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아이답게 싸우기 <에놀라 홈즈>

글 김송요(프리랜서 라이터)

‘에놀라 홈즈’. 처음 듣는데도 어딘지 귀에 설지 않은 이름이다. ‘홈즈’라는 성이 전 세계인의 오랜 친구, 셜록 홈즈와 같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주인공 에놀라는 자신이 셜록 홈즈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아서 코난 도일의 소설에 등장하는 마이크로프트와 셜록 형제에게 실은 막내 여동생이 있었다? <에놀라 홈즈>는 바로 이 상상에서 출발한다.

에놀라는 고향의 저택에서 엄마의 홈스쿨링을 받으며 성장한다. 넓은 서재를 가득 채운 책을 읽고, 풀숲을 메우는 식물을 관찰하고, 무술 훈련을 하고, 예술과 대화를 통해 감각과 생각을 살찌운다. 그러던 어느 날, 정확히는 에놀라의 열여섯 번째 생일에, 엄마가 사라진다. 런던에 있던 마이크로프트와 셜록 형제는 혼자 남겨진 에놀라를 위해 귀향하고, 에놀라는 큰오빠 마이크로프트에 의해 기숙형 여학교에서 ‘정숙한 숙녀’가 되는 교육을 받길 종용당한다. 순순히 신부수업을 받으러 가는 대신, 에놀라는 엄마가 남긴 힌트를 들고 런던으로 향한다. 추리는 셜록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에놀라 역시 탐정이 되어 엄마를 찾고야 말 것이다!

영화는 십 대 소녀 에놀라가 예기치 못한 사람과 사건들에 휘말리며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보여준다. 영화 중간중간 화면을 똑바로 응시하며 방백을 던지는 에놀라만 잘 따라가면 관객 역시 어렵지 않게 실마리를 풀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시시하다는 건 아니다. <에놀라 홈즈>의 재미는 추리 그 자체에 집중되어 있기보다도 에놀라에게 주어진 상황과 에놀라의 대처 방식에 있다.
우선 에놀라의 엄마 유도리아의 존재가 주는 감흥이 있다. 유도리아는 에놀라의 머리를 단정히 빗기지도, 코르셋을 입히지도, 자수를 놓고 음식을 만드는 것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그러나 유도리아는 에놀라에게 독서를 권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암호 해독부터 격투기까지 19세기 ‘숙녀 교육’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일들을 에놀라와 함께한다. 유도리아는 납치되거나 저주에 걸려서, 즉 타의로 사라지는 대신 자신이 가치를 둔 대의를 이루고자 집을 떠나고, 목표를 위해 떠돌아다니며, 끝끝내 에놀라의 곁으로 돌아와 정착하지 않는다.
영화는 에놀라와 유도리아를 통해, 디테일의 대가 셜록마저 간과한 당시 런던의 면모—여성 참정권 운동의 불길을 그려낸다. 이 이야기에서 셜록은 어디까지나 방관자 내지는 관찰자일 뿐이다. 호신술 교습소를 운영하는 아프리카계 여성 이디스는 ‘당신은 세상을 바꾸는 데 관심이 없겠죠, 지금 세상이 딱 살기 좋으니까’라고 셜록을 꼬집는다. 안락한 현실을 영위하는 기득권이고, 당사자성을 생각할 의지조차 없다. 반면 에놀라는 ‘가족이어도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로 유도리아가 어떤 일에 가담하고 있었는지조차 몰랐지만, 엄마의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공감하며 결국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영화의 또다른 재미 역시 어찌 보면 앞서 한 이야기와 연결된다. 바로 에놀라가 격렬한 액션을 한다는 것이다. 에놀라는 몸을 던져가며 육탄전을 벌인다. 액션 영화의 여자들은 대개 ‘아예 잘 싸우거나 아예 못 싸우거나’다. 전자는 전투 기계로 길러져 남자와 대등하게 겨룬다. 하지만 이들은 보통 싸우기 불편할 것 같은 쫄쫄이를 입고 있으며, 이들이 남자 악당에게 공격당하는 가학적 장면은 필요 이상의 길이와 강도로 화면을 채우곤 한다. 후자는 태어나서 싸움이라곤 해본 적이 없다가, 위기가 닥치자 뜻밖의 재능을 보이며 그 우연성—다시 말해, ‘절대 잘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잘하는 모습’—으로 관객에게 재미를 주곤 한다.
그렇기에 에놀라의 격투기는 스펙타클의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그 의미 면에서도 중요하게 느껴진다. 에놀라는 전투 기계도 규방규수도 아니고, 꾸준한 훈련을 통해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게 된 청소년이다. 에놀라가 매번 실패했던 호신술 기술을 마침내 성공했을 때 관객은 깨닫게 된다. 소녀들에게는 좀처럼 ‘성장형 액션’, 부족했지만 점차 발전하는 액션 히어로의 모습 자체가 허락되지 않아왔었다는 걸 말이다.

주인공 에놀라 역을 맡은 밀리 바비 브라운은 요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십대 배우다. 올해로 한국 나이 열일곱 살이 된 그는 낸시 스프링어의 <에놀라 홈즈> 원작소설을 접하고 영화화를 제안한, 이 영화의 최초 기획자이자 제작자이기도 하다. 어쩌면 영화만큼이나 그 사실이 또래 관객을 흥분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싸워서 자기 자리를 만드는 소녀의 존재는, 언제나 다른 소녀에게 힘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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