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사랑의 새해를 기다리며

<타자의 추방>과 <트라우마 이후의 삶>

. 타인을 추방하고, 대화 대신 과잉소통언어가 난무하며 상처받는다고 말한다. 새해에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희망과 사랑으로 지난날의 상처를 안아주자.

한병철은 <타자의 추방>에서 우리 사회가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타인을 추방하고, 대화 대신 과잉소통언어가 난무하며 상처받는다고 말한다.
맹정현은 <트라우마 이후의 삶>에서 상처의 기억을 자유롭게 말함으로써 ‘가능성의 회복’이 이뤄지고 되찾은 희망으로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고 한다.
새해에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희망과 사랑으로 지난날의 상처를 안아주자.

내가 편안하기 위해 외면했던 타인의 상처

곧 2019년의 문이 닫히고 2020년의 새로운 문이 열린다. 그동안 생각 없이 지내다가도 이때가 되면 아쉬움과 희망이 교차한다. 12월은 새로운 희망이 내년의 현실이 되기 위해서라도 나의 민낯을 들여다보며 부끄러움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12월에 주고받는 말들은 따뜻하고 마음의 평안을 주는 내용이어야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한 번쯤은 지난 1년을 뒤돌아보면서 새로운 1년을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맹정현은 <트라우마 이후의 삶>에서 “정신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그물망과 같아서 조그만 흉터 하나가 정신이 총체적으로 와해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7쪽)”라고 말한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히 많은 말을 하거나 들으며, 때로는 마음이 상하고 때로는 우울감에 빠지기도 한다. 반대로 내가 뱉은 많은 말 중에 기억도 나지 않는 몇 마디의 말로 인해 누군가의 가슴에 깊은 흉터를 남기기도 한다.

반항이 멋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던 10대의 어느 날,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사소한 일로 어머니께 이유 없는 반항과 독설을 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네가 듣기 싫은 말은 나도 듣기 싫다” 하시며 조용히 나가셨다. 방에 혼자 남겨진 그 순간, 나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감정에 휩싸이며 처음으로 홀로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당에서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대화 소리가 들리고 지나가던 이웃과 부모님이 나누는 대화 소리도 들렸지만, 나는 혼자였다. 이제는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고 나의 말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역으로 생각하면, 그동안 나는 철저하게 귀를 막고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했으므로 어쩌면 내가 세상을 왕따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부터 말하기보다 듣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지금까지 실감하며 살고 있다.

10대의 철없는 나의 과잉언어에 대응하던 어머니의 침묵에서 느꼈던 그 감정이야말로 내 스스로가 나로부터 타자가 된 상황이었음을 많은 시간이 흘러서야 알았다. 한병철은 <타자의 추방>에서 침묵과 과잉소통이 둘 다 타자를 추방하는 것이지만, 침묵은 언어이고 과잉소통은 언어가 될 수 없다고 한다.(60쪽) 침묵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신과의 소리 없는 대화이지만, “과잉소통의 투명한 공간은 비밀도 낯섦도 수수께끼도 없는 공간(60쪽)”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일상을 SNS로 들여다볼 수 있고, 무수히 많은 “그랬을 거야”가 만들어지는 우리 사회가 과잉소통의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맹정현의 <트라우마 이후의 삶>과 한병철의 <타자의 추방>은 얇고 가벼운 책이나 다루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내가 경험했던 이상한 왕따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이 두 책은 우리가 편안하기 위해 애써 외면했던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을 이야기한다. 또 내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뱉은 수많은 말의 가시들을 성찰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인간은 혼자서 생존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웃이 없는 나만의 세계를 상상해보자. 그 세계에서 나는 어디에 있는가? 누가, 어떤 존재가 나의 존재성을 입증해줄까? 결국 나만 있다는 것은 내가 존재하지 않음과 닿아 있다. 쌓여 있는 명품들 중에서 훌륭한 옷을 고르고 골라 입을 수 있겠지만, 혼자 하는 인형 놀이는 재미가 없다. 산해진미도 혼자 조용히 먹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맛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나를 보아주는 사람과 내가 보는 사람이 있어야 삶에 리듬이 생기고 재미가 있다. 선의의 경쟁자가 있어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으며 나를 성찰하고 스스로 성숙해질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지닌 ‘평범한 악’

나와 다른 타인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는 인간의 이기심은 오고 가거나 가고 오는 언어를 서서히 추방하고, 하나의 방향만 있는 나만의 언어로만 소통하기를 원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주지만, 정작 본인은 인식하지 못한다. 내가 의식하지 못한 채 행했던 이러한 ‘타자의 추방’으로 나의 생활은 안락해졌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환대하지 않았기에 나는 홀로 살아야 한다. 그래서 한나 아렌트가 그토록 염려했던 ‘악의 평범성’이 우리 사회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도 모른다.

한나 아렌트는 독일 나치의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깊이 연구하면서 인간의 조건에 대해 천착한 유대인 여성 철학자다. 그녀가 오랜 고뇌 끝에 내린 것은 ‘악의 평범성’이었다. 누구든지 악함을 표출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우리가 악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어떤 부분에서는 선함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악인과 선인의 경계가 불명확한 시대에 한나 아렌트는 “진리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진실할 수 있다”라는 이 한 문장으로 ‘악이 평범해지는 것’을 경계한다.

타인을 추방하고, 대화 대신 과잉소통언어가 난무하며 상처받는다고 말한다. 새해에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희망과 사랑으로 지난날의 상처를 안아주자.

‘악’은 ‘선’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옆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지만, 그 행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트라우마는 어디에나 있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 상처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과잉소통된 언어는 그 기억을 자꾸만 들춰내거나 헤집는다. 맹정현은 그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려면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든 결국 제대로 잊기 위해서는 기억의 과정이 필요(21쪽)”하다고 말한다.

문제는 “그렇게 기억하는 과정에서 그 장면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21쪽)”져야겠지만, 과잉소통되는 언어의 공간인 현대 사회는 그 기회를 주지 않는다. 상처받은 타자가 원하든 원하지 아니하든 타자의 상처를 조롱하고 무수한 소문을 만들어내면서 같은 속에서 다름을 찾고, 때로는 다름 속에서 같음을 찾는다. 한병철은 이런 현상에 대해 “타인으로 인한 상처의 모든 형태가 회피(41쪽)”되고, 결국 모든 이의 “자기상해(41쪽)”로 부활하는 것으로 본다. 즉, 우리 사회가 지닌 ‘평범한 악’의 모습이다.

타자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타자에 대한 사랑이 결여된 사회다. 나의 것을 지키는 방법으로 택한 타자의 추방은 소통의 대화가 사라진 사회를 만들었고, 대화가 없는 사회는 같은 것만 남아 경쟁의 늪으로 빠져든다. 그래서 우리는 “타자를 경청하고 타자에게 대답하는 언어를 다시 배워야 한다(<타자의 추방>, 107쪽)”. 그것은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윤리적 책임이기도 하다.

좋은 말도 자꾸 들으면 반대로 들리듯이 반복되는 것은 불안감을 가져다준다. 사랑이 없는 관계는 반복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계속 들려준다. 부정적인 말들을 자꾸 듣다 보면 스스로 반복하게 되고, 신경이 예민해지면서 극도의 피로에 빠진다. 이처럼 사라져야 할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삶을 흔드는 것이 트라우마인데, 접할 수밖에 없는 대중매체들을 통한 타자의 부정적인 말들은 상처받은 이들이 트라우마의 벽 너머로 자신을 가두게 한다.

맹정현은 “트라우마의 원인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찾게 되면 죄책감을 느끼고, 타자로부터 찾게 되면 원망의 감정을 느낀다(144~145쪽)”고 한다. 죄책감이나 원망의 감정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삶을 절박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의 슬픔을, 나의 트라우마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천천히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함께 진실을 추구할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해질 것이다.

타인을 추방하고, 대화 대신 과잉소통언어가 난무하며 상처받는다고 말한다. 새해에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희망과 사랑으로 지난날의 상처를 안아주자.

주위를 돌아보고 손잡고 함께 가자

하버드대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아이들에게 개별마다 타고난 재능의 영역이 있음을 밝혔다. 아이들에게 시행하는 다중지능 검사가 바로 이 타고난 재능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수학을 잘하는 아이, 과학은 싫어하지만 예술에 재능이 있는 아이, 소외된 약자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아이에게 자신의 재능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고,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검사이지만, 이 검사가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내 아이가 수학이나 외국어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는 결과지를 받아들면 웃음꽃이 피지만, 사회복지나 예술에 재능이 있다는 결과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는 그 마음은 사랑일지라도, 남과 다름을 인정할 수 없는 그 마음은 아이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가장 신뢰받고 싶은 대상인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는 그물망 같은 아이의 정신을 병들게 한다.

나의 색깔을 인정받지 못한 아이는 ‘추방당한 타자’로서 과잉언어로 가득 찬 사회의 무수한 말을 이겨낼 수 없게 되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어디 재능뿐이겠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교폭력도 그 근원을 찾아가면 부모의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음을 익히 알고 있다. 다만 그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인정하는 순간 내 아이는 공부 잘하는 아이로부터, 착한 아이로부터 추방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병철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으로 예술과 철학을 들고 있다. 예술은 같은 것으로부터 다름을 추구하는 창작이며, 철학은 끊임없이 성찰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한병철이 예를 들어 말하는 예술은 문학이나 그림이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예술은 자기 창조이며 생활이다. 음악을 사랑하고 피아노를 치고 싶어 하는 아이를 남과 같이 의대나 법대에 보낼 필요는 없다. 그 아이에게는 피아노 소리가 치료이며 법이 될 수 있다.

몸이 아픈 노인을 돌봐주고 누군가 잡아주지 않으면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장애인들을 사랑하는 아이라면 약한 이를 사랑하는 방법을 만들어가면 된다. 작고 약한 동물을 기르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깨우치고, 말 못 하는 동물과의 교감을 통하여 장애인들과의 대화 방법을 스스로 알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창조이며 예술이다.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그 길을 함께 비도 맞고 눈도 맞으며 간다면 그게 바로 철학이다.

타인을 추방하고, 대화 대신 과잉소통언어가 난무하며 상처받는다고 말한다. 새해에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희망과 사랑으로 지난날의 상처를 안아주자.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트라우마를 받지도 않고 주지도 않는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들의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그 자체가 우연의 연속이며, 우연은 갈등을 동반하고 갈등은 문제를 유발한다. 설령 트라우마를 받게 되더라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는 단순한 생존이나 고통의 해소가 아니라, 트라우마의 벽을 깨고 우리 삶에 최대한의 가능성을 되돌려주는 것(<트라우마 이후의 삶>, 154쪽)”, 희망을 주는 것이다.

끝은 늘 새로운 시작과 연결되어 있다. 빗방울이 강에서 서로 만나듯이 절망의 곁에는 희망이, 악의 곁에는 선이 있어서 이 세상은 살 만하다. 다만 우리가 그 희망과 선을 잊은 채 살아왔을 뿐이다. 12월의 달력을 넘기면 1월이 온다. 새로운 1월을 맞이하기 위해 나와 다른 타자를 추방하여 나만의 안락함을 추구하는 대신 손잡고 함께 가는 길을 선택하자. 타인의 트라우마를 들추고 조롱하는 대신 이야기 들으며 시간을 함께 보내자. 비록 진리는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우리가 당당하게 진실을 추구한다면, 우리 곁에는 악이 평범의 가면을 쓸 수 없을 것이다. 12월의 겨울바람에 ‘성냥팔이 소녀’는 없는지 한 번만 내 주위를 돌아보자. 그것이 희망을 품고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다.

. 타인을 추방하고, 대화 대신 과잉소통언어가 난무하며 상처받는다고 말한다. 새해에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희망과 사랑으로 지난날의 상처를 안아주자.

<타자의 추방>
한병철 저 Ι 이재영 역 Ι 문학과지성사 펴냄

이 책은 ‘타자가 존재하던 시대는 지나갔다’라는 강력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낯선 타자와 맞닥뜨릴 기회가 줄고 비슷한 것들만 창궐하는 사회. 오직 자신에게 익숙하게 길들여진 것만 상대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된 오늘의 나르시시즘 사회의 모습을 섬뜩하게 그려낸다.

. 타인을 추방하고, 대화 대신 과잉소통언어가 난무하며 상처받는다고 말한다. 새해에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희망과 사랑으로 지난날의 상처를 안아주자.

<타자의 추방>
한병철 저 Ι 이재영 역 Ι 문학과지성사 펴냄

이 책은 ‘타자가 존재하던 시대는 지나갔다’라는 강력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낯선 타자와 맞닥뜨릴 기회가 줄고 비슷한 것들만 창궐하는 사회. 오직 자신에게 익숙하게 길들여진 것만 상대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된 오늘의 나르시시즘 사회의 모습을 섬뜩하게 그려낸다.

<트라우마 이후의 삶>
맹정현 저 Ι 책담 펴냄

트라우마 이후 우리 삶은 무엇이 될 수 있으며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이다. 마치 발목이 잡힌 듯 트라우마적인 장면으로 회귀하는 우리에게 트라우마에 대한 단순한 논의를 넘어 결국 우리가 어떤 조건에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탐구가 될 것이다.

트라우마 이후의 삶>. 타인을 추방하고, 대화 대신 과잉소통언어가 난무하며 상처받는다고 말한다. 새해에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희망과 사랑으로 지난날의 상처를 안아주자.
트라우마 이후의 삶>. 타인을 추방하고, 대화 대신 과잉소통언어가 난무하며 상처받는다고 말한다. 새해에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희망과 사랑으로 지난날의 상처를 안아주자.

<트라우마 이후의 삶>
맹정현 저 Ι 책담 펴냄

트라우마 이후 우리 삶은 무엇이 될 수 있으며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이다. 마치 발목이 잡힌 듯 트라우마적인 장면으로 회귀하는 우리에게 트라우마에 대한 단순한 논의를 넘어 결국 우리가 어떤 조건에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탐구가 될 것이다.

김성리(인제대학교 인문의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등록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