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울정수초등학교 이용환 교사

과거를 잊는 인간에게 미래는 없다.

쁘리모 레비는 유대계 이탈리아인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이자 문학가이며 화학자였다. 아우슈비츠에서 생환한 후 “이것이 인간인가”등의 저서를 통해 세계에 알려졌다. 이 책의 글쓴이 서경식은 제일조선인 2세로 유신시대 옥고를 치른 그 유명한 서승, 서준식씨의 동생이기도 하다.

글의 시작은 글쓴이가 쁘리모 레비의 무덤을 찾아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으로 시작한다. 쁘리모 레비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북이탈리아가 독일군에 점령당하자 반파시즘 저항운동에 가담하여 싸우다 1943년 체포되었다. 그는 유대계였기 때문에 아우슈비츠로 송치되었다. 1945년 1월 27일 아우슈비츠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자 토리노 집으로 돌아와 몇 개월 동안 아우슈비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이 책은 ‘안네의 일기’, 빅토르 프랭클의 ‘밤의 안개’, 엘리 비젤의 3부작 ‘밤’ ‘새벽’, ‘낮’과 함께 독일이 저지른 만행의 진상을 전하는 증언문학의 대표작으로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다. 그런 그가 아우슈비츠에서 생환하지 40년이 더 지난 1987년 4월 11일 토리노의 자택에서 자살한다. 그 궁금증이 글쓴이를 토리노로 이끈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우리 망명자’들이라는 글에 의하면 그의 죽음은 자기본위의 죽음이었다. 아렌트는 망명유대인의 자살 충동을 분석한 결과 그들은 싸우는 대신에 친구나 친척의 죽음을 바라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고 진술한다. 누군가가 죽으면 이제야 그 사람은 완전히 어깨의 짐을 벗었구나하고 쾌활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곤 자신도 어깨의 짐을 벗을 수 있길 원하게 되고 그래서 실제로 자살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독일 극작가 에른스트 톨러, 발터 벤야민, 그리고 <어제의 세계>를 남긴 천재적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절망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유대계 오스트리아 작가로 약관의 나이로 일약 문학적 명사로 등극한 천재적 작가,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이 천재가 만난 세상은 불운과 참혹으로 가득 찬 세계였다. 그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어야 했고,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끝없는 망명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고국으로부터 수만 리 떨어진 먼 이국 땅 브라질에서 제2차 대전의 전세를 관망하던 중 일본에 의해 싱가포르가 점령되던 날 절망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브라질은 국장으로 장례를 치러줌으로써 츠바이크에게 크나큰 경의를 표했다. 그의 불세출의 회고록 『어제의 세계』(Die Welt von Gestern, 1941)는, 그가 세상을 버리기 전, 다음 세대에 진실의 한 조각이라도 전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 사력을 다해 쓴 생애 마지막 작품이다.)

그러나 글쓴이는 한나 아렌트처럼 톨러나 벤아민이 ‘투쟁‘하는 대신 자살’했다고 규정하는 것은 가혹하며 사실에 반한 일이라고 말한다. 단지 이 시점에서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보건데 그녀는 오랫동안 지속될 절망적인 투쟁-인류가 지금까지 역사에서 경험한 바 없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사악함과의 투쟁-을 각오해야 했고, 그래서 그녀는 망명 유대인들의 자살에 동정과 공감을 표명하지 않고 ‘일종의 자기본위’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쁘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 이후’의 세계에서도 인간이 여전히 살아갈 수 있음을 온 몸으로 제시한 ‘척도’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런 그가 지옥에서 생환하지 40년도 더 지난 어느 날 그 어떤 설명도 없이 자살한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 해답을 찾는 과정이 이 여행의 목적이다. 쁘레모 레비의 경고는 우리에게 너무나 무거운 엄중함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경고는 경시되고 생존자들의 증언은 존중되지 않고 있다. 파국을 경험하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한반도에 드리워지기 시작한 검은 그림자는 불길한 징후들을 동반하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역사의 반동은 곳곳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

쁘리모 레비는 강제수용소에서 얼굴을 씻을 기력마저 잃고 있을 때 동료 수인 슈타인라이프의 조언에 따라 매일 세수를 한다. 또 동료 수인들에게 시를 들려준다. 인간문명의 최소한의 형식, 틀을 유지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을 지킨 것이다. 글쓴이의 작은 형 서준식씨도 옥중에서의 51일간 단식 투쟁 중에도 이를 닦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고 한다. 인간은 짐승과 다르다. 그래서 내일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얼굴을 씻고 이를 닦는다. 자기 자신에게 규율과 질서를 부과하고 자기 생활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짐승과 다르다’. 그러기에 노예보다 못한 신분으로 추락해도 지옥과 같은 곳에 떨어지더라도 다시 인간세상으로 생환하여 증언하기 위해 살아남는다. 쁘리모 레비는 이런 인간성의 증인이다. 그는 ‘인간’과 ‘문명’이 파괴된 곳에서 살아남아 다시금 ‘인간’이라는 척도를 재건하는 역할을 짊어진 오디세우스다. 쁘리모 레비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단순 명쾌했을 것이다. 고난에 대한 인간성의 승리, 혹은 구제의 서사, 오디세우스의 개선에 대한 서사 등등……

우리는 대부분 스스로의 천박함과 나약함 때문에 그 단순 명쾌함에 매달리려고 한다. 그러나 옅은 어둠 속 공간에 몸을 던진 쁘리모 레비는 자신의 육체를 돌바닥에 내동댕이침으로써 우리의 천박함을 산산히 깨부순다. 냉혈이나 잔혹은 지금도 이 세계를 뒤덮고 있다. ‘인간’이라는 척도는 아직도 파괴된 상태다. 아우슈비츠를 우리는 아직도 넘지 못하고 있다. 아우슈비츠 이후 우리 ‘인간’은 생환을 기대하기 힘든 ‘오디세우스의 항해’에 내던져졌다.

무시무시한 정치폭력의 세기가 끝나고 21세기가 밝았지만 아직도 우리는 그 끔찍한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류는 왜 스스로 경험하고도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것처럼 어리석음을 보이게 될까? 이에 대해 글쓴이는 ‘비관적’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렇다. 지금도 쁘리모 레비는 절규하고 있다. 귀를 닫고 있는 우리 인류를 향해 자신의 육체를 차가운 돌바닥에 던지면서까지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 글쓴이는 다음과 같이 외친다.

“ 인류의 망각증을 치유하지 않는다면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라고 그 누가 장담 할 수 있겠는가? 모든 불길한 징조에 최대한 민감하게 반응해 방죽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극의 홍수가 우리 모두를 집어 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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