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선거권 시대와 교육권

글 권재호 (선사고등학교 교장)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는 참정권 확대의 역사라고 해도 무방하다. 계급, 인종, 성별 등에 따른 참정권의 제한이 사라진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연령에 따른 참정권의 불평을 극복하는 과정으로 우리나라에서도 ‘18세 이상 선거권’이 지난해 어렵게 보장되었다. OECD 국가 중 막 차를 탄 셈이다.

2020년을 기준으로 할 때, 18세 이상은 ‘2002년 4월 16일 이전에 태어난 학생’을 의미하므로 고3 학생이라고 해서 모두가 유권자는 아니다. 즉 현재의 고3 교실은 유권자와 비유권자가 혼재되어 있다. 과거에 학생들은 미래의 유권자로서 민주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 관점에서 교육받는 피교육자였으나 이제는 비록 일부일지라도 주권 행사의 직접적 주체가 되었다. 더불어 학교민주시민교육의 관점에서는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다음은 고등학교 사회과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근거로 하여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수업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사례1(사회·문화) ‘사회적 소수자 차별’에 대한 유튜브를 보고 찬반 토론을 하시오.
사례2(통합사회) 환경생태에 관한 정당의 정책을 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의 관점에서 비판하시오.
사례3(정치와 법) 각 정당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대한 관점 차이‘를 비교하시오.

‘18세 선거권 시대’가 아니었던 지금까지의 위와 같은 수업 상황은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학생, 학부모 또는 정당으로부터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근거로 이의 제기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사들은 수업 내용에서 당락의 유·불리함으로 판단하는 정당의 압박에 눈치를 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비교 분석, 탐구, 비판, 종합, 판단, 성찰, 표현, 매체의 다양성 등 수업방식의 다양성이 축소되고, 교사의 수업 자율권이 위축되어 교육적 가치 판단이 배제된 무미건조한 수업이 진행될 수 있다.

‘국가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며 세계와 소통하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과 태도를 기른다.’라는 고등학교 교육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상상력과 다양한 방식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18세 선거권’이라는 민주주의의 확대가 오히려 부당한 외부적 개입을 불러와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참정권의 확대를 통한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헌법적 권리인 학문·예술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 보장과 같이 초·중등교육에서도 교사의 자율성에 대한 광범위한 법적·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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