.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는 걸 보니 아마 엽서를 팔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장사꾼인 듯하다. 영리한 장사꾼이라면 적당히 2달러 정도의 가격을 불러서 ‘그래 조금 손해 보고 사주지’라는 생각으로 지갑을 열게 할 텐데 말이다.

아이들이 귀엽기도 하고 풍경을 넌지시 응시하는 것 말고는 그다지 할 일이 없었던 터라 아이들과 몇 마디 말을 섞는다. 어느새 꼬마들은 나에게 엽서를 파는 것에서 내가 이어폰으로 듣고 있던 음악에 관심을 옮겨 놓는다. 아이들은 역시 세계 어디를 가나 똑같은 것 같다. 내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누어 끼고는 생소한 한국 음악이 좋았는지 고개를 흥겹게 끄덕이며 리듬을 맞춘다.

어쩌면 이런 작은 호기심들이, 순수한 웃음이, 이 아이들에게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엽서를 팔면서 고단한 삶을 감당해내는 것보다 말이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표정과 엽서를 쥐고 있던 거친 손이 당최 어울리지가 않았던 것이다.

만약, 정말 만약에 말이다. 이곳이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었다면, 여행객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터키의 작은 마을이었다면, 그래서 아이들이 엽서를 팔아서 돈을 벌고 싶어도 그것을 사줄 여행객이 없었다면. 그랬다면 이 아이들은 손에 펜을 쥐고 희망하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그런 미래를 희망하면서 자랐을까?

아이들의 순수한 꿈 한 조각을 내가 빼앗은 것만 같았다. 내 작은 즐거움에 그들의 인생을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이 아이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기회가 있었을까? 이 아이들의 순수함에 함께 섞이기에 나는 너무 어두운 색이다. 돌아서는 마음이 씁쓸했다. 아이들의 엽서를 사주는 대신 한국에서 준비해온 학용품을 쥐여주었다. 아이들의 손엔 돈보다는 학용품이 어울린다. 오늘 얼마만큼의 엽서를 팔아야 배가 고프지 않을까 하는 걱정보다 연필을 손에 쥔 채 칠판을 바라보며 조금은 힘들더라도 꿈을 좇아 하루하루 공부를 하는 것이 맞다. 아이들에겐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삶의 무늬가 있는 법이다.

금요일 학급회의 시간에 한 아이가 다음 주 생활 목표로 ‘학용품을 아껴 쓰자’를 발표했다. 다른 아이들이 그 방법으로 학용품에 이름 쓰기, 학용품 끝까지 사용하기, 분실함에서 자기 학용품 찾아가기를 덧붙였다. 나는 학급회의 시간에는 최대한 관여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만 그날은 아이들의 변화된 마음에 조금은 더 따듯하게 아이들을 바라봤던 것 같다

연필을 손에 쥔 채 살아가기 어려운 아이들에게도, 언젠가 잃어버렸던 학용품에 대한 소중함과 그것이 주는 감사함을 다시 되찾아가는 아이들에게도 역시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에게만 어울리는 삶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교사로서 나는 그 소중한 아이들의 삶의 무늬가 조금 더 아름답고 조금더 조화롭게 뻗어나가길 아이들의 옆에서 간절히 바라고 바라본다.

최전호(서울성서초등학교 교사, <버텨요, 청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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