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새로운 영웅을 꿈꾸는 세상에게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은 ‘조선에 좀비가 창궐한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코로나19로 인해 가정에서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수요가 증가한 데다 역병을 다루었기에 최근 크게 주목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킹덤>의 인기 요인은 ‘바이러스’에만 있지 않다.

김송요(프리랜서 라이터) 사진제공 넷플릭스

권력의 중심에 선 영의정 조학주는 죽은 사람을 살린다는 생사초라는 미지의 풀을 궁궐에 들인다. 생사초는 인체를 숙주로 한 기생충을 옮길 뿐이기에 되살아난 시체는 더 이상 생전의 그 사람이라 볼 수 없다. 시체는 인육을 탐하는 좀비가 되어 또 다른 좀비를 만든다. 조학주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딸의 뱃속에 든 아이를 위해 연로한 왕을 살려둘 생각만으로 생사초를 쓴다. 보랏빛 꽃은 희망이 아닌 탐욕의 상징이다. 나병 환자를 인간병기로 쓰기 위해, 왕의 양위를 막기 위해, 조정을 파멸하기 위해 시체는 되살아날 뿐이다. <킹덤>에서 좀비는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 극도의 이기심과 붕괴된 사회의 산물이다.

<킹덤>은 사회의 곪은 부분을 어떻게 도려내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 이전에, 가치가 무너지고 흔들리는 사회 속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세자인 ‘이창’이다. 세자가 사건을 해결하고 금의환향해 곤룡포를 입는 이야기가 절로 상상이 되지만 이창은 좀비떼를 물리치고 난 뒤 왕이 되기는커녕, 조선 왕의 핏줄을 잇지 않은 갓난아이를 살려 새로운 세자로 삼게 한다.

시청자는 ‘혈통’을 타고난 이가 자리를 ‘되찾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고귀한 핏줄을 타고난 인물이 권좌에 오르는 이야기가 사랑을 받고, 주인공이 아버지를 뛰어넘고 극복하는 영웅 서사가 꾸준히 재생산된다. <킹덤> 역시 이창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초반부는 언뜻 전통적인 영웅 서사를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킹덤>은 ‘타고난 영웅’에 대한 시청자의 사랑을 슬쩍 배반한다. 익위의 아이가 세자가 되고, 왕의 큰아들 이창은 생사초의 비밀을 찾고자 궁궐을 떠나 버린다. 이창은 그리스 신화 영웅보다는 서부극의 주인공을 닮았다. 홀연히 나타나 사건을 해결하고, 그 마을에 뿌리내리는 대신 다시 떠나는 총잡이.

이창을 둘러싼 인물들도 남다르다. 착호군 출신으로 총을 능숙하게 다루는 영신은 배를 곯는 이들에게 인육을 먹여 좀비떼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극 중에서 영신을 탓하는 사람은 없다. 원한을 갖고 영신을 처단하는 대신 상황을 타개하고자 서로 머리를 맞댄다. 영신 역시 자기 연민이나 자학에 빠지는 대신 묵묵하게 일당백을 담당한다. 한편 의녀 서비는 스승의 보조자를 넘어 스스로 의술을 펼치며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핵심적 역할을 한다. 사람을 가려가며 진료하지 않지만 그것은 여성 캐릭터에게 요구되는 자애로움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의료인으로서, 혹은 과학자로서의 명민한 태도에 가깝다.

이 인물들은 새로운 도전과 주체적인 선택을 통해 강해진다. 적은 사악한 개인이기보다는 세상의 곪은 부분이며 싸움은 ‘최종 보스’를 해치우는 데서 끝나지도 않고 끝날 수도 없다. 적이 한 명이 아닌 것처럼 주인공에게도 아군이 존재하며, 그 아군은 높은 능력치의 전사뿐만이 아니라 민초 하나하나 모두이다. 이창만이 아니라 이들 역시 <킹덤>의 영웅이고, 따라서 <킹덤>은 이창이라는 개인이 궁궐로 돌아가 왕좌에 앉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영웅 서사를 따르지 않게 된다.

장기화되는 감염병은 새로운 영웅상을 제시했다. 이전의 영웅이 그야말로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는 슈퍼히어로였다면 오늘날의 영웅은 사람들 곁에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발로 뛰는 사람들, 자신도 두렵지만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 윤리적 선택을 견지한 사람들, 연대하고 상생하려 하는 사람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킹덤>을 보면서,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면서 다시 생각한다. (이전과 같은) 영웅은 없고, (우리 세상의 영웅은)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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