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시대의 새로운 시작

남궁인 응급의학과 교수 추천 소설 『페스트』(알베르 카뮈, 민음사)

<지금 서울교육>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좋은 콘텐츠를 추천하는 <콘텐츠> 코너! 3월호에는 사람들에게 삶의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응급의학과에서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남궁인 교수를 초대했다. 그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은 1940년대 치명적 감염병인 페스트를 주제로 한 소설 『페스트』다. 

사회에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질병의 역사

사회에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질병의 역사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는 마스크 없이는 살 수 없는 시대를 맞았다.

작년 한 해 교육 현장에는 대단히 큰 변혁이 있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 유행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최대한 인명을 보호해야 했고, 온라인과 비대면은 학교를 포함한 모든 분야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었다. 그런데도 작년 1월부터 퍼져나간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세계 누적 1억 명이 넘는 감염자를 낳았다. 사망자 또한 250만 명에 육박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작은 나라의 인구 정도가 사라진 셈이다.

현재 사람들에게는 많은 인명을 앗아간 끔찍한 질병이자 질서를 바꾸어버린 유례없는 사건이지만, 역사 속에서 인류는 계속 전염병과 싸워왔다. 다양한 질병이 유행할 때마다 사회엔 큰 변화가 찾아왔고 때때로 인류는 역사적 퇴보를 겪기도 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 범유행으로 달라진 세상은 과거의 인간들이 이미 겪은 일일 수도 있다. 인류는 그 기록을 온전히 활자로 작성했다. 그중에서 문학은 인간의 삶으로 들어가 내면을 세세히 비추는 역할을 한다. 작년 한 해 동안 전염병에 관해 가장 널리 읽힌 책은 단연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이다.

평범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가장 영웅적인 것

평범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가장 영웅적인 것

새 부리 모양의 마스크를 쓰고 흑사병과 싸웠던 페스트 닥터의 모습

『페스트』는 제목에서 명시하듯 1940년대 오랑이라는 도시에서 유행한 페스트를 다룬다. 이번 감염병의 세계적인 유행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으켰지만, 페스트는 ‘세균’이 일으키는 질병이다. 인간의 피부가 검게 변하며 죽어가기에 흑사병이라고도 불렸다. 인간이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할 때 이미 페스트가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치사율은 50%에 육박하나 치료 방법이 발견된 것은 비교적 현대의 일이다. 현재까지 2억 명 정도의 인간이 페스트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전염력은 낮은 편이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사율 2.5%와 비하면 대단히 위험한 전염병이었다.

둘은 완전히 다른 질병이지만 『페스트』에는 전염병을 맞이하는 인간들의 행동과 한 도시가 봉쇄되고 인구의 절반이 죽어갈 때의 심리가 마치 작금의 시대를 예견한 것처럼 기술되어 있다. 카뮈는 전염병을 매개로 하여 우리에게 끝없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소설 속에는 의사, 성직자, 기자, 판사, 공무원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 각자는 치밀하게 특정 부류의 인간을 대변한다. 그중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주인공인 의사 리외다. 그는 소설의 서술자이자 처음 페스트를 발견한 사람이며 결국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어내는 사람이다.

인명을 구하고 보호하기 위한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들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을 ‘성실성’이자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리외 본인은 그 신념을 마지막까지 실현한다. 그는 처음부터 생명을 살리고자 의업에 뛰어든 것이 아니었고, 가난한 집안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찾다가 의사가 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죽음을 거부하는 젊은 여성의 절규를 듣고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진지하게 임한다. 그는 당국자가 전염병을 은폐하려는 상황에서도 진실을 전달하려고 하고, 감염병의 범유행이 선포된 뒤 보건대를 조직하고 핵심 역할을 맡는다. 원칙을 지키느라 원성을 사기도 하지만 감정을 숨기고 묵묵히 전염병과 싸운다. 결국 무덤덤해 보이지만 어린 생명을 잃고 가장 분노하는 것도 의사 리외다.

독자는 의사 리외의 시선으로 페스트와 맞서 싸우게 된다. 그로 인해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이 역병을 맞아 숭고한 마음으로 의업에 뛰어드는 과정을 볼 수 있으며, 각자의 위치에서 인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이입할 수 있다.

리외는 직접 영웅주의란 없다고 말한다. 현시대를 돌아보아도 우리가 모두 성실하게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질병과 맞서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결국 가장 평범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가장 영웅적인 것이다.

끝내 보건대의 부단한 노력으로 오랑에서 페스트는 종결된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 환호가 울려 퍼지는 거리에서 의사 리외는 언젠가 다시 찾아올 전염병을 예감한다. 그 또한 현재를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달라진 시대의
새로운 시작

달라진 시대의
새로운 시작

백신 접종으로 우리의 일상은 점차 회복되어 갈 것이다.

새 학기와 동시에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 그런데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높은 전염력을 생각하면 완전한 종식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소설 『페스트』 또한 종식으로 마무리되지만, 그 뒤에도 페스트는 가끔씩 인간을 괴롭혔다. 앞으로도 우리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백신은 우리가 이전에 누리던 일상을 점차 회복시켜줄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기 전에도 인류는 전염병과 싸우며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는 과정을 거쳐왔다. 문학을 거울삼아 과거를 돌이켜보고 다시 고개를 들어 현재를 보자. 달라진 시대의 새로운 시작이 그곳에 있다.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의학과에서 근무하는 의사다. 글로 전해지는 감정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믿는 수필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법 안온한 날들』, 『만약은 없다』, 『지독한 하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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