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어른들의 헌신으로 <보건교사 안은영>

글 : 이유진

〈보건교사 안은영〉(이하 〈안은영〉)은 정세랑 작가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이경미 감독의 넷플릭스 6부작 드라마다. 보건교사인 주인공 안은영이 (죽은 자들의) 원혼과 (산 자들의) 그릇된 욕구로부터 목련고 학생들을 지킨다는 것이 이야기의 골자인데, 퇴마와도 비슷한 그 중대한 역할이 알록달록한 젤리들을 장난감 칼로 무찌르는 방식으로 행해지는 바람에, 〈안은영〉은 명랑한 학원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귀신 보는” 은영이 학교를 수호한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속에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질문들을 던져볼 수 있다. 교사는 학생을 책임져야 하는가? 책임지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면,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가?

 

기억하고 호명하는 것

은영과 한문교사 인표는 승권이라는 학생을 찾아온 학교를 헤맨다. 위태로워 보이던 승권의 무거운 마음이 젤리가 되어 뒷목에 박혀 있던 것을 발견한 은영과 담임 인표가 승권을 쫓는데, 하필 거대 괴물에 의해 “기가 허한”(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학생들이 집단으로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난간에 매달리는 아수라장이 펼쳐진다.

“인경아. 너 혹시 승권이 봤니?”

“1반 이승권요, 6반 오승권요?” “인경아, 너도 우리 반이잖아.”

인표는 학생들을 꼭 정확한 이름으로 호명한다. 급박한 상황에도 거추장스러우리만큼 꼬박꼬박 챙겨 부른다. 무신경한 학생에게 한 번 더 “너도 우리 반”임을 상기시킨다. 물론, 목련고에도 “아 몰라!”라며 위험한 곳으로 몰려가고 있는 학생들을 헤치고 혼자 안전지대로 내려가는 교사도, 모습도 드러내지 않은 채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모두 움직이지 않을 것’을 당부하는 방송만 반복할 뿐인 교사도 있다. 인표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다리를 절면서도 끝없는 계단을 올라 옥상에 도착해, 낙엽처럼 날아가는 학생 하나하나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외치는 것이다.

“민우야! 어휴, 진수야! 야, 정훈아! 어, 인태야! 아이고, 다 날아가네. 정민아! 잡아!”

학생들은 안심하고 위로받는다. 지금 이곳에 함께 있고, 지켜보고 있다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으로도.

 

조금 더 기다리고 포기하지 않는 것

목련고의 ‘요주의’ 학생 완수와 민우의 뒤통수엔 (해로운 욕망을 상징하는) 젤리가 덕지덕지 엉겨 붙어 있다. 이들은 옆 학교 학생들의 방석을 훔쳐다 깔고 공부하면 시험 성적이 오른다는 미신에 “방석 사냥”에 나선다. 무사히 자습 중인 교실에 잠입해 방석을 훔쳐 달아날 때, 그들을 목격한 한 학생이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그거 죽은 애 건데.”

학생들의 욕망에는 (어른들이 그런 것처럼 당연하게도) 남을 해칠 수 있는 그릇된 욕망 또한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안은영〉에서는, 학생들의 그릇된 욕망과 그 행위가 곧바로 ‘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은 분명 악행을 저지르지만, 그들이 곧 악이 되기 전까지의 시차가 존재하며, 〈안은영〉은 그 시차를 최대한 활용해 은영과 인표가 학생들을 구하도록 한다. 뒷통수에 붙은 젤리를 떼어내기 위해 두 교사는 ‘계도’의 방식이 아닌, 창의적인 시도와 보완을 되풀이하는 고민을 거듭한다. 결국, 청소년기라는 시간과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학생들은 교사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를 누리고, 결국 끈끈한 젤리로부터 벗어난다.

 

‘내 마음’으로 너를 생각하는 것

은영이 젤리와 싸워가며 학생들을 지키는 파수꾼의 운명을 타고난 것처럼, 목련고 학생 혜민은 (‘재수 옴 붙었다’할 때의) 옴을 잡아 먹어 치우며 사람들을 구제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임무 외에는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은영과 달리, 혜민은 엄격한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삶을 산다. 은영은 혜민이 안쓰러워 새로 태어날 방법을 제안하지만 혜민은 자신이 임무를 그만두면 친구들이 “재수 옴 붙을”걸 걱정한다. 은영은 안타까운 마음에 영원히 그렇게 살라며 쏘아붙이기도 하지만, 곧 온 학교에 퍼져 있는 ‘옴 젤리’들을 모두 잡기로 한다. 한밤중, 학교 현관을 기어 다니며 옴을 주워 담던 은영은 혜민이 지고 있을 삶의 무게와 그 마음을 깨닫는다.

“난 알아. 혜민이는 살고 싶어 해. 어떻게 아냐고? 내 마음이 그러니까.”

은영은 현명하거나 자애로운 교사가 아니다. 도움을 줄 수 있었지만 시기를 놓쳐버린 인연들도 있다. 은영은 혜민의 삶에 대해 고민하며 자신의 삶 또한 돌이켜본다. 자신과 혜민의 입장이 같지만은 않다는 것을 견지하면서도, 동료의 입장에서 혜민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끝에, 자신은 운명과 임무에 따라 살지만, 혜민은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하고 싶은 모순된 결정을 내린다. 은영은, 혜민 또한 젤리로부터 구해낸다.

〈안은영〉은 새로운 사제관계의 모습을 제시한다. 은영은 운명, 죽음과 같은 극적인 사건들을 겪으며 두려움과 당혹스러움, 분노를 느끼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 앞에서 욕설을 내뱉는 불완전한 어른이지만, 시간과 품 그리고 감정을 쏟아 가며 터득한 자신만의 방법으로 학생들을 지킨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교사와 학생은 그렇게 함께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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