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낮이를 두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 <나는보리>

<나는보리>는 바닷가를 걷던 보리가 방파제 저편을 바라보며 환히 웃는 것으로 시작한다. 열두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보리는 반가운 얼굴을 보았는지 크게 웃고 팔을 높게 뻗어 손을 흔든다. 기민한 관객이라면 이 오프닝 시퀀스만으로도 무언가를 발견했을 법하다. 엄마면 엄마 아빠면 아빠, 친구면 친구 이름을 부를 법도 한데, 보리는 상대방을 소리 높여 부르지 않는다.

김송요(프리랜서 라이터) 사진제공 파도

영화 <나는보리>는 코다(CODA;Child of Deaf Adult, 농인 보호자 아래서 태어난 청인 아이)인 보리를 주인공으로, 보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담는다.
보리의 가족인 엄마, 아빠, 남동생 정우 모두 농인이다. 모두가 조용하니 반려견마저 짖지 않는다. 보리는 이 집의 유일한 청인으로, 일요일 짜장면 배달과 터미널 버스표 구매, 은행 창구업무를 도맡는다. 보리 본인은 퍽 익숙해 보이지만 보는 입장에선 왠지 야속하게 느껴진다. 어른스러운 말투로 양양 가는 표를 끊고, 제 발로 택시 앞자리에 타서 주소를 읊는 것은 보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면서 많은 청인 관객들이 불편한지도 모르고 누려온 것들을 되짚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절대 이 순간들에 조미료를 쳐서 안타깝거나 화나는 장면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저 보리의 나날을 통해 청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소리’의 존재를 환기하고, 농인과 코다의 삶을 상상하게끔 만든다. 청인 관객의 입장에선, 러닝타임 내내 음성언어에 달리는 한국어 자막만으로도 허를 찔린 기분이 든다. 그간 국내의 농인들은 어떻게 극장에서 한국어 영화를 봤을까?

보리는 혼자서만 듣고 말할 수 있는 집에 있는 것이 때로 외롭고, 그래서 ‘소리를 잃고 싶다’는 소원을 빈다. 비장애인의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다. 보리의 아빠 역시 보리가 뱃속에 있을 때 농인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래야 부모와 같은 언어로 소통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영화는 으레 하는 짐작들을 침착하게 마다하면서 묵묵히 전진한다. 보리를 담는 카메라의 방식 또한 그렇다. 카메라는 서낭당을 지날 때마다 의식처럼 소원을 빌고, 소리를 잃고 싶어서 갖은 애를 쓰고, 가족들과 친구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민에 잠기는 보리를 잠자코 따라가서 그 얼굴을 가만히 응시한다. 절대 우스꽝스러운 줌이나 내려다보는 부감으로 ‘어린이다움’을 표현하지 않는다. 어린아이를 굽어보는 것이 아니라 엄연한 인격체의 고뇌와 성장을 바라보는 것만 같은 시선이다. 농인과 어린이를 중심에 두되 이들을 절대 신파적이거나 평가하는 입장에 두지 않는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영화는 여러 인물들로 더욱 풍성해진다. 보리의 단짝 친구 은정은 보리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자신의 입장에서 단정 지어 말하는 대신 보리의 얘기를 들어주길 택한다. 둘의 관계야말로 성숙한 우정처럼 느껴진다. 어른들도 등장한다. 길 잃은 보리를 보호해 준 경찰 언니, 보리네에 만 원짜리 짜장 세트를 배달해 주는 은정이 아빠는 선량한 어른이다. 이들은 마을공동체에서 보리가 건강히 자라는 것을 돕는다. ‘그냥 어른’도 있다. 아이들이 잘생겼다고 좋아하는 젊은 남자 선생님은 정우가 지각을 하고 수업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엎드려 있어도 방관한다. 고모는 조카 정우가 소리를 듣기 바라기에 수술을 하자고 하지만, 수술 후엔 축구를 할 수 없을 거라는 얘긴 해주지 않는다. 보리의 외할아버지 또한 보리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수어를 전혀 배우지 않는다. 이들은 악하다기보다는 평범하거나 해맑아서 악의 없이도 마음을 할퀸다. 이처럼 다채로운 사람들의 면모가 <나는보리>를 한층 입체적이게 만든다.

강릉의 풍광 또한 이 영화의 근사한 점이다. 단순히 보기 좋은 풍경이 스크린에 펼쳐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방을 순박하지만 촌스럽게 대상화하거나, 그저 ‘서울이 아닌’ 지리적 색다름으로 소비하는 대신 실제 ‘사람 사는 동네’로 묘사했다는 뜻이다. 주문진 등대마을에서의 여름 낚시, 강릉 단오제와 주문진 시장, 동해안별신굿의 보금자리인 서낭당 같은 공간이 내내 생동감 있게 화면을 채우는 것이 재미나다. 어찌 보면 <나는보리>의 중요한 점 중 하나는, 도시의 비장애인이라는 영화의 주요 관객층에 대비되는, 따라서 변두리로 여겨지던 존재들을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지방, 농인, 어부, 어린이, 그 중에서도 여자아이 같은, 존재들.

한편 <나는보리>는 영화 자체로도 좋지만 배경을 생각하며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로 장편 데뷔를 한 김진유 감독이 강릉 출신의 코다로, 작품에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처음 관람한 곳 또한 정동진독립영화제였다. 매년 팔월 첫째 주,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에 바람을 넣어 부풀린 에어 스크린을 설치하고 모기를 쫓는 쑥불을 피워가며 즐기는 야외 영화제다. 앉은 자리 왼편으로는 파도와 기차소리가 스치고, 스크린 너머로는 보리밭이 바람에 흔들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이 총총 떠 있는 정동진, 몇 번이고 폐교의 고비를 넘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나는보리>를 보았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자신이 영화를 보며 자란 가장 사랑하는 고장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사랑하는 매체인 영화로 만들어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배리어 프리로 영화를 상영하는 경험은 얼마나 특별한 것일지. 오롯이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마음이 들었다. 진심을 담아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그럴 수 있다고 믿는 이들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다.

 

3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한 편의 아름다운 수필을 읽는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는 글입니다.
    강릉의 풍경과 바다, 그리고 그 속에 살아가는 보리를 꼭 영화로 만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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