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겹겹이 아우르는 영화 <트랜짓>

이유진 시나리오 작가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트랜짓>(2018)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수용소 생활을 했던 작가 안나 제거스의 자전적 소설 『통과비자』를 토대로 각색한 영화다. 영화 또한 나치가 파리를 점령한 상황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게오르그(프란츠 로고스키 분)은 멕시코로 떠나려는 정치적 망명자다. 독일군을 피해 남부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에서 바이델이라는 작가의 아내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수소문 끝에 그는 바이델이 자살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얼떨결에 그의 유품까지 떠맡게 된다. 모든 것이 불안정한 전시 상황에서 그는 프랑스의 남단 마르세유에 도달하는데, 그곳에는 전쟁을 피해 신대륙으로 이동하려 남하한 난민들로 가득하다. 게오르그는 바이델의 유품을 처리하기 위해 바이델이 비자(트랜짓)을 신청해둔 멕시코 대사관에 들렀다가 바이델로 오인 당한다. 그가 바이델을 사칭한다면, 그의 비자로 안전하게 멕시코로 탈출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바이델을 애타게 찾아다니는 그의 아내 마리(폴라 비어 분)을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이 두 문장 사이에서 게오르그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이 영화의 매력적인 지점은 관객들이 저마다 흥미를 느끼는 지점에서 감상을 확장해나갈 수 있다는 점에 있다. 2차 대전 중 북아프리카로 피신해 유럽 대륙을 탈출하려던 인물들을 다룬 <카사블랑카>와 비교해 역사적 배경에 집중할 수도, 혹은 거짓말로 시작된 사랑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필연적인 비극 멜로를 탐구할 수도, 긴 망명 중에 느끼는 고독과 통찰을 담아낸 원작을 읽는 것까지 종횡으로의 감상이 모두 가능하지만, 2018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의 최초 상영된 이후 많은 이들이 선택한 읽기 방식은 존재만으로도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나치즘 당시의 정치범들과 유태인들의 탈출에의 절박함을 2010년대 유럽 대륙에 진입하는 난민들이 생명을 담보로 국경을 건너야만 하는 사정에 투사해 보는 것이었다. 체제에 의해 제거 혹은 추방 대상이 되는 두 집단 모두 ‘합법적’이지만 동시에 비인도주의적인 ‘통과비자(트랜짓)’을 요구 받는다.

도입부의 나치를 연상케 하는 경찰들과 손으로 쓴 편지를 전달한다는 설정은 영화의 배경을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한 1940년처럼 보이게 하지만 동시에 등장하는 스마트 기기나 신형 차들, 호텔 한 켠에서 보이는 LED 안내판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게오르그가 마르세유에서 정을 붙이고 지내던 소년 드리스의 집을 오랜만에 찾아가 문을 열었을 때, 그를 맞이한 건 기대했던 드리스가 아닌 좁은 집에 모여앉은 아프리카계 난민들이었다. 감독이 이 장면을 통해 현대 유럽사회가 직면한 난민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생존을 위해 신분을 훔쳐서라도 탈출해야 하는 게오르그도, 이웃과 인사할 틈도 없이 하루아침에 어딘가 떠나버린 드리스 모자도, 그리고 불법체류자로서 떠돌아야 하는 난민들도 모두 같은 처지라는 점에서 각 시대별로 탄압받는 소수자 집단은 여전히 존재한다. 얼핏 어울리지 않아 보이던 시대적 배경의 단서들처럼, 현재 세계가 직면한 코로나19 대유행 사태 또한 영화와 기묘하게 맞물린다.

코로나 19의 세계적 대유행 초기, 유럽과 북미의 아시아인들에게 쏟아진 혐오와 차별에 우리나라 국민들은 함께 분노했으나 국내 확산 초기에 드러난 대림동 중국 동포들에 대한 집단적 혐오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는 서구에서 일어난 인종차별의 거울쌍일 뿐이었다. 이후에도 이태원 클럽과 콜센터, 택배사 물류센터발 감염의 선정적 보도로 실시간으로 낱낱이 드러나는 개인들의 정체성을 집단에 투사하게 만들었고 이는 역시 혐오와 배제로 이어졌다. 나치가 자행한 ‘인종 청소’는 미국의 젊은 세대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베이비부머(세대) 제거제’라고 부르는 잔인함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트랜짓과 원작소설에서 경고하는 파시즘은 예측불허의 코로나19 이후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며, 어김없이 사회적 약자 계층과 소수자를 겨냥한다.
또한 영화 속에서 목적지의 비자 발급을 위해 경유지의 통과 비자를 받고, 그것을 위해 먼저 배표를 구해야 하는 요원한 탈출 과정은 대사관에 줄지어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데, 이는 최근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며 목격한 면면과도 겹친다. 지난 3월 공적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길게 늘어서있던 줄, 대중교통에서 마스크 착용 여부로 폭력사태까지 벌어지는 상황은 미래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감염병 사태와 겹쳐, 저신뢰 사회의 불안을 드러내 보인다.

망명하는 유태인의 이야기를 다룬 『통과비자』는 2018년 페촐트 감독의 <트랜짓>으로 재해석되고, 20년 7월 코로나 팬데믹의 시기에 영화를 만난 우리나라 관객들의 능동적 감상을 통해 새로운 고민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결말은 다소 비관적이고 허무하기도 하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끝나지 않은 전쟁 상황에서도 주변의 이웃들과 연대해 삶을 지속하기를 선택한다. 영화는 더 이상 유럽의 일만이 아닌 난민 이슈, 그리고 코로나19 대유행,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공동체의 예측 불가능한 위기들 앞에 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옳은지 질문한다.

 

1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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